▲임흥순임흥순 작가는 "미술가와 활동가 사이 때론 미술가와 복지사 사이, 지금은 미술가와 영화감독사이에서 작업하고 있다. 예술은 관습에 대한 배신, 배반이 되더라도 새로운 것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창제
-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내가 (지역으로) 들어가서 주민들과 얘기하는 것보다 주민들이 예술 공간으로 찾아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된다. 주민들에겐 다양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나에겐 주민들의 삶과 지역의 문제를 알아가고 배우는 통로가 된다."
- 처음에 (주민들을) 직접 찾아갔을 때 반응은 어땠나?"대부분의 반응이 좋아하기도 하지만 약간의 거부감이나 이질감도 느낀다. 이전에는 소수자, 소외 지역을 찾아가 공공미술을 했다면 금천예술공장에서는 달랐다. 여기서 만난 분들은 대부분이 중산층이고 일반 시민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분들이 예술의 또 다른 소외계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사로잡혔던 시선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 시선의 확장이 <위로공단> 작품에 영향을 끼쳤나?"물론이다.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하기 전부터 금천구와 공장이 있던 자리, 공간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 공간에서 일하던 여성들, 구로공단과 여공들, 일명 '공순이'라고 말하는 분들에 대해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의 부모님이 모두 노동자였기 때문에 쭉 그런 생각을 해왔다. 나 같은 경우는 작업을 하면 보통 최소 2년 이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을 길게 봤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기 전 지역주민들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 구체적으로 주민들과 어떤 작업을 했나?"첫 번째로 지역 주부들을 대상으로 미술 워크숍을 열었다. 두 달 동안 19명이 팀을 만들어서 작업을 했다. 2년 후 마지막 워크숍으로 <금천블루스>라는 영화워크숍을 진행했고 주민들이 직접 연출하게 했다. 주민들이 바라보는 금천구, 구로공단, 여공, 이주여성, 재중동포(조선족)를 간접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정극, 애니메이션, 실험극, 뮤직비디오 등 4~5분짜리 4개의 옴니버스 영화로 완성됐다. 결과물 이전에 이러한 제작과정 자체가 하나의 '커뮤니티 아트'라 말할 수 있다."
- <금천블루스> 영화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달라."커뮤니티에 참여한 주부들 중 언니가 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두 분이 참여했다. 그 중 한 분의 언니는 실제로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나머지 분의 언니는 전주에서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언니에게 느꼈던 동생의 감정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내가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느꼈던 감정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가족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가족 중에 한두 명은 늘 희생했고, (희생을 했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그것에 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다."
- 이전 <비념>의 흥행 성적은 어땠나?"<비념>은 23개관에서 진행했다. 총 관객은 2400명 정도 된다. 생각보다는 많이 안 봤는데, 개봉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 <비념>의 관객 수가 너무 적어서 아쉽지 않았나?"꼭 그렇지는 않다. 물론 관객 수를 보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비념>과 같은 예술영화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관객 수가 전부는 아니다. 관람한 분들이 2400명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본 분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상업영화는 재미있게 보고 문 밖을 나가면서 다 잊어버리지만, <비념>과 같은 영화는 극장 문을 열고 나가면서 더 생각나게 만든다."
- 포털 다음에서 보니 한 누리꾼이 '꿈에만 그리던 이상적인 작품'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비념>이 비평적으로는 나쁘지는 않았다. 2013년, '씨네21' 올해의 한국영화베스트 9위에 올랐다."
미술 작가와 영화 감독의 사이에서- 기존 영화와는 다른 콘셉트가 있는 듯하다. 어떤 포인트인가?"독립영화에서 다큐멘터리가 보여줬던 형식과는 다르다. 아무래도 내가 미술가이기 때문에 기존 방식보다는 미술가로서 나만의 방법이나 시선을 만들고자 했다."
- 미술작가로서 화면구성은 영화감독들에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것과는 다른가."약간은 그런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상업영화는 내용에 몰입하게 해서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런데 미술은 이미지들이 해체돼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이 재편집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능동적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념>은 그 중간에 있었다. 서사적이지 않고 파편적이다. '이분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분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얘기했다. 이미지와 목소리를 어긋나게 하는 낯선 기법들을 활용했다. 아마도 미술에서 익힌 습관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듯하다. 어떻게 보면 장점이다."
- 영화감독이냐, 미술작가냐에 대한 질문이 많다. 이미지나 스토리 중 어떤 것이 먼저 떠오르나?"아무래도 미술작가이기 때문에 이미지가 스토리보다 먼저 떠오른다. 장면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 요즘 무용에서도 영화감독과의 협업 사례가 많다. 미술가가 영화를 진행한 첫 번째 사례로 봐도 되는가?"2002년 전주국제영화제, 200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작품을 상영했지만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미술작가로서 본격적인 영화작업을 처음한 사람은 박찬경 감독이다. 극장 개봉한 영화로 보면 <비념>이 첫 번째인 듯하다. 이후에 박찬경의 <만신>, 정윤석의 <논픽션 다이어리>, 박경근의 <철의 꿈> 등이 나왔다."
- 작업하는 방식은 어떤가?"프로젝트팀을 만들어서 진행한다. 기본적으로 혼자서 하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계속적으로 의견을 나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지역, 이주, 도시, 공동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다. 이러한 '사회, 현실문제에 대해 미술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와 같은 고민을 많이 했다."
임흥순 작가가 전하는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 <위로공단>이 '세계의 모든 미래'라는 올해 비엔날레 주제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비엔날레는 세계 현대미술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특히 베니스 같은 경우는 현대미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큰 전시를 생각하면서 작업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해왔던 것은 로컬(local) 그 자체였다. 총감독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성향과 주제가 맞았다고 생각한다."
-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 이후로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과 대화한 적이 있나."오쿠이가 수상 이후 파티에서 '축하한다, 너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 덕분에 이런 전시에 작품을 소개할 수 있어서 고맙다, 아시아의 노동 문제에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비엔날레 현지 관객 반응이 궁금하다."베니스는 나도 처음이었다. 미술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상당히 많이 관람한 듯하다. '95분짜리를 어떻게 보냐?'고 하시는데, 보는 사람들은 계속 보게 된다. 상대적인 것도 있다. 본 전시 전체가 총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작품 배치가 중요하다.
처음 봤을 때는 동선도 안 좋고 공간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열어보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처음 스타트(입구)에 들어서면 그곳이 한 번 쉴 틈이기도 했다. 기존 작품들은 이론적이면서 개념적인 반면에 (나의 작품은) 실질적이고 현실감을 살려주니까 관객들에게 조금 더 세게 전달해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앉으면 계속 보게 된다."
- 전시 공간에는 몇 명 정도 들어가는가? "20~30명 정도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다. 스크린도 상당히 크게 준비했다. 아마도 베니스 비엔날레 중 가장 큰 스크린인 듯했다."
-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은 작가 개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 던지는 의미가 있다. 개인적인 소감과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얘기해 달라. "개인적인 소감은 영광이지만, 여기에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작업들 때문에 생각할 여유가 없다. 수상 의미는 20년 정도 지나서 생각해보고 싶다."
은사자상 수상의 화제 영화 <위로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