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 방북 일정 마치고 귀국한 이희호 3박 4일 간의 방북 일정을 마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수행단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성호
- 목사님은 1970년대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살이하셨다고 들었습니다."1976년 3월 10일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송치되던 날 서울 지방검찰청 대기실에서 김 대통령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30여 년 넘게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동지적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함께 겪는 일은 인간 관계를 가장 밀접하게 이어주는 접착제와 같습니다.
김 대통령과 재야 양심 세력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준 것이 바로 감옥 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대통령이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한국의 양심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재야 인사들과 고난을 함께 한 데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3.1 민주구국선언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3.1 민주구국선언은 문익환 목사가 주동해 1976년 한국의 유신 체제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삼일절 독립운동과 똑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자유, 정의, 남북 간의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외친 선언입니다. 거기에 김대중 대통령이 서명한 것이죠. 이 사건으로 김 대통령은 처음 감옥에 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김 대통령과 재야의 양심 세력의 동지적 관계가 맺어졌습니다. 단지 정치인 김대중이 아니라 한국의 양심으로 세계에 각인된 사건이었죠."
- 목사님이 아는 김 대통령은 어떤 분이었나요? "그 어른에 대한 나의 소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마음이 고운 분이었습니다. 눈물도 많고 정감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과 전혀 달리 대단히 섬세하고 인간미 넘치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세심하고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유머 감각도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우스갯소리로 좌중을 웃기고 평안하게 해주는 분이었습니다.
둘째, 모든 부문에 충분한 지식을 갖춘 분이었습니다. 3.1 민주구국선언사건 관련자 가운데는 석학들이 많았습니다. 그분들과 같이 나누는 김 전 대통령의 대화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정치나 경제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철학이나 신학에 있어서도, 특히 역사에 대한 해박한 그의 지식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단편적인 얕은 지식이 아니라 학구적이고 각 분야의 지식을 상호 연결 지어 분석하고 종합해 낼 수 있는 산 지식의 소유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이 분만큼 국정 전반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올바르게 미래를 전망하고 설계해 백성을 잘 섬길 수 있는 대통령을 다시 맞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셋째, 돈독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학구적인 그의 지성과 직접 몸으로 겪은 체험이 농축돼 삶으로 행동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분의 인권과 정의에 대한 지극한 관심,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민족 간의 화해 협력과 평화 통일에 대한 불굴의 집념, 그리고 이것을 민족사에서 이뤄내기 위해 온갖 박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끈질기게 살아낸 그 용기는 그분의 깊은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인간으로서 여러 가지 실수나 결함도 있을 겁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고 그걸 부인하고 싶지는 않아요."
"역사의 순리 위해 민주 개혁 양심 세력 집결해야"-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요?"3.1 민주구국선언 때 항소심에서 구속된 11명 중 안병무 박사와 제가 집행유예로 풀려났어요. 재판정에 갔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함께 구치소로 가는데 저는 울상이 됐어요. 그때 김 대통령 하는 말이 '이 목사님 왜 목사면서 나보다 믿음이 없습니까?'라고 하시더라고요. '우리는 여기서 편하게 쉬지만, (목사님이) 나가시는 건 하나님이 밖에 나가 더 열심히 일하라고 하시는 것 아닙니까?'라며 위로하신 게 기억나네요."
- 목사님은 박근혜 정부를 총체적 난국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1970년대와 비교하면 어떤가요?(관련 기사 : 이해동 목사 "우리 모두 작은 김대중이 됩시다")"지금은 유신 헌법 하에 있지 않으니 겉은 그때와 같다고 할 수 없어요. 그러나 내용 상으로는 완전히 유신 시대로 돌아갔거나 더 극악하죠. 지금 3권 분립이 어딨나요? 정당을 해산하질 않나. 요즘 대법원 판결을 보면 기가 막혀요. 자기 맘에 안 든다고 대통령이 당 원내대표를 배신자로 찍어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숙청했잖아요.
그때는 사람들이 억압에 짓눌려 공포 속에 살긴 했으나 속으론 욕했어요. 그러나 요즘 국민은 그게 아니라 다 병들어 있어요. 결국 물질주의 때문입니다. 독재가 구사하는 방법은 두 가지에요. 하나는 기만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입니다. "
- 야당은 어떤가요? "참 안타깝습니다. 야당 역시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잖아요. 작은 자기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대의를 저버리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그걸 교묘하게 포장하는 현상은 야당뿐 아니라 민주 개혁 세력조차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거죠."
- 지난 5일 '2015 김대중 평화캠프'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자"고 하셨어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친일 청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을까요? "우리 민족사에서 1945년 8.15 해방 이후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최대 죄악은 해방 정국에서의 친일파 등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 못 꾄 겁니다. 올해는 8.15 해방 70주년이고 따라서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70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 역사는 실로 비극적입니다. 순리적 발전보다는 역리적 반동 현상의 질곡이 훨씬 진하고 길기 때문입니다.
이 순리적 민족사를 세우기 위한 피나는 국민 투쟁 대열의 중심에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순리의 역사를 잘 가꾸고 발전케 하는 데 실패해 다시금 역리적 역사의 질곡을 겪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우리는 이 질곡을 타파하고 순리적 역사 회복을 도모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대 과제입니다. 지금 우리 역사 회복의 당면 과제는 민주 개혁 양심 세력이 모든 역량을 총집결해 친일 잔재의 손아귀에서 정권을 되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하고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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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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