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가방에 안전조끼 입힌 중국인, 왜 이러니

[30일, 제주를 달리다 12] 그 열번째 날

등록 2015.08.19 18:27수정 2015.08.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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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오늘부터 묵을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마을이다. 차창 밖 풍경을 보다가 휴대전화에 메모돼 있는 글을 찾았다. 아침에 달리기할 때 나는 이 문구를 기억해 냈다. 대담집 <대화>에서 고 최인호 소설가가 한 말이다.

신문에 연재소설을 쓸 때 "1천 회 연재라니 대체 그걸 어떻게 쓰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1천 회를 쓰는 게 아니지요. 1천 회를 생각하면 숨 막혀서 못 써요. 침착하게 1회, 1회를 쓰다 보면 1천 회가 되는 거지요. 1회 쓸 때는 1회만 생각하고, 2회를 쓸 때는 2회만 생각하고요.


원래는 성급하기만 한 내 기질에 제동을 걸기 위해 메모해 두었던 글이지만 오늘은 달릴 때 이 글을 기억하며 힘을 낼 수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7km를 달렸다. 그간 매일 달렸던 건 아니다. 기운이 나지 않거나 비가 오면 달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의 5km를 달린 후 오늘부터는 2km를 늘려 달리기로 한 거였다. 그런데 피로가 쌓인 탓인지 1킬로미터가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지치는 거였다. 더군다나 목표가 5km에서 7km로 늘어났다고 생각하니 지레 겁부터 났다. 어떻게 그 긴 거리를 다 달린단 말인가.

그때 최인호 소설가의 말이 생각났다. 1천 회를 쓸 때도 1회만 생각하며 글을 썼다는 말. 그래서 나도 그냥 1m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 앞에 몇 km가 있는 건 신경 쓰지 말고, 그냥 1m만 더 뛰는 거로 생각하자, 했다. 그렇게 계속 1m를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7km에 가 닿을 것이니.

버스를 타고 가는 나는 그렇게 오늘 아침에 7km를 완주한 몸이었다. 오늘따라 내 몸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쉬엄쉬엄 다니기로 했다. 7km의 목표보다 눈앞의 1m에 더 집중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성산 일출봉으로 향했다.

눈앞의 1m에 더 집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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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올라가는 길 ⓒ 황보름


이번이 세 번째던가, 네 번째던가. 마지막으로 성산 일출봉에 왔을 때가 2년 전 가을이었다. 그때 나는 무얼 봤던가. 친구들과 사진 몇 장 찍고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온 기억뿐이 없다. 급할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기억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5년 전에도 또 다른 친구와 함께 왔었다. 정상에도 오르지 않고 그저 일출봉 초입에 넓게 펼쳐진 초원에서 역시나 사진만 몇 장 찍고 돌아갔다. 이때 역시 급할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버스에서 내려 성산 일출봉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대형 관광버스가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미 관광을 끝내고 떠나는 버스와 이제 도착한 버스가 서로의 순서를 기다리며 사람들의 걸음을 막고 있었다.


성산 일출봉이 정면에 보이는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바 모양의 테이블 한구석에 앉아 오르기 전에 전체 풍경을 좀 가늠해 볼 요량이었다. 저 멀리 깔끔하게 재단된 길을 따라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메르스 영향으로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이곳 성산 일출봉엔 사람이 가득했다. 커피숍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십 분 정도 앉아 있었을까.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내게 말을 걸어 온다. 나보고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마치 외국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방금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주위엔 거의 다 외국 사람들뿐이었다는 거다. 마치 해외로 혼자 여행 온 기분이었단다.

대전에서 온 그녀는 눈이 예뻤다. 그녀는 4박 5일 일정으로 혼자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1박씩 게스트하우스를 옮겨가며 이동 중이란다. 혼자 여행은 처음 하는 건데 어제까지는 모든 게 어색하기만 해 조금 후회도 됐단다. 그런데 오늘부터 아주 좋더라는 거다. 뭔가, 굉장히 홀가분한 기분이 든다고 그녀는 말했다. 혼자여도 씩씩할 수 있다는 것, 혼자여도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도 걸 용기가 생겼다며 그녀는 쑥스럽게 웃었다.

나도 함께 쑥스러워하며 지난 여행을 간략히 그녀에게 풀어놨다. 그녀는 내 이야기를 자기가 겪은 일처럼 흥미롭게 들어주었다.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것이 그녀가 전날 묵은 동네가 바로 내가 오늘부터 묵을 '종달리'였다는 것이다. 그녀를 통해 종달리에서 반드시 해야 할 두 가지를 알게 됐다. 하나는 지미봉을 오르는 것. 둘은 가정식 백반집에서 고등어조림을 먹는 것.

그녀가 먼저 떠났고 나도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화창한 날씨였다. 하늘도 푸르렀다. 성산 일출봉 정상을 오르기 전에 먼저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가니 홍보관을 비롯해 각종 먹을거리와 관광 물품을 파는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서는 서양인 예닐곱 명이 신기한 체험을 하듯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파이프 모양의 과자에 듬뿍 담긴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있었다. 나는 홍보관에 들렀다 편의점에도 들렀다 하는 둥 이리저리 서성였다. 그러다가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넋을 놓고 얼마간 앉아있었을까. 중국인지 대만인지에서 온 일행 두 명이 나를 사이에 두고 앉더니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나라는 사람은 그냥 거기 박혀 있는 기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듯 상관도 하지 않고서. 나는 조금 궁금했다. 바로 옆에 귀가 멀쩡히 붙어있는 사람이 앉아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건지. 기분 좋게 앉아있다가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나는 '이건 조금 예의가 아니잖아요'라는 의미로 귀를 딱 막고 일어나 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산 일출봉 정상에 오르다

인제 그만 성산 일출봉으로 올라가라는 뜻인 건가. 그러기로 했다. 올라가자, 성산 일출봉으로.

성산 일출봉은 약 오천 년 전 용암이 바다를 뚫고 올라와 수성화산 폭발을 일으켜 생성된 응회구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가운데가 움푹 팬 사발 모양 같다. 사발 모양 둘레에는 역시 우리 눈으로는 잘 안 보이는 봉우리들이 왕관처럼 죽 늘어서 있다. 이것이 마치 성벽처럼 보여 성산(城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출봉은 영주 십 경 중 하나인 성산 일출에서 비롯되었다.

날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동시에 사람들은 점점 더 몰려오고 있었다. 커피숍에서 만난 그녀의 말대로 주위 사람 대부분은 외국인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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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가루 뿌려진 큼직한 초콜릿같지 않은가. ⓒ 황보름


올라가는 길에 성산 일출봉을 보니 뜬금없이 초콜릿이 생각났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투박하고 거친 모양의 초콜릿을 먹었던 적이 있다. 그 초콜릿 위에 녹차가루를 뿌린 뒤 두 명 정도의 남자가 포크로 대충 떠먹은 듯한 모습이 내가 향한 성산 일출봉의 모습이었다.

'초콜릿이 이렇게 더운 날 녹지도 않고 또 저렇게 굳건히 서 있을 순 없지' 하고 생각하며 계속 산을 올랐다. 티셔츠 속으로 땀이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껏 180m 높이의 오름이건만 성산 일출봉은 오를 때마다 너무 힘이 든다. 올라가는 중간중간에 허리에 손을 짚고 땀을 식히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계단을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와!' 소리를 지르며 기분을 내고 싶었지만 우선 그늘에 가서 땀을 먼저 말렸다. 땀을 식히고 정상 여기저기를 오가다가 다시 그늘이 드리워진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 셀카로 기분을 내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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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내려다 본 바다. 저 멀리 우도가 보인다. ⓒ 황보름


성산 일출봉은 누가 뭐라 해도 분명히 제주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아름다운 곳이다. 정상에 서서 저 아래 제주 시내를 내려다볼 수도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우도와 바다에 한참 시선을 두고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성산 일출봉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오름에 오르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 그 아름다움을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에선 특히 사람이 많으면 얼른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피하고 싶은 생각이 너무 강해 제대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알면서도 조용한 곳으로 우선 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이날 성산 일출봉에서도 그런 욕구가 일었다. 얼른 사람이 많은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어도 사나'를 부르는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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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보트 타고 본 성산일출봉 뒷 모습 ⓒ 황보름


욕구를 뿌리치며 나는 천천히 정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바로 벗어나지 않고 해녀들의 모습을 보러 바닷가 쪽으로 내려왔다. 30분 뒤쯤에 해녀 물질 쇼가 벌어진다고 했다. 그때까지 무얼 할까 하다가 우도에서 타지 못한 스피드보트를 타 보기로 했다.

스피드보트엔 7명 정도가 탈 수 있었는데 나 외엔 다 중국인이었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중국인은 여자 친구와 그 여자 친구의 가방을 자기 목숨보다 더 아끼는 남자였다. 안전 조끼를 여자친구에게 입혀주고 자기 것은 여자 친구의 가방에 입혀줬다.

그러고는 떡 하니 내 옆에 앉아 기분 좋게 아름다운 선율을 흥얼거리는 거였다. 보다 못한 나는 오른쪽 무릎 아래에 깔렸던 안전 조끼를 아무 말 안 하고 넘겨줬다. 남자는 깜짝 놀라는 듯하더니 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안전 조끼를 착용했다.

보트를 타는 내내 남자의 입에선 여자친구를 향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는 뭘 보고 있긴 한 걸까. 스피드보트를 타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성산 일출봉 해안절벽이 눈앞에 그림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우도 스피드보트가 훨씬 더 재미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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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어머니들 모습 ⓒ 황보름


해녀 물질 쇼는 해녀 어머니들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한 줄로 늘어선 해녀 어머니들은 서로 박자를 맞춰 가며 차분히 노래를 불렀다. 내 앞에 있던 해녀 어머니가 가장 큰 목소리로 노래를 이끌었고, 그 외 다른 어머니들은 작은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었다. 노래는 제주에 살지 않고 있는 우리도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그 노래, '이어도 사나'였다.

이승질 저승질 갓닥 오랏닥 숨 그차지는 숨비소리
좀녀 눈물이 바당물 되언 우리 어멍도 바당물 먹언 나도 낳곡 성도 나신가
아방에 아방에 아방덜 어멍에 어멍에 어멍덜 이어도 가젠 살고나 지고 제주 사름덜 살앙 죽엉 가고저 허는게 이어도 우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승길 저승길 갔다 왔다 하며 숨 끊어지는 숨비소리
해녀 눈물이 바닷물 되어 우리 어머님도 바닷물 먹고 나도 낳으시고 형님도 낳았는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들 어머님의 어머님의 어머님들 이어도 가려고 살고자 하네 제주 사람들 살아서 죽어서 가고자 하는 곳이 이어도입니다
이어도사나~이어도사나~이어도사나~이어도사나)

이색적인 구경거리를 향해 수십 개의 사진기가 달려들었다. 하지만 해녀 어머니들은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본인들의 노래를 묵묵히 부르기만 했다. 나는 사진을 찍던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해녀 어머니들의 얼굴을 보았다.

나로선 가늠할 수 없는 그들의 지난 삶이 고스란히 얼굴에 묻어나 있는 듯해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쩌면 해녀 어머니들은 지금 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이곳이 아닌 유토피아를, 이어도를, 영원한 이상향을 진정 꿈꾸고 있는지도 몰랐다.

노래를 끝낸 해녀들은 쇼를 위해 바닷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사진기들은 계속 그 뒤를 쫓았다. 하지만 아무리 바짝 쫓는다고 해도 땅에서는 바닷속 해녀들의 숨비소리까지 쫓을 수는 없을 거였다.

해녀 어머니들의 뒷모습을 보다 다시 내 욕구를 들여다봤다. 천천히 성산 일출봉을 벗어나 종달리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탔다. 마을에 내려 깊숙이 들어오니 미로 같이 복잡한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게 보였다. 진짜 올레길이었다(올레길은 제주어로 '좁은 골목'을 뜻한다).

지금까지 봤던 다른 마을들과 비슷하게 이곳 종달리도 사람이 살지 않은 마을처럼 고요했다. 가끔 무섭게 짖어대는 개들만 없다면 적막한 분위기마저 느껴질 듯했다. 마을 한가운데 서 있음에도, 마치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앞을 막아서는 높은 건물이 없는 종달리는 들판처럼 평온함을 주는 마을이었다.

내일 아침 달리게 될 거리를 미리 봐두려 해안가 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왼쪽에선 지미봉이 어서 오르라며 말을 걸고 있었고, 정면에선 바닷냄새가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걸었다. 아침의 다짐이 생각났다. 1m 앞에만 집중하자고. 그러다 보면 지미봉도 바다에도 언젠가는 가 닿을 수 있을 것이니. 그때 배가 고파오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대전에서 온 그녀가 생각났다. 가정식 백반집이 어디에 있다고 했지?

○ 편집ㅣ김준수 기자

덧붙이는 글 2015년 5월 26일부터 6월 24일까지, 30일간의 제주 여행 연재글입니다.

개인블로그에도 중복게재합니다.
#제주여행 #성산일출봉 #종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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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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