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동기 '부녀 성관계', 주변인은 아니라는데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나흘간의 기억> 제4화, 살인 동기

등록 2015.09.29 21:00수정 2015.11.0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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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나흘간의 기억> 표지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추적기' <나흘간의 기억> 표지 공갈만

(3화 : 방치된 막걸리와 안 짖는 개, 현장검증의 의문에서 이어집니다.)

살인사건에는 반드시 동기가 있다. 검찰 공소장은 15년 전부터 지속된 부녀 성관계를 살인 동기로 삼고 있다.

'피고인 백경환(아버지, 가명)은 피고인 백희정(막내딸, 가명)이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닐 무렵부터 성추행을 하여 오다가 성관계까지 가지게 되었고, (중략) 계속하여 피고인 백희정과 성관계를 가져오면서, 이를 눈치챈 피해자 최OO과 지속적인 갈등을 겪어 오고 있었다.'

죽은 최씨(어머니)가 10년 전부터 이를 눈치챈 후, 백경환씨와 갈등이 누적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부녀 자백을 제외하고는 증거가 없다.

당시 검찰 기자회견에서도 기자들은 죽은 최씨가 부녀 성관계를 알고 10년간, 어떻게 한집에 사는 게 가능했는지 궁금해했다. 또 만약 백희정씨가 15년간 성폭행을 당해왔다면 살해대상을 아버지로 삼아야 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가족이나 친척은 부녀 성관계를 어떻게 생각할까?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버지 백경환씨는 검찰 조사에서 사건 발생(7월 6일) 후에도 성관계를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하여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가족들 반박 장면
가족들 반박 장면 공갈만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 옆에서 잔 건 '나'다."
"방이 붙어있어 박수 한 대 쳐도 소리가 다 들린다."


또한 당시 방송에 나온 전문가들도 '부녀 성관계'에 의문을 표했다. '문장 완성 검사'에서 딸 백희정씨가 작성한 문장을 보면 성폭행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성폭행했다면 아버지는 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부녀 사이는 그런 분위기의 정도가 약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문장 완성 검사>
1.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는?
-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2. 대개 아버지들이란?
- 무섭다.
3. 내가 바라기에 아버지는?
- 잘 대해줬으면 한다.


 전문가 의견
전문가 의견 공갈만

"성적인 행동이 지속적으로 있었다면 애착적 증상들이 나타나야 해요. 집착적 증상들이.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통제하거나 감시하는 정도가 생각보다 약하다는 거예요."(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전문가 의견)

부녀가 '성관계'를 자백했는데도 이렇듯 주변인과 전문가는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떨까? 법원은 1심부터 대법원까지 '부녀 성관계'를 인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부녀 모두 검찰에게 성관계를 자백했고, 무엇보다 막내딸이 아버지의 신체적 특징 중 하나인 포경 여부를 알고 있었다.

1심 재판부는 부녀 성관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무죄를 선고했다. 대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부녀 자백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죽은 최씨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그게 지속적 갈등 단계로 발전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사건 전날 상황을 보자.

'살인할 이유가 없다'는 1심 재판부, 증거는 자백뿐

 사건 전날 일상
사건 전날 일상 공갈만

당시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 농약을 치고,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오후에는 땔감을 함께 주우러 나갔고 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외식을 했다. 식사 분위기에서도 별다른 이상한 점이 없었다는 진술이 있었다. 동네 사람들 대다수도 부부 금슬이 좋았다고 말한다.

이를 토대로 1심 재판부는 '갈등이 표면화 된 게 없는데, 살인할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은 부녀 진술이 믿을 만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부녀의 진술이 구체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고인들이 이 사건 살인 범행에 사용한 청산염의 형태나 크기, 색깔에 대한 진술이 일치하거나 유사하고 실제로 청산가리를 보거나 취급해보지 않고서는 표현해내기 어려울 만큼 구체적인 점, ... (범행) 역할 분담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

냉정하게 따져보자. 자백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것도 공범이 동시에 자백했다. 검찰이 고문이나 협박을 한 것도 아니었다.

형사들도 경찰과 검찰 조사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한민국 범인들 대다수가 경찰에서 부인은 하더라도 검찰청에 들어가게 되면 자백하게 돼 있다고 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검사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한 때문이다.

법률에 정해진 권한만 보자.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독점 영장청구권, 독점기소권, 형 집행권 등이 있다. 피의자들에게는 '기소재량권'이 가장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에서도 막내딸은 "검사가 솔직히 말하면 '형량을 줄여준다'는 말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12년 1월 18일 방송분 <그것이 알고 싶다> '무죄인가,무기징역인가'편 캡처
2012년 1월 18일 방송분 <그것이 알고 싶다> '무죄인가,무기징역인가'편 캡처SBS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아무런 권한도 없는 경찰 수사단계에서 자백할까? 형사들은 사람에게 양심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형사들은 계획범죄나 악질들인 경우 경찰에서 자백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또 있다. 이들 부녀는 경찰 조사에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모두 통과했다.

필자가 만난 경찰 대부분은 거짓말탐지기를 신뢰한다고 했다. 물론 거짓말탐지기도 한계는 있다. 진실과 거짓 중간에 '판단 불능' 구역이 있다는 것이다. 진실 또는 거짓이 얼마든지 판단 불능으로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진실로 가려진 자백이 거짓으로 바뀌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녀는 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살해했나

 거짓말탐지기
거짓말탐지기 공갈만

이 사건의 살해 동기인 '부녀 성관계'도 의문이다. 부녀 성관계는 검찰 공소사실의 근간이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백희정씨가 아버지 신체 특징인 '포경 여부'를 알았다고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렇다)와 X(아니다) 중 하나를 선택해서 답하면 되는 문제였다.

즉, 부녀 성관계를 뒷받침하는 직접 증거는 '부녀 자백'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백희정씨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지속해서 당해왔다면, 왜 백희정씨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살해 대상으로 삼았을까? 이는 모두가 궁금해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피고인 백희정(막내딸)의 입장에서 피고인 백경환(아버지)은 한편으로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성적인 만남으로 맺어진 이성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중략) 증오와 함께 (중략) 싹트는 이성적 사랑이 혼재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부녀의 감정에는 '성범죄 피해자로서 느끼는 증오와 함께 오랫동안 성관계를 하면서 싹트는 이성적 사랑이 혼재'됐다는 것이다. 정말로 이게 가능할까?

성폭행 사건은 형사합의부 주요 사건이다. 형사 합의부 경험이 풍부한 판사 출신 변호사에게 물어봤다. 그는 이런 관계가 "흔하지는 않지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성폭행만 당했다고 그런 감정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딸 입장에서 아버지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밀접한 관계일 때 이런 감정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의지 항목에는 '경제적 원조'도 포함이 된다. 그렇다면 백희정씨는 아버지로부터 어느 정도의 경제적 원조를 받았을까?

경찰은 아버지에게 '막내딸에게 용돈을 주는지' 물었다. 막내딸이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을 벌면서부터는 달라고 하면 '1~2천 원' 정도는 준다고 했다. 그전에는 한 달에 주는 용돈이 평균적으로 5만 원이 안 됐다고 말했다.

검찰은 백희정씨가 아버지를 살해하지 못하는 까닭을 군대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혐오의 대상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아버지라는 넘지 못할 벽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항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신에 대한 자살로 연결시키는 것이 보통입니다. (중략) 실제로 군대에서 구타를 당한 사병은 상대방인 선임병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기보다는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은 점을 감안하여야 할 것입니다.'

형사 합의부 부장 판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의 이런 논리에 동감했다. 단, 아버지가 집안에서 아주 강한 존재이고, 상하 계층 관계가 굳어진 경우에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경우 상대를 '살해'하기보다는 '자살'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척, 마을 사람들은 이런 검찰의 논리에 어떤 입장을 보일까? 모두 '불인정'이었다. 여러 진술을 종합한 이 집안의 역학 관계를 살펴보자.

 집안 역학 관계도
집안 역학 관계도 공갈만

위 관계도가 보여주듯이 백희정씨가 가장 싫어했던 대상은 두 언니였다고 했다. 결혼 후에도 친정에 올 때마다 늘 동생에게 잔소리했기 때문이다. "방 치워라", "머리 감아라" 등의 훈계였다.

백희정씨는 부지런하지 못했다. 집안일을 시켜도 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엄마도 언니들과 비슷한 잔소리를 하곤 했다. 그때마다 백희정씨가 보이는 반발 정도는 약했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막내딸이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백희정씨 자술서에는 '자살'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런데 자술서를 보면 백희정씨에게 높은 절망의 벽은 이 집안에서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인 듯하다. 백희정씨는 엄마가 "다른 애들은 엄마를 도와주는데 너는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며 핀잔을 줄 때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백희정씨는 그런 엄마를 향해서 "내가 죽으면 되잖아"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언니들의 경우에는, 이렇게 백희정씨가 훈계에 되받아칠 때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엄마는 "쓰잘머리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그런 말 하면 혼난다"며 아주 강하게 나갔다.

이제 우리는 가족이 아닌 주변인들의 시선을 통해서 이 집안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하자. 부녀가 오랫동안 성관계를 했다는데, 그 낌새를 알아챈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일까?

(제5화 - '주변인 관찰'편으로 이어집니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구겨진 제복 #살인사건 #나흘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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