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펜으로 화장한 딸, 이유 물었더니

[다다와 함께 읽은 책 29] 샘 맥브래트니가 쓴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

등록 2015.11.04 19:34수정 2015.11.05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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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글 일부는 5세 아이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아이의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왜 사인펜으로 눈썹하고 입술을 칠했어?"


이상하다. 엄마가 왜 웃고 있지? 이럴 때 엄마는 보통 큰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데... 엄마가 웃고 있으니까 나는 아주 조금 더 무서웠다.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뭐라고 말해야 덜 혼날까? 나는 계속 머리카락만 꼬았다 풀었다. 아차차, 이건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 행동인데... 조그맣게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칠하면 예쁠 것 같아서."
"뭐?"

이상하다. 엄마가 소리내어 웃었다.

"근데 엄마는 립스틱을 안 바르는데... 립스틱도 없잖아. 근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내 말이 그 말이다. 나는 진짜 예쁜 색깔 립스틱을 바르고 싶었는데, 엄마 화장품 가방에는 립스틱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사인펜으로 입술을 칠한 건 어찌보면 다 엄마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게, 엄마는 왜 립스틱이 한 개도 없어? 바르면 더 예쁠 텐데..."

이번에는 엄마가 나를 안았다. 깔깔깔 더 크게 웃으면서. 그러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엄마도 립스틱 하나 살까? 너는 무슨 색이 좋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빨간색, 난 빨간색이 좋을 것 같아."

끝까지 엄마한테 혼나지 않았다. 참 이상한 날이다. 게다가 엄마가 립스틱을 산다니... 근데 사인펜으로 입술 칠한 게 그렇게 이상한가? 난 예쁘기만 한데...

아이도 아는 걸까. 뭔가 잘못했을 때 덜 혼날 수 있는 방법은 솔직한 말 뿐이라는 걸? 그런 순간엔 크게 혼내려던 마음이 쏙 들어간다. 이날도 그랬다. "예쁠 것 같아서"라는 말에 한번 웃고, "립스틱을 바르면 (엄마가) 더 예쁠 것 같다는 말에 또 한번 웃음이 빵 터졌다. 엉뚱한 둘째 아이의 매력에 내가 서서히 빠져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베틀북)는 책 제목처럼.

엄마도 아이도 평화로울 수 있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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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단다> 겉표지. ⓒ 베틀북

엄마곰 아빠곰 그리고 아기 곰 셋이 살고 있었어. 엄마, 아빠 곰은 잠들기 전 아기곰들에게 늘 "너희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기곰이란다"라고 말하곤 했지. 아기곰들은 궁금했어.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엄마곰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어. "그건 아빠가 갓 태어난 너희들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내가 본 중에서 가장 예쁜 아기곰이라고. 세상 누구도 이보다 더 예쁜 아기곰은 못 봤을 거야"라고. 정말 멋진 대답을 들은 아기곰은 기분이 좋아서 잠들었지.

어느날 첫째 아기곰은 이런 생각이 들었어. 엄마곰은 얼룩무늬가 있는 동생들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둘째 아기곰도 아빠가 오빠랑 동생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 같은 남자곰이니까. 셋째 아기곰도 걱정이 생겼어. 형과 누나보다 나는 왜 이렇게 작지?

아기곰들은 아빠에게 우리 셋 중에 누가 제일 예쁜지 물었어. 아빠곰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어. "너희 셋 다 예쁘다"고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면서. 또 얼룩 무늬가 없어 걱정하는 첫째 아기곰과 아들이 아니라고 걱정하는 둘째 아기곰과 키가 작아 고민하는 셋째 아기곰에게 "너희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어. 다른 건 아무 상관 없다 하셨지. "너희 셋은 모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기 곰이야"라면서.   

정말 멋진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이 말을 자주 해줘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둘째 아이를 갖기 전에, '둘째는 뭘 해도 예쁘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어렵게 둘째를 가진 만큼 그 기대는 더 컸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내 경험에 비추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런 애는 열을 줘도 키우겠다'는 소리를 듣던 큰아이와는 어찌나 다른지... 갖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더더더더 많은 우리 둘째. 또 고집은 얼마나 센지... 뭔가 제 맘에 들지 않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떼를 쓰고 우는 그런 날엔, '이건 아니다' 싶을 때도 많았다. 서러워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와 같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바람이 아닌가 싶다. 만약 그랬다면 '뭐야, 하나도 새로운 게 없잖아?' 하는 불평을 했을 수도. 아이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야 하는 건 그래서다. 그래야 엄마도 아이도 평화롭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한단다!

아니타 제람 그림, 샘 맥브래트니 글, 김서정 옮김,
베틀북, 2004


#그림책 #다다 #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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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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