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V 전기가 흐르는 라인 위를 걸어다녔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31] CCTV 수리 기사

등록 2015.12.07 14:19수정 2016.05.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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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넷 어느덧 벌써 30대 중반 나에겐 절대로 오지 않을 것 같았던 30대 중반 미친 듯이 일만 하며 살아온 10년이 넘는 시간 남은 것 고작 500만 원 가치의 중고차 한 대 사자마자 폭락 중인 주식계좌에 500 아니 휴짓조각 될지도 모르지 대박 or 쪽박


2년 전 남들따라 가입한 비과세 통장 하나 넘쳐나서 별 의미도 없다는 1순위 청약통장 복리 좋대서 주워듣고 복리적금통장 몇% 더 벌려고 다 넣어둬 CMA통장 손가락 빨고 한 달 냅둬도 고작 담배 한 갑 살까 말까 한 CMA통장 이자 외국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놈 가끔 연락이 와 자기는 노가다 한대 노가다해도 한국 대기업 댕기는 나보다 낫대 이런 우라질레이션 평생 일해도 못 사 내 집 한 채" -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노랫말 중에서

브라운관 ITC공정까지 직접 하도록 구성된 라인을 가진 지금의 우리 회사가 ITC를 끝낸 CRT를 납품 받아 TV를 생산하던 이전 직장보다 공간이 더 협소했다.
브라운관ITC공정까지 직접 하도록 구성된 라인을 가진 지금의 우리 회사가 ITC를 끝낸 CRT를 납품 받아 TV를 생산하던 이전 직장보다 공간이 더 협소했다.pixabay

1톤 트럭을 몰고 대기업에 자재를 받으러 가는 '납품 사원'을 하다가 TV 생산팀으로 부서 이동을 하여 CCTV 라인의 수리 기사가 되었다. 이로써 나는 벌써 2번째 TV 공장에서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TV 공장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전 직장의 TV 조립라인은 지금의 회사 TV 조립라인보다 훨씬 더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납품 받는 CRT(Cathod Ray Tube - 브라운관)의 차이 때문이었는데 ITC(Integrate Tube Convergence - 전자빔이 형광체에 정확하게 자기색을 발광시키도록 하는 작업) 공정이 이전 직장은 CRT 납품 회사에 현재 직장은 자체 생산 라인에 있었다.

현재 직장은 CRT의 ITC 공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전 직장에 비해 생산 현장이 훨씬 좁았다. CRT는 반드시 Aging(전원을 인가하여 예열을 하는 것)을 거친 후 ITC 작업이나 검사 공정을 거치는데 공간이 협소한 탓에 생산 라인을 2층 구조로 만들어 Aging 라인이 머리 위에 있었다. 그 덕에 천장이 낮아지는 효과가 생겼고 더 비좁게만 느껴졌다.

정신 없이 일하는데 현장이 넓고 좁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Front Case(TV 전면 플라스틱 케이스)와 CRT가 조립된 반제품 상태로 2층 Aging 라인에 전원이 인가된 채로 올라가는데, 2층에서 이동하는 제품이 넘어지거나 하면 일이 귀찮아진다.


사다리를 타고 220V 전기가 흐르는 2층 Aging 라인에 올라가서 직접 그 제품이 있는 곳까지 허리를 숙인 채 걸어 가야 한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일으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 작업자들은 자기 공정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면 오롯이 내가 처리를 해야 했다.

CCTV와 TV의 차이는 크게 Tuner(안테나 신호를 입력하는 부품)가 있고 없고다. TV 라인에 수리사로 일하고 있던 스무살 동생은 CCTV는 어려워서 수리를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CCTV 수리를 능숙하게 할 때쯤 되고 회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보니 CCTV 회로가 더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CCTV도 다채널의 경우 어렵기도 하다.


CCTV는 4채널 14인치~21인치 모델을 주로 생산했다. 그 모델들은 회로가 아주 간단하다. BNC(고해상도를 아날로그 신호를 입력하는 단자) 단자로 입력되는 카메라 신호를 CRT 모니터에 표시해주는 회로가 전부다. TV로 따지면 안테나 신호를 처리하는 Tuner 관련 회로가 쏙 빠지고 '외부입력' 단자만 있는 TV와 같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모든 CCTV 모델이 간단한 회로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았다. 아주 고가에 판매되던 디지털 기반의 21인치 8채널 CCTV가 있었는데 그 모델은 기본 구동 회로 이외에도 Mux(MUltipleXer - 여러 통신 채널에 사용되는 장치) 보드가 별도로 기본 보드에 장착이 되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그 Mux 보드는 다른 회사에서 생산을 해 납품을 받았는데 불량이 자주 발생했다. 불량 Mux 보드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CCTV의 외부 플라스틱 커버를 벗겨내고 실드(전자파를 차단하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속 커버)를 벗겨내야 했다. 거기다 보드와 조립된 실드 브라켓까지 해체를 해야만 Mux 보드를 분리할 수 있었다. 그 보드 하나를 교체하기 위해서 나사만 수십 개를 풀어야 했으므로 아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귀찮았다.

밤 11시 넘어 퇴근했는데...

화장실 일부 작업자들은 쉬는시간이 아까워 화장실은 근무시간에 가려고 꾀를 부리곤 했다.
화장실일부 작업자들은 쉬는시간이 아까워 화장실은 근무시간에 가려고 꾀를 부리곤 했다.pixabay

생산 라인에서 근무하는 작업자들은 대부분 40대 아주머니들과 외국인 근로자 그리고 산업기능요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산업기능요원으로 근무하는 동료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오전 10시 30분경에 10분을 쉬고 점심 먹고 저녁시간이 되기 전까지 3시 30분경에 10분을 쉰다. 그 외의 시간은 계속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라인에 붙어서서 일을 해야한다.

라인에 근무 하는 작업자들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 생리현상으로 근무시간에 화장실을 가야할 때가 있다. 그러면 급하게 주임님이나 수리 기사를 찾는다. 화장실을 다녀 오는 동안에도 생산 라인은 계속 가동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동료들은 쉬는 시간에는 오롯이 쉬는데 집중하고 큰 볼일을 보고 싶으면 일부러 근무시간을 이용했다. 그렇게 조용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그 짧은 시간이 아주 달콤하기 때문이다. 매번 다급하게 나를 찾아 잠시만 대신 해달라고 하면서 화장실 가는 동료는 딱 정해져 있었다. 일부러 그러는것을 알기에 나도 사람인지라 바쁠 때 찾으면 괜히 귀찮아서 대신 해주기 싫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보다 자유롭게 일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그 잠깐의 농땡이를 이해해줘야만 했다.

생산 라인은 연장근무를 하지 않고 제 시간에 멈추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자재의 납품 시기가 맞지 않거나 품질 이슈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생겨야 제 시간에 멈추었다. 그런 날엔 매일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한다며 작업자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만발했다.

하지만 제 시간에 퇴근하는 날은 품질 문제로 인해 불량품이 다량으로 쏟아져 나와서 대책을 세우기 위해 연장 근무를 하지 않는 날이 많았다. 다음날부터 생산될 제품에서 더 이상 똑같은 불량품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대책을 세우긴 하지만 이미 엄청나게 바닥에 깔려 있는 불량품들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그런 날은 모두가 오후 5시 30분에 퇴근을 하고 불꺼진 현장에서 수리 기사 작업대에만 불을 켜고 밤 늦도록 일을 했다. 한 날은 밤 11시가 넘어 지친 몸을 이끌고 내가 살던 원룸에 도착해 키를 열쇠구멍에 꽂고 열었는데 문이 잠겨 있지 않은 날이 있었다. '아침에 문을 잠그지 않았었나?'라고 생각하고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난장판이 되어 있는 내 보금자리를 보고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관련기사 : '곰팡이' 때문에 도둑이 들었다).

빈 집에 도시가스 배관을 타고 도둑이 든 것이다. 손에 80만 원을 쥔채 아무 대책 없이 타지에 올라와 이 악물고 버티며 이제 겨우 살림살이 제대로 장만해서 살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온 인생이 허무해지고 앞이 캄캄해졌다.
덧붙이는 글 자작곡 '응답하라! 30대여~' 듣는 곳
http://www.bainil.com/album/365
#수리기사 #CCTV #회로 #생산라인 #작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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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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