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복판에 도서관수원시 조원시장에 한복판에는 도서관이 있다. 상인이 짓고 주민들이 키운 공간이다.
정순옥
꿈틀버스 탑승객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모퉁이 분식점을 지나 이불가게 옆, 작은 출입문 앞에서다. '대추동이 작은 도서관'이란 간판이 눈에 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지르밟아 안으로 걸어 들어서자 형광등 불빛 밑으로 책장 모습이 드러난다. 책꽂이마다 책이 촘촘하다. 시끄럽던 바깥과 달리 실내는 조용하다.
낡고 허름한 상인회 사무실이 도서관으로 변했다. 상인조차 외면했던 곰팡이 소굴이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행복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주민들과 상인들로 구성된 대추동이 문화만들기가 공을 들인 결과다. 이들은 지난 2012년 경기도와 수원시로부터 1억 원을 지원받아 상인회사무실의 묵을 때를 걷어냈다. 먼지 쌓이고 시커먼 바닥도 쓸고 닦았다. 텅 빈 공간엔 도서 6000권을 들여와 공간을 채웠다. 왜 시장 안에 도서관을 지었을까. 정순옥(51) 대추동이 문화만들기 대표의 설명이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예전만큼 시장을 찾는 주민들이 없다. 대형마트에 가지. 상인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원시장 상인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열린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때마침 경기도에서 작은 도서관을 지원해주는 공모사업을 열었다. 이거다 싶었다. 엄마들이 장 보는 사이에 아이들은 도서관서 책을 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인회서도 좋은 생각이라며, 그동안 방치했던 사무실 공간을 내줬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도서관을 통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장바구니와 책이 만났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시장 안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도서관에 아이들이 찾아왔다. 대개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든 엄마와 함께였다. 군것질을 하던 아이들은 손에 책을 쥐었다. 시장 안에 엄마가 장보는 사이 아이는 책을 읽는 새로운 문화가 시나브로 퍼져갔다.
교육 프로그램 요구가 높아졌다. 역할을 확장했다.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대학생들이 모여 아이들의 교육을 맡았다. 자원봉사자는 사서를 자처했고 엄마들도 일손을 거들었다. 정 대표가 말했다.
"방치됐던 공간이 변했다. 아이들이 찾아오면서 영화감상, 댄스수업, 미술수업, 체험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었다. 먼지 쌓였던 장소가 활기를 되찾았다. 상인들은 시장이 활성화돼 좋았고 주민들은 아이들을 맡아주면서도 유익한 공간이 생겨 기뻐했다. 마을 공동체가 되살아나고 상인과 주민이 한 마음 되면서 시장 안에 사람 사는 정(情)이 깊어졌다."마을주민 DJ, 야채가게 아저씨 입담에 감동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