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울음 멈추게 한 히말라야 '개저씨들'

[한 번쯤은, 네팔 ⑩] 타다파니에서 시누와까지... 해발 2000m에서 만난 백숙

등록 2016.01.10 11:11수정 2016.01.1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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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혼자 '한 달 네팔여행'을 다녀왔다. 10박 11일 동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올랐고, 어떤 날은 할 일 없이 골목을 서성였다. 바쁘게 다니는 여행 대신 느리게 쉬는 여행을 택했다. 쉼을 얻고 돌아온 여행이었지만, 그 끝은 슬펐다. 한국에 돌아오고 2주 뒤 네팔은 지진의 슬픔에 잠겼다. 그래도 네팔이 살면서 한 번쯤 가봐야 할 곳임에는 변함이 없다. 30일간의 이야기를 전한다. - 기자 말

보경이와 우리는 타다파니에서 헤어졌다. 보경이가 찍은 우리의 뒷모습. ⓒ 김보경


헤어지기 전, 자신의 가방과 포터 아저씨의 가방을 앞뒤로 메고 사진을 찍은 보경이. ⓒ 김보경


오늘은 보경이와 헤어지는 날이다. 만나면 헤어지게 돼 있다지만, 트레킹 4일만의 이별은 너무 짧다.


길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트레킹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와의 이별이 더욱 아쉽다. 자신의 목표였던 푼힐 트레킹을 마친 보경이는 오늘부터 하산해 나와 선재 오빠가 포카라로 돌아가기 전 네팔을 떠날 예정이기에 맥주 한 잔 할 수 없게 됐다.

푼힐 전망대보다 설산이 더 가까이 있어 웅장한 느낌을 주는 타다파니에서의 일출을 마지막으로 우린 헤어졌다. 로지 앞에서 다 같이 기념 사진을 찍은 후, 그녀는 먼저 떠나는 우리를 오래도록 배웅해줬다.

괜히 "호랑이 장가 가는 날씨"라고 말했다가...

우리가 방이 없어 자지 못한 추일레 로지에서 바라본 풍경. 그림이 따로 없다. ⓒ 박혜경


타다파니(2721m)에서 시누와(2340m) 가는 길은 길이 아니라 그냥 '돌덩이'였다. 일정한 높이로 잘 다져진 계단이 아니라서 오르막도 내리막도 만만치 않다. '보경이가 같이 왔으면 엄청 힘들어했겠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걸었다. 좋은 말동무였던 그녀가 없어지자 포터 아저씨도 왠지 모르게 시무룩한 눈치다. 그 와중에 하늘은 해가 뜬 상태에서 비를 뿌린다.

"아저씨, 한국에선 이런 날씨를 보고 '호랑이 장가 가는 날'이라고 해요."
"호랑이 장가 가는 날? 네팔에서는 '어떤 좋은 사람이 죽어서 하늘로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근데, 호랑이는 자기네들이 원할 때 언제든 결혼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아... 아저씨의 허를 찌르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왠지 모르게 속담(?) 스토리텔링에서 진 기분.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면 우리의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아래 ABC)엔 모레 정도면 도착할 것이다.

트레킹 중간 중간 잠시 짐을 풀어 놓고 휴식을 취한다. ⓒ 박혜경


퀴즈 하나. 지구의 3극점(북극점, 남극점, 에베레스트) 중 가장 먼저 인간의 발길이 닿은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북극점(1909년)-남극점(1911년)-에베레스트(1953년) 순이다. 범위를 에베레스트 산(8848m)이 아닌 히말라야 산맥 8천미터급 고봉으로 넓혀 봐도 순서는 바뀌지 않는다. 히말라야 14좌 중 가장 먼저 사람의 발길이 닿은 세계 10위 높이의 안나푸르나(8091m) 역시 1950년에야 초등됐다.

우리가 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아래 ABC)는 1950년에 초등된 안나푸르나 주봉(1봉)이 아니라 남봉(7219m)의 베이스캠프이다.

네팔 히말라야 산 속에서 '백숙' 찾는 한국인들

로지에 휘날리는 태극기. ⓒ 김보경


'신라면,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백숙, 김치'

오르락 내리락 돌계단 끝 하얀 간판에 낯익은 글자들이 보인다. 네팔 여행 준비를 하면서 찾아본 블로그에도 자주 등장하던 간판이다.

한식을 먹을 수 있어 유명해진 촘롱의 식당 안은 벌써 손님들로 가득하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식당 창문에는 한국 산악회와 아웃도어 브랜드 스티커가 종류별로 붙어 있다. 밖에 놓인 테이블에서도 단체 한국 트레커들이 식사 중이다.

"안녕하세요."
"아~ 한국분들이시구나~ 안녕하세요."
"ABC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네, 저희는 내려가는 중이에요."

날씨는 어땠는지, 일출은 봤는지, 춥지는 않았는지... 짧은 시간 동안 정보 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맞은편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여행자들. 뒷편으로 올라가야 할 계단이 보인다. ⓒ 박혜경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한식 생각이 났던 적은 거의 없었다. 두 달 동안의 인도 여행에서도 한국 음식은 단 두 번 밖에 먹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트레킹은 좀 달랐다. 매일 평균 6시간 안팎을 걷는 일정에 기운이 쏙 빠졌고, 김치가 들어간 매콤한 한국 음식을 먹으면 힘이 날 것만 같았다.

메뉴를 보니 김치볶음밥이 390루피(한화 4300원), 김치찌개는 450루피(한화 5000원), 백숙은 3000루피(한화 3만3000원). 3만원이 넘는 백숙이라니... 입이 쩍 벌어진다.

사실 히말라야에는 닭에 대한 슬픈 전설(?)이 있다.

'적지 않은 로지의 사우니(주인)들은 한국 트레커(혹은 산악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전설 같은 일화를 들려주곤 한다. 결론은 항상 똑같아서 마지막 대목에서는 매번 민망함에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한국 사람들은 언제나 닭을 잡아 오라고 떼를 쓴다는 것이다. 마치 닭을 통째로 뜯지 못하면 트레킹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고 한다. 이젠 없다 해도 어떻게든 닭을 잡아 오라고 닦달해대는 통에 한국 트레커들이 단체로 왔다 가면 주변 마을까지 닭 울음 소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133쪽

산에서 내려오면서 백숙집에 꼭 들르는 한국인의 특성이 해외에서 나오지 않을 리 없다. '트레킹 중 토종닭 백숙을 특식으로 제공한다'고 써 놓은 여행 상품이 있을 정도다. 백숙을 내놓으라고 떼 쓴 사람들 덕분에 해발 2000m 식당도 메뉴에 백숙을 올려놨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산인 한라산이 1950m이니, 한라산 정상에 백숙집이 있는 셈이다).

촘롱 로지에서 먹은 김치볶음밥. ⓒ 박혜경


접시에 산처럼 수북이 쌓여 나온 김치볶음밥을 싹싹 다 긁어 먹었다. 김치는 눈 크게 뜨고 찾아야 겨우 보일 정도로 적게 들어갔지만 네팔인 주인이 직접 담근 것 치고는 제법 맛이 났다.

"사우니, 미또차!(주인 아주머니, 맛있어요!)"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에게 엄지까지 치켜들며 얘기했지만, 이런 칭찬을 많이 들었는지 시크한 표정이다.

"2년치 휴가 모아서 네팔 트레킹 왔어"

네팔 트레킹 중간 중간에 이런 다리를 건너야 한다. 왼쪽에 있던 게 기존의 다리이고, 오른쪽이 새로 놓인 다리. 오래된 다리 밖에 없을 땐 정말 아찔하다. ⓒ 박혜경


계단, 계단, 계단... ⓒ 박혜경


"중국에선 1년 연차휴가가 5일이야. 난 지난해랑 올해, 2년치를 모아서 네팔에 온 거지. 사실 트레킹할 생각은 없었는데, 친구가 꼭 가라고 추천해주더라고... 옷이며 가방이며 급하게 구해서 왔어."

시누와 로지를 10분 정도 앞두고 한 가게에 앉아 레몬티를 마시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곧 그칠 줄 알았던 비는 점점 양이 늘어 퍼붓는 수준이 됐다. 그때 나와 선재 오빠가 앉아 레몬티를 마시고 있는 처마 밑 테이블로 한 여자가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인리. 중국 베이징의 한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24살의 그녀는 10일의 휴가를 받아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왔다고 했다. 2년치 휴가를 고스란히 트레킹에 쏟아 부은 그녀는 한국에선 1년만 일해도 연차가 15일이란 얘기에 매우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선 10년 일해야 10일의 연차가 생기고, 20년 일해야 15일 연차를 쓸 수 있다고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시누와 로지 가기 전 내린 비를 피한 가게. ⓒ 박혜경


그녀가 '말도 안 되는 중국의 연차제도'에 대해 분노하고 있을 때, 그녀의 포터는 '말도 안되는 소식' 하나를 더 가져왔다. 지금이 스프링 시즌이라 싱글룸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몰리는 시즌엔 혼자 쓸 방 잡기가 쉽지 않다. 예상치 못한 난처한 상황에 인리의 얼굴은 더 구겨졌다.

"오빠, 이 친구 방이 없다는데 우리랑 같이 방 쓰자고 할까요?"
"네, 저는 상관없어요."

그렇게 인리는 우리와 하룻밤 룸메이트가 됐다. 비가 그치긴 글렀다. 우리는 우비를 뒤집어 쓰고 로지로 내달렸다.

<시시콜콜 정보>

- 최소 두 달 전부터 운동 : 계단 오르기, 빠르게 걷기, 가벼운 등산 등 꾸준한 운동을 해두면 트레킹 때 도움이 된다(사실 꾸준히 하기가 쉽진 않지만...). 

- 천천히, 천천히 : 네팔 트레킹의 미덕은 '천천히'이다. '빨리빨리 나라'에서 온 한국인 입장에선 복장 터질 일이지만, 고산병 예방을 위해서도 천천히 가는 게 중요하다. 우린 베이스캠프를 찍으러 가는 게 아니고, 거기까지 가는 길을 감상하기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네팔 트레킹 #한 번쯤은, 네팔 #네팔 여행 #ABC 트레킹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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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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