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의 바바람을 막아 줄 큰 우산이 되어주고 싶다는 이경아씨
김혜원
"소아 백내장으로 생후 8개월에 수술을 받았지만 고등학교 2학년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었어요. 그런데 고2 때부터 갑자기 눈이 나빠지기 시작해서 22살에 시각장애 4급을 받게 된 거예요.
이상한 건 녹내장으로 안압이 엄청 올라간 상태고 눈이 점점 안보였는데도 통증이 없었다는 거예요. 통증이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도 가지 않고 눈이 안 보일 때가지 그대로 뒀지요. 그래서 저는 아픈 것이 축복이라고 말해요. 통증만 있었더라도 눈이 안 보일 때까지 그대로 두진 않았을 테니 말이에요."봄볕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3월 15일, 시각장애인 사회복지사 이경아씨를 만나기 위해 동대문구 휘경동에 위치한 동문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내가 이경아씨를 만난 것은 2년 전. 당시 이경아씨는 내게 동문장애인복지관에서 발행되는 신문 <아워보이스>의 기자단을 대상으로 '기사 쓰기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그녀는 내게 먼저 자신이 시각장애인임을 밝혔지만 전화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을 때만해도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떠올릴 때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검은 안경을 끼고 흰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의 만남도 그렇게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검은 안경을 끼고 있지도 않았고, 흰지팡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사뿐사뿐 걸어와 "기자님 이리로 오세요"라면서 사무실로 안내했다. '이 사람 뭐지? 보이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명함을 주고 악수를 하면서 그녀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내 손을 찾지 못했고 명함 역시 손에 쥐어 주기 전에는 받지 못했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허공을 바라보거나 수시로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야 진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바보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순간에 감사하지 못한 게 후회" "오른쪽 눈은 빛도 보이지 않는 전맹 상태고요. 왼쪽 눈에만 약하게 잔존 시력이 남아있는데 동그란 어항 속에 앉아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 어항 속에 앉아서 물 밖을 내다보는 느낌인데 그것도 흐리고 명확하지 않은 편이에요. 2002년 22살에 처음 복지카드를 받을 때는 4급이었는데 지금은 점점 진행이 돼 1급이고요. 22살부터 언젠가는 두 눈 모두 전맹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2년 동안 급격히 안 보여져서 저도 약간 당황하고 있어요."
당황해 하고 있다면서도 경아씨는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억울해 하고 힘들어 하고 슬퍼하고 좌절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일이라도 안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너무 소중하죠. 그래서 매일 매일 오늘 하루도 후회 없이 살자고 결심해요. 후회 없이 사랑하고 후회 없이 표현하고…. 분명히 눈이 전혀 안 보이는 그 어느 날, 오늘의 저를 돌아보게 될 텐데 그때 후회하고 싶지 않거든요. 바보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서 우울해하고 청승떨고 이 순간에 감사하지 못한 것이 후회될 것 같아요. 최근에 불면증이 생겼어요. 난 항상 밝아, 난 괜찮아, 난 당당해 그랬는데…. 사실은 안 괜찮아도 괜찮은 척 하니까 잠이 안 왔던 거예요. 스물두 살 처음 복지카드를 받을 때 장애를 수용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을 바꾸기로 했어요. 장애를 수용한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자신과 싸우며 장애를 수용하는 사는 거라고요."그녀의 목표는... '장애인을 위한 큰 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