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기', 이상주의자의 헛소리라고?

[제주와 서울,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중 ②]

등록 2016.04.18 13:42수정 2016.05.2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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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글에서 이어집니다 : 제주로 가지 못했다... '월급 마약' 때문에)


우리, 특히 나는 대한민국 서울에서의 정글과도 같은 사회생활과 썩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히나 대한민국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내 정치' '접대' '음주가무' '자발적 야근'과 '휴가반납' 등의 덕목(?)들에 대해 거의 적대적이라할 정도의 반감을 품고 있었기에 내 직장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성산에서 구좌로 이어지는 동부해안선을 걸을 때면 오롯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성산에서 구좌로 이어지는 동부해안선을 걸을 때면 오롯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영섭

오랜 시간 함께해온 직속 상사 외에는 모두 나를 현실감각 없는 이상주의자처럼 취급했고, 그저 버티기에 급급하던 초년생시절을 지나 어느덧 뒤를 돌아보게 되는 과장급이 된 뒤에는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이 내게 맞지 않음을 확신하게 됐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처음으로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건 그래서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며 버티기에 급급했던 내게도 드디어 희망과 의지라는 게 생겼기 때문이다.

 한라산 정상에 다다라 구름 위에 서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가식적인 행동들이 떠올라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한라산 정상에 다다라 구름 위에 서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가식적인 행동들이 떠올라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이영섭

하지만 막연한 희망과 의지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주 후 뭘하고 사느냐에 대한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이요, 우리를 걱정하고 아껴주는 지인들을 이해시키는 것 또한 난제였다.


가수 이효리씨가 결혼과 함께 제주 애월읍으로 이주하고, 뒤이어 여러 연예인들과 육지인들이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이제는 제주로의 이주를 동경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제주 이주민 1세대들이 막 자리를 잡아가던 당시만 해도 제주 이주는 이상주의자의 정신 나간 헛소리에 가까웠다.

제주로의 이주 외에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걸 간과한 채 말이다.


더 큰 문제가 숨어 있었다

 성산일출봉을 점령한 중국인 관광객에 질려 다시는 오지 않으리 다짐했건만, 등산로에서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또다시 성산일출봉에 매료되고 말았다.
성산일출봉을 점령한 중국인 관광객에 질려 다시는 오지 않으리 다짐했건만, 등산로에서 뒤를 돌아본 순간 나는 또다시 성산일출봉에 매료되고 말았다. 이영섭

"나는 아직 확신이 안 서는 것 같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도 무섭고, 가서 뭘하고 살지도 걱정되고, 깜깜한 시골 밤길도 무섭고, 벌레도 무섭고…. 그렇네."

그랬다. 아직 아내는 나만큼의 확신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용감하고 무모한 계획을 함께할 파트너의 정확한 마음조차 알지 못한 채 혼자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니…. 이렇게 멍청할 수가!

평생을 도시에서 회사생활만 하면서 그 경계선을 넘어보지 못한 이들이 반대하는 건 얼마든지 무시하고 반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불안은 점점 내 추진력을 약화시켰다. 설상가상 갑자기 회사일이 바빠지면서 제주로의 이주 계획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얼마 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주공항에 내렸다. 비가 내린다. 오직 비가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제주의 또 다른 모습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주공항에 내렸다. 비가 내린다. 오직 비가 오는 날에만 볼 수 있는 제주의 또 다른 모습들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영섭

"췌장에 뭔가 보입니다. 종양인 것 같습니다. 상급병원에서의 재진료를 권합니다."

제주로의 이주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희망'과 '의지'보다는 '현실'의 무게감에 다시 익숙해지던 즈음. 아내의 건강검진 결과에서 이상 증세가 발견됐다.

CT 촬영 결과, 췌장에 뭔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강검진기관의 1차 판독 의사와 2차 판독 담당자인 원장은 그것을 종양이라고 확신했다.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제주도 #제주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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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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