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물으셨다, 누굴 뽑아야 하느냐고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62] 난 내 아이를 위한 투표를 한다

등록 2016.04.13 09:14수정 2016.04.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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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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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투표하세요 4월 13일은 투표일 ⓒ 이희동


며칠 전 서울 화곡동 본가에 갔을 때다. 부모님과 식탁에 모여앉아 과일을 먹으며 이것저것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아버지 눈치를 슬쩍 보시더니 선거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래서 애비는 이번에 누구 뽑을 거냐? 우리는 뽑을 사람이 영 없네. 그놈이 그놈이야. 대체 누구를 뽑아야 할지."
"왜 없어요? 여기 금태섭, 신기남 나오는 강서구갑 아닌가? 나름 핫한 곳이구먼. 후보도 나쁘지 않고."

19년 전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는 밥상머리에서 늘 정치, 역사 등의 이야기를 해왔던 나였다. 그러니 어머니는 내가 누굴 찍을지, 어느 당을 선택할지 모르실 리 없고, 당신이 굳이 내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은 결국 아버지 때문인 듯했다.

오랜 세월 경찰 생활을 하시면서 항상 1번을 찍어 오셨던 아버지. 비록 퇴직하시고 아들이 세상 물정 이야기를 하면서부터는 다른 선택을 하셨지만, 결혼과 함께 아들이 독립하자 다시 보수 신문과 종편방송만을 보시면서 경우회(전직 경찰관 단체) 친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보수적인 성향을 견지하시는 아버지께, 어머니는 내가 무슨 이야기라도 하시길 바라는 눈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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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앞 현수막 모두 투표를 하자 ⓒ 이희동


사실 위와 같은 이야기는 평소에도 어머니께 계속 들어왔었다. 어머니는 내가 집에 들르면 종종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셨는데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당신이 자신의 준거집단 속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그 지향점이 달라 의가 상한다던가.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너와 달라.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그런다. 내가 아들인 너한테 '세뇌교육' 받아서 그렇다고. 그래서 이제는 일부러라도 정치 이야기를 잘 안 해. 사람들도 정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눈치를 보는 것 같고. 요새는 그래서 이모하고도 사이가 서먹서먹하다니까. 이모가 카카오톡으로 그런 정치 관련 정보를 보내면 이젠 쳐다보지도 않아."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가 불편하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는 달랐다.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니, 어머니께서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달라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남들의 설득에 자신이 넘어가지 않도록 자신을 설득시켜 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어머니이시니 어찌 당신의 남편을 설득하고 싶지 않겠는가. 어머니는 남편이 더 이상 맹목적으로 투표하지 않으시길 바랐고, 더 나아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정치적 견해를 가지셨으면 했다.

아버지를 설득하는 방법

부디 남편이 종편에서 보고 들은 대로 판단하지 않길 바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신의 계급에 맞게 아버지 바로 자신에게 좀더 유리한 방향으로 투표하길 바라는 아들.

그러나 70대 아버지를 설득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 전 아버지와 같이 살 때에는 밥상머리나 목욕탕 등에서 뉴스를 보며 틈틈이 아버지께 내가 아는 바를 전달해 드렸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을 제공해 드리며 당신의 판단을 도와드렸다. 하지만, 결혼 후 물리적으로 멀어진 지금 아버지께 내 정치적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았다. 아버지와 내가 일상을 공유하지 않은 탓이었다.

게다가 설득이 더욱 어려운 것은 아버지가 현재 세상과 접촉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나야 TV와 신문 등 전통적인 매체 외에도 팟캐스트나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지만, 아버지는 오로지 <조선일보>와 <TV조선>을 통해 정보를 얻고 세상을 해석하고 있었다. 왜 그 많은 채널 중에 하필 <TV조선>을 보냐는 나의 질문에 <TV조선>이 가장 재미있으니까 그렇다고 대답하시는 아버지. 확실히 노년층을 타깃으로 하는 종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내 자신을 들먹이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세상을 '조선일보'식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계신다 하더라도, 50년대 전쟁을 경험하고 살벌한 삶의 경쟁 방식이 익숙한 아버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가족, 특히 자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세대들에게 가장 큰 전제는 나의 자식들이 좀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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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에게는 내 존재가 가장 큰 설득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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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이 행복한 세상 투표에서부터 시작된다 ⓒ 정가람


다만 아버지는 어떤 선택이 자식들을 위한 길인지 헷갈려 하셨는데, 난 정치인들의 말 잔치를 거둬내고 이번 총선의 의미와 그것이 나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건지 간단히 말씀드렸다. 북한학을 전공했고, 한때 개성공단에 진출하고자 했으며, 현재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아이 셋의 아빠로서 어떤 정치적 환경이 필요한지 간곡하게 말씀드렸다.

남북관계가 나아지고, 자본이 집중되지 않으며, 국가가 개인의 복지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사회. 그것이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사회라고.

나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아버지는 충분히 알겠다고 하셨으며, 나의 의견을 좀더 숙고해 보시겠노라 하셨다. 아버지의 가장 큰 장점은 당신의 생각이 충분히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유연함이었는데, 다행히 아버지는 칠십이 넘으셔도 그 자세를 견지하고 계셨다. 이제 모든 선택은 아버지의 몫일 터.

아빠는 그래서 누구 뽑을 거야?

아버지께 그렇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며칠 뒤, 아이들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데 까꿍이가 내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아빠는 이번 선거에서 누구 찍을 거야?"
"흠. 글쎄. 비밀. 선거는 원래 비밀이여야 하는 거야."
"에이. 아빠 O번 찍을 거지? 저 아줌마 좋아하잖아. 장터에서 만나기도 했고." (O번은 내가 사는 지역의 현역 의원 후보로 우리 회사에서 사회적경제 장터를 열면 가끔 들르기도 했다)
"아냐. 누가 그래? 아빠도 고민해야지. 아빤 엄마가 누구 찍을 건지도 몰라."

막상 말은 그리 했지만 새삼스레 나의 투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안일하게, 그리고 관성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정작 아버지에게는 보수언론에 현혹되지 말라며, 다른 정보들도 읊어드렸건만, 지금 나는 페이스북 등의 SNS를 보며 너무 내가 보고 듣고 싶었던 정보만 접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집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선거홍보지를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그들의 말도 안 되는 공약들과 말만의 성찬으로 그칠 공약들을 빼고, 각 당과 후보들이 무엇에 방점을 찍고, 어떤 정책들을 견인하려 하는지 다시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과연 그들은 왜 정치를 하려고 하며, 나를 대신하여 어떤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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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 꿈꾸는 사회 잊지 말고 되돌려 줘야 한다 ⓒ 이희동


이때 나의 기준은 아버지가 그랬듯 나의 가족,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식들이었다. 아직 삶이 창창히 남아 있는 나와 아내의 삶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앞으로 학교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취업도 해야 하는 등 내가 근 40년 동안 걸어온 그 길을 그대로 걷게 될 나의 아이들을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절박했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식이 나보다 더 잘 살길 원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으로 각 후보와 정당들의 공약들을 보니 조금 더 선명해진 느낌이었다. 난 나의 자식들이 이 땅에서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출발하기를 바라고, 자기 검열 없이 자유롭게 사고하길 바라며,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접하며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길 바란다. 나는 나의 정치적 선택이 그런 아이들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여주길 바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당위의 선언만이 아닌 현실적인 전략도 고려되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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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총선의 기억 무척이나 밝았던 그날 오전 ⓒ 이희동


이제 선거일이다. 부디 모든 이들이 투표하길 바란다. 그것은 한 명의 국민으로서 내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며, 내가 나의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위대한 행위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망설이시는 것 같으면 지금 당장 전화를 걸어 당신의 자식과 그 자식을 위해서 제대로 투표해 달라고 하자. 우리 모두가 투표한다면 세상은 바뀐다.
#육아일기 #4.13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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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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