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책 표지
북폴리오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등과 함께 일본 장르문학의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온다 리쿠.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독특한 위상을 점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밤의 피크닉>이다.
주로 미스터리, 판타지, 공포 등의 장르에서 꾸준한 활동을 해왔지만 그녀에겐 늘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는 유연한 작가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거기엔 이 소설의 영향이 적지 않다.
<밤의 피크닉>은 온다 리쿠의 작품 가운데는 드물게도 고등학생들의 빛나는 한때를 그린 청춘소설이다.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만 24시간 동안 펼쳐지는 보행제를 배경으로 박동하는 청춘의 성장을 그렸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깊이 감춰진 비밀이 차츰 표면 위로 떠오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비밀의 극복을 통해 주인공들이 한층 성숙하게 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보행제는 남녀공학인 북고 학생들이 1년에 한 번 참가하는 행사다. 오전 8시 다같이 교문을 나서 정해진 장소까지 갔다가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다시 돌아오면 되는 행사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밤샘행군을 떠올릴 보행제로부터 작가는 주인공들 사이에 공유되는 어떤 정체성, 나아가 화학작용과도 같은 변화의 순간을 발견한다.
친한 아이들끼리 24시간 줄지어 왕복 수십킬로미터를 걷고 또 걸을 뿐인 보행제가 일으키는 놀라운 변화, 그것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온다 리쿠가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 할 힘도 없고 주변의 경치를 살필 여유도 없어지는 바로 그때, 더욱 특별해지는 청춘의 한 순간이 있다. 같은 반이면서도 일년 동안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던 도오루와 다카코가 함께 걸으며 대화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런 순간이 있었던 덕분이다.
바르게 정돈되고 안정된 어른스러운 모습으론 결코 경험할 수 없을 청춘의 관계맺음, 때로는 치익치익 불타오르고 때로는 깊이 침잠해 무너져내려도 청춘이니까 괜찮다고, 그것이 이 소설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닌 문제들, 이불을 차게 만드는 창피했던 기억들. 그 모두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아직 가슴 한 켠에 자리잡은 청춘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읽어봐도 좋겠다.
교훈 하나. 역시 고교생활은 남녀공학에서 해야 한다. 남학교였다면 제목이 <밤의 피크닉> 대신 <밤의 행군>이 되었을 것이다.
어른들의 사회라는 것은 이상하다. 누구나 입만 열면 훌륭하고 바른 말이 튀어나온다. 일견 대단히 엄격한 룰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상당히 엉망진창이며 칠칠맞지 못하다는 것은, 신문과 뉴스를 보면 이내 알 수 있다. - 208쪽
하지만 말이야, 잡음 역시 너를 만들고 있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어. - 279쪽
코맥 매카시, <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