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내게 자신의 방 내준 네팔 소녀

낯선 여행자에게 한없는 친절 베풀어준 씨라파 가족

등록 2016.08.19 09:25수정 2016.08.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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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준 네팔 소녀, 씨라파. ⓒ 송성영


네팔의 고대도시 박타푸르에서 우연히 만난 네팔 소녀 씨라파는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먼저 자신의 엄마를 소개해 줬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씨라파의 엄마는 내가 씨라파를 처음 만났던 구멍가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씨라파의 아버지는 한두 시간 후면 도착할 것이라며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뭘 좋아하세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오세요."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 집에 방문할 때 선물을 사갑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수행자가 아닙니까?"


씨라파의 이모네 구멍가게에서 처음 만났을 때 공손하게 '나마스테' 인사를 건넸던 그녀는 긴 수염과 긴 머리, 추레한 옷차림의 나를 수행자로 여기고 있었다. 박타푸르에 오기 전 날, 한국인들이 내 추레한 꼬라지를 보고 거지 취급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아닙니다. 나는 그저 여행자일 따름입니다. 당신의 딸이 친절하게 안내해 줘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씨라파가 아니었다면 '비욘드 네팔'을 찾지 못하고 온종일 박타푸르를 헤매고 다녔을 것이었다. 약소하게나마 그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었는데 극구 만류했다.

"딸아이, 씨라파가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마음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아저씨를 만난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선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일단 우리 집으로 가서 아빠를 기다리세요."

유쾌 발랄한 씨라파가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모녀가 너무나 완곡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씨라파네 집은 10평도 채 안 돼는 작은 서민 아파트였다. 하나의 출입구에 세 가구가 칸칸이 방을 질러 생활하고 있었는데 신발은 각자의 방문 앞에 벗어 놓고 출입하게 되어 있었다. 세 가구가 함께 쓰고 있는 출입구가 그러하듯이 화장실 역시 공동으로 쓰고 있었다.


박타푸르는 포카라 보다 더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물동이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물이 부족해 빨래한 물이나 설거지한 자숫물을 모아 변기 내림 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옆에는 대부분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인도처럼 볼일을 보고 난 후 뒤처리를 하기 위해 깨끗한 물을 따로 받아 놓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씨라파가 나를 위해 네팔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빈손으로 온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됐다. 라면을 다 먹고 나자 차와 수박까지 내놓았다. 씨라파는 자신의 집에 외국인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며 흥분된 어조로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김수현 아세요?"
"모르겠는데? 뭐 하는 사람이지요?"
"한국의 유명한 연예인이잖아요. 제가 김수현을 아주 좋아해요. 팬이에요."
"나는 한국의 젊은 연예인들을 잘 몰라요. 내겐 텔레비전이 없어요."

씨라파는 다소 실망한 눈빛으로 사진첩을 꺼내 젊은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나는 요즘 젊은 연예인들을 잘 모른다. 네팔까지 불어 닥친 한류열풍을 체감하면서 열 일곱 네팔 소녀 씨라파와의 세대 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아들이 둘이라고 하셨죠? 대학생입니까? 뭘 전공했어요."
"대학을 가지 않았어요. 노래하는 뮤지션,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가고 있어요."
"예 정말요? 한국에서 유명한 연예인이에요?"
"아니요, 그냥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어요."
"혹시 노래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나는 손전화기에 입력된 큰 아들 송인효 녀석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가내수공업으로 내놓은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을 들려줬다. 씨라파는 듣기 좋다며 그 노래 파일을 자신의 컴퓨터에 옮겨 달라고 했다.

우리는 해외 펜팔로 만난 친구처럼 컴퓨터를 켜놓고 내 외장하드에 입력되어 있는 가족사진과 노래를 옮겨가며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다. 네팔에 와서 또 한 명의 친구가 생긴 것이다. 나중에는 서로 주소와 이메일을 교환했다. 하지만 법관이 꿈이라는 씨라파에게는 페이스북을 할 수 있는 손 전화기 없었다. 거기다가 낡고 오래된 컴퓨터는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은 학교에서 잠시 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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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파 가족. 엄마는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네팔 전통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아버지는 고향 마을을 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 송성영


씨라파 모녀와 함께 내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는 가족사진과 인도 여행 사진을 보며 한창 수다를 떨고 있을 무렵 씨라파의 아버지가 돌아왔다. 인상이 참 좋아 보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지 헬멧을 벗어 놓고 나를 아주 반갑게 반긴다. 그의 손에는 농산물이 들려 있었다. 우리나라의 비름나물과 비슷한 나물과 호박을 비롯한 몇 가지 채소를 풀어놓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가져온 농산물 꾸러미를 기쁘게 받아들고 자랑삼아 말했다.

"저번에는 들기름도 짜왔어요. 지금 우리가 먹는 쌀도 남편이 농사지은 거랍니다."

돈 안 되는 농사일을 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구박받고 살아왔는데 당신은 참 복이 많은 사내라 했더니 환하게 웃는다. 그는 나와 동갑내기였고 씨라파는 외동딸이었다. 그의 아내에게 왜 자녀를 더 두지 않았냐고 물으니 몸이 좋지 않아 씨라파도 힘들게 낳은 딸이라고 한다. 공연히 미안했다. 외동딸 씨라파는 부모와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었다.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우리 집 아이들과 닮아 있었다.

씨라파 아버지의 이름은 모한. 그는 여러모로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한때 수행자의 길을 걷다가 늦은 결혼, 그리고 귀농, 거기다가 나와 영어 수준이 비슷했다. 씨라파는 아버지 옆에 바싹 붙어 앉아 내 영어를 아버지가 못 알아들을까봐 전전긍긍해가며 때론 네팔어로 내 영어를 자세히 설명해 주곤 했다.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씨라파의 속사포로 쏟아내는 영어실력에 비하면 모한과 나는 초급영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살아온 이력이 비슷해서 그런지 언어와 상관없이 잘 통했다.

나는 모한에게 내 노트북에 담겨 있는 농사에 관련된 사진들을 보여줬다. 상추와 배추 토마토 등의 각종 채소류와 모내기하는 장면, 메뚜기가 달라붙어 있는 나락 등의 사진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농사짓고 있는 네팔의 농산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공감했다. 나의 농법, 풀과 함께 농작물을 키우는 자연농법에 관련된 사진을 보여주자 유기농을 하고 있다는 그가 관심있게 지켜본다.

"자연 농법에서는 화학 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풀을 적당히 뽑아 줍니다. 풀이 농작물을 잡아먹지 않을 정도만 뽑아 주면 풀과 함께 농작물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당신의 자연농법을 나도 한번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대부분 농작물의 씨앗들을 직접 받아 써왔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농부들은 농약사에서 씨앗을 구입해서 씁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진을 통해 언어 소통을 극복해 가며 농사 얘기로 급격히 친해졌다. 머리를 맞대고 사진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 옆에서 씨라파와 그의 아내가 아주 흡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의 농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서 모터사이클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고향 마을에 있습니다."

그는 오래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농토가 있는데 가족들이 살고 있는 이곳 박타푸르를 오가며 농사를 지어오고 있었다. 그 농장에 작은 농막이 한 채 있다고 한다.

"그곳에 가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농사를 짓고 있는지 보고 싶습니다."
"창고와 부엌, 그리고 작고 허름한 방 한 개가 전부입니다. 괜찮겠습니까?"
"나는 아무데서도 잘 지냅니다. 길거리에서도 잘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내일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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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한 부부. ⓒ 송성영


내가 배낭을 챙겨 일어서려 하자 씨라파 가족이 저녁을 먹고 가라며 막아섰다. 낯선 이방인을 친구처럼 극진하게 대해 주는 씨라파 가족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빈손으로 와서 거듭 미안하다고 말하며 다시 배낭을 내려놓았다

저녁상을 준비할 동안 모한은 두 팔 걷어붙이고 아내를 도왔다. 조금 전 농장에서 가져온 이런 저런 채소를 씻어 프라이팬에 얼마 전 짜왔다던 들기름을 넣고 볶았다. 씨라파는 아버지 등 뒤에 붙어 다니며 나와 만났던 얘기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저녁은 아주 푸짐했다. 손님 대접을 하겠노라 닭볶음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하루에 한두 끼 식사를 하고 있던 나는 조금 전에 라면과 수박까지 먹었기에 부담되는 식탁이었다. 이것저것 권하는 음식을 다 먹지 못해 미안했다. 하지만 음식 맛은 최고였다. 한국인인 내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었다. 네팔에서 먹은 음식 중에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었다.

푸지게 잘 먹고 수박을 한 쪽 더 먹었다. 너무 늦으면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데 곤란할 것 같다며 배낭을 챙겨 일어서려 하는데 씨라파 가족이 다시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아저씨 잠자리 마련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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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라파가 자신의 침대에 모기장까지 쳐 놓은 자고가 권했다. ⓒ 송성영


씨라파는 자신의 방문을 열어 보였다. 작은 침대에 모기장까지 쳐 놓았다.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수박을 먹을 무렵 나와 그녀의 아버지가 농사 얘기를 하는 동안 자신의 방을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던 것이다. 열 일 곱, 보통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방을 보여주기 꺼려하는 나이지만 씨라파는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침대을 내주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구하면 됩니다."
"박타푸르는 관광지라서 게스트하우스가 아주 비쌉니다. 보통 700루피가 넘습니다."
"누추한 내가 어떻게 숙녀의 방에서 잘 수 있겠어요."

추레한 내 몰골이 씨라파의 침대를 더럽힐까봐 너무나 미안해 거듭 사양했다. 그런 내 의중을 알고 있는지 씨라파 가족은 방이 누추하다며 오히려 내게 미안했다. 나는 더 이상 성의를 거부할 수 없었다.

"누추하다니요! 천만에요. 내겐 그 어떤 황제의 방보다 좋아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맙습니다."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참으로 고마운 가족들이었다. 처음 만난 내게 왜 이리 친절한 것인가. 나는 이들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었다. 오후 내내 신세만 졌는데 내가 무엇이 좋다고 이리 환대할까. 내게 있어서 이들 가족이야말로 자비심 가득한 붓다였다. 인도와 네팔을 거지꼴로 여행하면서 내게 자비를 베푼 손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무엇으로 이 고마움에 보답할 것인가.

씨라파의 방은 따로 독립되어 있지만 부모의 침실은 따로 없다. 주방과 거실을 겸하고 있는 공간이 부모의 방이다. 씨라파의 방은 아주 소박하다. 세평 남짓한 방안의 벽면은 페인트칠만 했다. 벽지도 없는 맨 벽이다. 교과서와 책 몇 권이 꽂혀 있는 길쭉한 책장과 씨라파의 어린 시절 사진 몇 장이 얹혀져 있는 낡은 철제 옷장이 전부다. 특이한 것은 침대 머리맡 바로 위 천장에 점을 찍어 놓은 종이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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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평 남짓한 씨라파 방안에 놓여진 어린 시절 사진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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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점이 찍혀 있는 종이를 붙여 놓았다. 씨라파는 잠들기 전에 이 점을 바라보며 집중명상을 한다. ⓒ 송성영


"씨라파는 잠들기 전에 명상을 하나요?"
"예, 점을 바라보며 집중 명상을 합니다."

씨라파가 하는 명상은 요가에서 말하는 트라탁(Tratak), 한국의 몇몇 수련단체에서도 즐겨 사용하는 명상법이다. 보통 촛불을 비롯한 어느 한 사물이나 점을 응시하는 집중명상법이다. 눈빛이 머무는 곳에 마음이 따라간다. 한 점을 응시하다보면 마음도 한 곳에 모아진다.

요기들은 양 눈썹 사이, 미간이나 코끝에 집중하며 명상한다. 고른 호흡과 함께 눈썹을 깜박이지 않는 상태에서 일정한 대상물을 응시한다. 한 대상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다보면 눈이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한다. 이 명상법은 집중력을 기르고 눈의 근육을 강화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직접 네팔 전통 옷을 만들고 있는 씨라파 엄마는 티베트 불교신자로서 거의 매일 명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셤자나(samjhana). 네팔어로 기억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그녀는 인도 명상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리시케시에 다녀올 정도로 명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우매한 질문을 던졌다.

"명상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다."
"내 마음 속에 잠들어 있는 자비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녀의 남편 모한 역시 불교 사원을 찾아다니며 틈틈이 좋은 마음을 내기 위한 명상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명상은 씨라파의 엄마 셤자나, 그녀 말대로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자비심을 일깨워 준다. 그 일깨움 속에서 자비심 가득한 붓다와 만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게 베푼 이들 가족의 자비심은 일상적인 명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날 밤 나는 혹여 씨라파의 침대에 담배 냄새라도 배일까봐 침낭을 깔고 누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 포카라에서 땀에 저린 케케묵은 때를 벗겨냈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쉬 잠이 오지 않았다. 멀뚱멀뚱 뜬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거기 씨라파가 집중명상을 했을 점이 보였다. 그 점을 응시했다.

내 시야에서 점점 점이 사라지고 초롱초롱한 씨라파의 눈빛과 함께 자비로운 순수한 마음이 온몸으로 스며들어왔다. 그 씨라파의 순수한 자비는 부모로부터 온 것이기도 했다. 부모의 자비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나는 살아오면서 씨라파 가족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낯선 누군가에게 무한정 베풀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쫒다가 누군가에게 받은 만큼 그 자비를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네팔 박타푸르 #네팔 소녀 씨라파 가족 #네팔 서민 아파트 #명상 #자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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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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