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준 네팔 소녀, 씨라파.
송성영
네팔의 고대도시 박타푸르에서 우연히 만난 네팔 소녀 씨라파는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먼저 자신의 엄마를 소개해 줬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씨라파의 엄마는 내가 씨라파를 처음 만났던 구멍가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씨라파의 아버지는 한두 시간 후면 도착할 것이라며 그녀는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뭘 좋아하세요?""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오세요.""한국에서는 다른 사람 집에 방문할 때 선물을 사갑니다.""괜찮습니다. 당신은 수행자가 아닙니까?"
씨라파의 이모네 구멍가게에서 처음 만났을 때 공손하게 '나마스테' 인사를 건넸던 그녀는 긴 수염과 긴 머리, 추레한 옷차림의 나를 수행자로 여기고 있었다. 박타푸르에 오기 전 날, 한국인들이 내 추레한 꼬라지를 보고 거지 취급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아닙니다. 나는 그저 여행자일 따름입니다. 당신의 딸이 친절하게 안내해 줘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씨라파가 아니었다면 '비욘드 네팔'을 찾지 못하고 온종일 박타푸르를 헤매고 다녔을 것이었다. 약소하게나마 그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었는데 극구 만류했다.
"딸아이, 씨라파가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마음 쓰지 않아도 됩니다.""아저씨를 만난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선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일단 우리 집으로 가서 아빠를 기다리세요."유쾌 발랄한 씨라파가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모녀가 너무나 완곡하게 거부하는 바람에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씨라파네 집은 10평도 채 안 돼는 작은 서민 아파트였다. 하나의 출입구에 세 가구가 칸칸이 방을 질러 생활하고 있었는데 신발은 각자의 방문 앞에 벗어 놓고 출입하게 되어 있었다. 세 가구가 함께 쓰고 있는 출입구가 그러하듯이 화장실 역시 공동으로 쓰고 있었다.
박타푸르는 포카라 보다 더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었다. 화장실에는 물동이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물이 부족해 빨래한 물이나 설거지한 자숫물을 모아 변기 내림 물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옆에는 대부분 화장지를 사용하지 않는 인도처럼 볼일을 보고 난 후 뒤처리를 하기 위해 깨끗한 물을 따로 받아 놓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씨라파가 나를 위해 네팔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빈손으로 온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됐다. 라면을 다 먹고 나자 차와 수박까지 내놓았다. 씨라파는 자신의 집에 외국인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며 흥분된 어조로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김수현 아세요?""모르겠는데? 뭐 하는 사람이지요?""한국의 유명한 연예인이잖아요. 제가 김수현을 아주 좋아해요. 팬이에요.""나는 한국의 젊은 연예인들을 잘 몰라요. 내겐 텔레비전이 없어요."씨라파는 다소 실망한 눈빛으로 사진첩을 꺼내 젊은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나는 요즘 젊은 연예인들을 잘 모른다. 네팔까지 불어 닥친 한류열풍을 체감하면서 열 일곱 네팔 소녀 씨라파와의 세대 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아들이 둘이라고 하셨죠? 대학생입니까? 뭘 전공했어요.""대학을 가지 않았어요. 노래하는 뮤지션,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가고 있어요.""예 정말요? 한국에서 유명한 연예인이에요?""아니요, 그냥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있어요." "혹시 노래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나는 손전화기에 입력된 큰 아들 송인효 녀석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가내수공업으로 내놓은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을 들려줬다. 씨라파는 듣기 좋다며 그 노래 파일을 자신의 컴퓨터에 옮겨 달라고 했다.
우리는 해외 펜팔로 만난 친구처럼 컴퓨터를 켜놓고 내 외장하드에 입력되어 있는 가족사진과 노래를 옮겨가며 이런 저런 수다를 떨었다. 네팔에 와서 또 한 명의 친구가 생긴 것이다. 나중에는 서로 주소와 이메일을 교환했다. 하지만 법관이 꿈이라는 씨라파에게는 페이스북을 할 수 있는 손 전화기 없었다. 거기다가 낡고 오래된 컴퓨터는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은 학교에서 잠시 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