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역사 과목을 싫어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외워야 할 게 너무 많다는 것이다. 연도에서부터 낯선 이름의 수많은 사건들에다 기억해야 할 인물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아무리 외워도 끝이 없다고 이구동성 말한다. 심지어 어휘와 공식에 치여 사는 영어나 수학보다도 몇 배는 더 싫다면서 애꿎은 교과서를 원망하기도 했다.
우선 재미가 없다는 거다. 재미가 없으니 잘 외워지지도 않고, 설령 외운다 해도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질 수밖에 없는 '일회용 지식'이란다. 몇몇 아이들은 오직 시험을 위해 연도와 사건을 별의별 연상기법을 동원해 기억하기도 하고, 부러 노래에 실어 외우기도 한다. 한때 유행했던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를 암기에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중요하다며 밑줄 긋고 별표 치라는 건, 따지고 보면 각종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내용이라는 것뿐이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앞으로의 그들 삶에 딱히 필요하다거나 도움을 줄 만한 내용도 아니다. 되레 그럴수록 아이들은 역사 과목에 대한 흥미를 점점 더 잃게 될 뿐이다.
정부든 학교든 울며 겨자 먹기로 시험을 쉽게 출제하는 등 나름의 대책을 강구하곤 있지만, 그렇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학습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역사가 암기 과목이라는 그들의 고정관념을 깨기에는 역부족이다. 시험의 난이도와는 상관없이 구체적 사실을 알고 있느냐를 평가하는 시험이 존재하는 한, 역사는 지지리도 재미없는 암기 과목 맞다.
스스로 재미만 느낄 수 있다면, 기실 아이들의 암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많은 걸그룹의 멤버들 신상명세를 줄줄 외우고, 프리미어 리그 축구 선수들의 이름과 포지션을 모조리 꿰고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해 팀별 순위와 각 선수들이 넣은 골 숫자는 물론, 그들의 정확한 이적료 액수까지 막힘없이 읊어대는 아이들 앞에선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사실 이는 모든 역사 교사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어떻게 하면 수업시간 엎드려 자는 아이들을 깨울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 고민 앞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만다. 동료교사들끼리의 우스갯소리지만, 언제부턴가 과목과 상관없이 수업시간 아이들을 잠들지 않도록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학습목표가 됐다.
과연 역사는 암기 과목이라는 오래된 편견을 벗어날 수 있을까. 정말이지 아이들에게 역사가 재미있는 과목으로, 가뭄 속 단비 마냥 기다려지는 수업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까.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은 기본, 교육과정상 진도에 문제가 없고, 수능 준비에도 효과적이며, 내용 또한 재미있는 수업은 모든 역사 교사의 한결같은 로망이다.
하지만 교사에게 '노잼(재미없음)은 악의 편'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아이들 앞에서 역사 수업의 의미에 재미를 더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수업 개선을 위한 연수란 연수는 죄다 찾아다니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다양한 자료를 끌어다 활용해도 아이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제발 일어나달라고, 강의를 들어달라고 통사정하며 아이들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할 판이다.
급기야 잘 나가는 '인강' 강사의 말투와 자세까지 그대로 흉내내며 안간힘을 다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아이들의 비웃음뿐이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게 교단 위의 교사인지, 무대 위의 광대인지 헛갈리곤 한다. 경험 많은 선배 교사들조차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현실에서 백약이 무효라는 비겁한 생각마저 든다. 결국 애먼 아이들만 탓하는 셈이니 말이다.
한때 'MBC 수업'이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칠판(Blackboard) 위에 분필(Chalk)로 판서를 하며, 줄곧 강의식(Mouth)으로만 진행되던 수업방식을 두고 고루하다며 너도 나도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땐 수업시간에 실물 화상기나 컴퓨터 등 다양한 교육 기자재를 활용하지 못하면 순간 무능한 교사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내용'인데,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쳐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그저 무능한 교사들의 항변쯤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요즘 아무리 최첨단 교육 기자재를 활용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곁눈질조차 하지 않는다. 당시는 프로젝션 TV가 칠판을 대체한다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손마다 스마트폰이 들려있으니 기자재의 힘을 빌려 재미를 이끌어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교실을 사이버 환경으로 만들고 수업을 아예 인터넷 게임처럼 꾸릴 게 아니라면, 첨단 기술을 동원해 흥미를 유발하려는 시도는 '약발'이 떨어진 지 이미 오래다. 전가의 보도처럼 시험에 나온다고 을러대봐야 대다수 아이들의 반응은 '그러거나 말거나'다. 의기소침해 있던 그 순간,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대체 과거의 사건들이 지금 우리들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역사 교사나 학자가 될 게 아니라면, 커서 남들 앞에서 교양있는 사람이라며 젠체하기 위해 배우는 것 같아요. 매번 시험 문제를 풀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일연이 삼국유사를 짓고, 정조가 장용영을 설치한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우리더러 달달 외우게 하는지, 제발 저희들을 납득시켜 주세요."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호들갑스러운 아이들의 맞장구에 어떻게든 답변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자칫 역사 수업이 희화화될 우려가 있어서다. 단군신화와 조선의 개혁군주 운운하며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아이들은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교사인 나 자신도 납득하지 못하는 걸 설명하려니 궁색한 변명을 넘어 동문서답일 수밖에 없었다.
순간 역사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지금 그들의 삶과 역사와의 '관계'라는 생각이 스쳤다. 자신과 무관한 옛날이야기라 여기다보니, 흥미를 잃고 그저 외울 것 투성이라며 꺼리게 된 게 아닐까. 한 아이는 자기 할아버지나 아버지 때를 다룬 이야기라면 어느 누구가 엎드려 자겠느냐면서, 역사는 본질적으로 고리타분할 수밖에 없는 과목이라고 푸념하기도 했다.
역사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게 될 때라야 의미와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의 사건에서 현재적 의미를 끄집어낼 수만 있다면 수업시간 그 많은 아이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이며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들 하지만, 교과서 속 사건들마다 현실과 관련지어 납득시키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아이들이 그나마 전근대사보다 근현대사를 더 좋아하는 이유다.
오래간만에 수업이 활기를 되찾았다. 19세기 '세도 정치와 삼정의 문란'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에서다. 왕권의 약화와 정치 기강의 문란이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렸다는 게 수업의 얼개다. 늘 해오던 대로 시험에 출제 빈도가 높은 것 위주로 사건의 배열하고 용어의 뜻을 설명하고 있는데, 불쑥 한 아이가 손을 들어 이번 단원의 '현재적 의미'를 이렇게 요약해냈다.
"19세기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대통령 '백'을 믿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있으니 현대판 세도권력인 셈이고, 온갖 비리와 부패 의혹에도 당당히 고위공직자에 오르니 그때처럼 정치 기강이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고통스러운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권력에 앞 다퉈 줄 서는 모습이 어찌 그리 똑같은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이런 게 '삼정의 문란' 아닌가요?"
그의 말마따나 요즘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 일을 보면 교과서 속 '삼정의 문란'과 빼다 박은 듯 닮았다. 장관 후보자들 중에 탈세와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되지 않은 이가 거의 없으니 '전정(田政)의 문란'이고, 정권 실세인 아버지 덕에 아들이 '꿀보직'으로 전출되는 특혜를 누리는 마당이니 '군정(軍政)의 문란'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극소수 '금수저'들의 부정부패가 대다수 '흙수저'들의 고통을 배가시키는 구조 또한 동일하다.
게다가 이 땅의 장삼이사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는 등 권력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삼은 자가 장관으로 임명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환정(還政)의 문란'에 다를 바 없다. 몇 배나 높은 금리로도 어렵사리 돈을 빌린 농어민들이 '특혜 대출'을 받아 막대한 부동산 시세 차익을 남긴 그를 과연 주무부처 장관으로 인정하게 될지 의문이다.
그의 말에 내내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모두들 '삼정의 문란'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무슨 뜻인지 단박에 이해되더라고 했다. 교과서를 읽고 백과사전을 찾아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쉬운 설명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수업이 최고의 수업이라더니, 그 말의 의미를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수업에서 의미와 재미가 결합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현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를 통해 두 세기 전 백성들의 피폐한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지 아이들이 수업의 학습 목표를 달성했는가 여부만 놓고 본다면, '헬조선'의 현실이 크게 보탬이 된 셈이다. 수업이 끝날 즈음, 아이들은 다음에 배울 내용에 대해 궁금해 했다. 여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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