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스틸컷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주)
리즈의 여행지는 총 3곳으로 로마, 인도, 발리이며 순서대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곳이다.
첫 여행지 로마,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다이어트 걱정에서 벗어나 맛있는 젤라또와 파스타, 피자를 마음껏 먹는 시간이다. 별 목적 없는 여유로운 자아 찾기 여행에 그 배경은 이탈리아이니 연애 아니면 썸이라도 타야 할 듯하지만 리즈는 '어쩌다 보면 하게 되는 연애'가 진정한 자아 찾는 것을 방해했다고 여겨 홀로 평정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단단한가, 이제 로마의 레스토랑에서 멋들어지게 주문을 할 만큼 이탈리아어도 늘고 여유도 즐기게 되었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리즈는 맨해튼에 두고 온 연하 남자친구에게 메일을 보낸다.
"억지로라도, 함께라면 행복하니까 힘들어도 같이 살아보자 그런 생각도 했어. 그런데 로마의 아우구스티움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 우린 변화를 두려워 해. 현상유지를 한답시고 끔찍하게 망가지지. 내 인생이 문제가 아니라 집착이 문제란 걸 깨달았어. 무너져도 괜찮아. 무너지면 다시 세울 수 있잖아. 모든 건 끊임없이 변하면서 발전해. 우리는 서로를 떠나야 발전할 수 있어. 한 번은 무너져야 해."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니 갑자기 감상에 잠겨 저런 메일을 보내는 것이 의아했지만 사람 마음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자아 찾기의 첫 단계가 성공인 듯 아닌 듯, 리즈는 첫 여행지에서 여유를 즐기는 것까지 성공한다.
"나 어쩌지, 죄책감이 들어. 몇 주 동안 먹기만 하고 단어 몇 개 익힌 것이 다야.""미국인들은 그게 문제야! 죄책감이라니, 정말 즐길 줄을 몰라. 이탈리아 사람의 생활신조 중에는 '달콤한 게으름'이란 게 있어."이탈리아 사람들과 이런 대화와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으니 여유가 안 생기는 것도 이상하다. 이탈리아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인도에 도착한 리즈, 사원에서 합숙하고 명상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기도도 명상도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마음이 시끄럽기만 하다. 심지어 여행을 한다며 제 발로 훌쩍 떠나온 전 남자친구를 다 잊지도 못했다.
"감정이 정리된 줄 알았는데 아직 사랑하나 봐요, 너무 그리워요." "마음껏 그리워해, 사랑도 그리움도 결국 바닥나. 당신 가슴에서 그 감정을 다 끌어내고 그 남자에 대한 집착을 덜어내.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새 세상이 열려. 그럼 꿈꾸던 사랑으로 그 공간을 채워봐""왜 평화가 안 오죠. 전 진짜 노력하고 있다구요.""자꾸 노력한다 뭐 한다 하지 말고 그냥 좀 가만히 있어, 왜 가만히 있지를 못해."텍사스에서 온 또 다른 수행자 겸 구루를 만난 리즈, 그에게 현명한 조언을 듣고 마음의 평화를 다지며 이제 발리로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 평화가 그렇게 단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무너져야 더 큰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거야"드디어 여행의 종착지, 지상낙원 같은 발리에 도착한 리즈는 몇 년 전 여행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를 찾아간다. 그 할아버지는 우주의 질서를 연구하고 미래를 점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신비한 존재로 우리나라로 치면 '손금을 볼 줄 아는, 도 닦는 할아버지' 정도일까. 도인이나 음양오행류를 비웃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가 상당 부분 동양을 신비화해 바라보는 서양 특유의 시각, 오리엔탈리즘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동양인인 우리 눈에는 다소 우스워 보인다는 것이다.
도 닦는 할아버지와 대안치료를 하는 치료사 아주머니(이 역시 우리로 치면 기 치료사 정도 될까)와 친해진 리즈, 뻔하게도 자아 찾기의 종착지인 발리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그렇지만 원작을 쓴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실제 이야기이고 원래 인생에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리즈는 사랑을 만났지만 억지로 만든 현재의 평화가 깨질까 봐, 상대를 너무 사랑해서 자신을 잃을까 봐 주저한다. 그런 리즈에게 할아버지는 조언한다.
"누군가 때문에 자아가 무너지고 평화가 깨질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무너져야 더 큰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거야."여행을 통해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자아의 균형을 찾은 리즈지만 그 평화는 너무나 작고 연약하여 어차피 깨져야 했던 것이다. 리즈는 작은 자기만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에 뛰어든다.
다소 뻔한 스토리이지만 영화를 보면 여유를 갖고 인생을 찬찬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질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여행이 자아를 찾아주길 바라는 것은 너무 안일한 생각이지만 어쨌거나 여행이 주는 여유로움은 인생을 다시 한번 되짚게 하고 무엇보다 이 팍팍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