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애린
이희훈
다른 아이들은 뛰어놀았다. 마당 밖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바라만 봤다. 그 날 저녁,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양쪽에서 고무줄을 잡아달라고 했다. 한두 번 고무줄 사이를 오간 애린씨를 부여잡고 할아버지는 한참을 울었다. 애린씨는 '이건 하면 안 되는 거구나.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내가 한다고 해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얌전하게 조용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터득했다.
애린씨는 제힘으로 오롯이 걸어본 적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뇌성마비 장애 1급이었다. 뇌성마비는 생각과 몸을 떨어뜨려 놓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틀어지고 경직된다. 왼쪽 팔이 안으로 굽어지고 오른쪽 다리가 굳어지는 동안 애린씨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부모님은 애린씨를 데리고 침술원을 찾고 안수기도를 받게 하다 굿을 했다. 뇌성마비가 나아질 리 없었다. 애린씨는 마당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됐지만, 갈 수 없었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매일 초등학교를 가야했는데, 업어줄 사람이 없었다. 해녀인 할머니는 물질해야 했다. 부모님은 다른 일을 찾아 곧 제주도를 떠났다. 열 살이 됐지만 애린씨는 한글을 몰랐다.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애린아, 우리 그냥 둘이 죽을까..." 열한 살, 애린씨는 부모님이 있는 강원도로 갔다. 할머니 등에 업혀 비행기를 탔다. 부모님은 강원도의 한 돼지농장에서 일했다. 농장 옆 작은 집에 살며 새벽 4시부터 시작하는 농장일을 했다. 농장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었다. 학교는 애린씨를 받아줄 수 없다고 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없어 부담스럽다는 뜻이었다.
가족이 모든 장애를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 안에서 애린씨는 어떤 지원도 교육도 받지 못했다. 강원도에서도 애린씨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집이 전부였다.
애린씨의 엄마는 아침마다 ㄱ,ㄴ,ㄷ, 가, 갸, 거, 겨를 따라 쓰는 숙제를 주고 출근했다. 혼자 남은 집에서 애린씨는 처음 한글을 마주했다. 그렇게 수백 번을 따라 쓰며 열두 살에 처음 한글을 익혔다. 집이 얼마나 답답한 공간인지, 집안에서만 있어야 한다는 게 사람을 얼마나 옥죄는지 그제야 글로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집 안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읽고 쓸 수 있는 것들을 따라 쓰며 살았다. 애린씨에게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따로 없다. 모두 집안이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간 어느 밤. 아빠 옆에 누워있는 애린씨에게 아빠가 말했다. "애린아 우리 그냥 둘이 죽을까?" 왈칵 눈물이 났지만 울 수 없었다. 잠이 들어 못 들은 척 했다. 나는 짐이 되는 존재구나,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제는 당시의 아빠 엄마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생각하지만 그때는 서러움이 전부였다.
"서럽지만 눈물도 제 마음대로 흘리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죠. 그때부터 무언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어요. 방 청소를 하고 밥을 준비하며 쓸모 있는 딸이 되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같이 죽자는 말을 다시는 듣지 않기 위해 제 쓸모를 증명하며 십대를 보냈죠." 학교와 소풍, 당연한 일상도 허락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