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계회도 (보물 868호, 143.0x89.4cm): 이 그림은 사간원[司諫院: 별칭은 미원] 관리들의 모임을 그린 조선 초기의 계회도이다. 산과 언덕을 오른편에 몰아 배치한 구도, 짧은 선과 점으로 묘사한 산, 언덕 위의 쌍송(雙松) 등은 조선 초기에 유행한 안견파 화풍을 보여준다. 오른쪽으로부터 9번째 줄 참석자인 퇴계 이황 선생의 이름도 보인다. 퇴계는 전임(前任) 사간원 정언 자격으로 이 모임에 참석했다. (출처 및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사간원은 사헌부, 홍문관과 더불어 삼사(三司)로 불리며, 정치의 핵심기관이자 언론을 담당했다. 숙종 임금에게 충언을 올린 이관명(李觀命: 1661~1733) 역시 삼사(三司)의 관원으로서 일찍부터 직언을 잘했다고 한다.
홍문관 교리 이관명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역을 시찰한 후 임금을 뵈었다. 그에게 숙종은 민심이 어떠한가를 물었다.
관명이 말하길
"상감이 아끼시는 후궁 소유의 섬 하나가 통영에 있는데, 그 집안 식구들이 백성을 수탈하여 지역민들의 원성이 높습니다"라며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관명의 말에 임금은
"아끼는 후궁에게 작은 섬 하나 준 것이 뭐가 큰 문제인고"라며 크게 화를 냈다.
하지만 관명은 주저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소신이 외람되게 1년 동안 외지에 있었더니, 주상의 과격하심이 심해지셨습니다. 이는 주변에 옳은 말을 하는 충직한 신하가 없는 탓이오니 모든 신하를 다 파직하소서."
관명의 직언이 끝나자 숙종은 입직 승지를 불러 전교를 받아 쓰도록 명했다. 왕의 진노를 샀으니 크게 벌을 받을 것이라며 신하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전 홍문관 교리 이관명에게 홍문관 부제학을 제수한다." 예상을 뒤엎고 숙종은 이관명을 1계급 승진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관 제학을 제수한다." "홍문관 제학 이관명에게 다시 호조판서를 제수한다." 순식간에 3계급이나 특진이 이뤄졌으니, 숙종 임금이 관명의 충언을 가납하였던 것이다.
이 일화는 민간에 떠돌던 야사로서 당쟁이 치열하던 숙종 시절, 청류(淸流)를 지행한 당시 사대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임금에게 목숨을 걸고 충언을 간한 이관명의 일화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반발한다는 현 시대 일부 검사들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맹자에 이르길, '성군을 만났을때는 당당한 태도로 고언을 마다하지 말고, 혼군을 만나면 태도는 당당하되 말은 조심하라' 했으니 임금을 성군으로 여긴 이관명의 충언을 숙종 역시 모른 척 할 수 없었으리라.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우리 역사넷.
[지난편 보기]: [역사카툰] 14화: '북벌군주' 효종, 사실은 '딸바보' 아빠 [제공: 카툰공작소 케이비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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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카툰] '직언왕' 이관명, '검새'들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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