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공주와 부왕인 효종이 주고 받은 서한 (숙명신한첩 中)
숙명신한첩
(편지 좌) 숙명: "문안 여쭙고, 밤사이 아바마마께서는 안녕하신지 알고자 바라오며, 뵙지 못한 채 날이 거듭 지나니 더욱 섭섭함이 무어라고 할 말 없어 하옵니다."
(편지 우) 효종: "편지 보고, 잘 있으니 기뻐한다.어제 두 색촉(물들인 초)을 보내었는데 받아 보았느냐? 초꽂이등을 이 초의 수만큼 보낸다."
# 딸들에게 편지를 자주 보낸 효종
딸바보였던 효종은 공주들이 시집을 가자 언문으로 자주 소통했다. 첫 번째 간찰은 효종이 2공주인 숙명공주에게 쓴 것으로 아버지 효종의 다정다감한 모습이 담겨있다.
"네 형(첫째인 숙안공주)과 숙휘공주는 궁에 놀러와 노리개를 다 가져갔는데, 네 것은 없구나."라며 아빠 효종이 안타까워하여 부디 네 것을 꼭 챙기라고 썼다. 조선시대에는 '언니'라는 말이 없었다. 형제 자매 중 나이가 많은 이를 모두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두 번째 편지는 효종이 시집간 세 공주(숙안공주, 숙명공주, 숙휘공주)를 나무라는 내용이다. 다세 공주가 늘 쓰던 내용으로 부왕 효종에게 편지를 보내자, "편지를 이렇게 쓸 것이면 다음에는 받지 않겠다."며 섭섭한 마음을 담은 답장을 보낸 것이다.
한편, 효종임금은 서녀이자 막내딸인 숙녕옹주에게 선물을 주고자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한 일화도 있다.
효종실록 21권, 효종 10년 2월 28일 기축 3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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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서 백금과 채단(綵緞)을 보냈는데, 상이 숙녕 옹주(淑寧翁主)에게 하사하라고 분부하였다.
정원이 진계하기를,
"청나라에서 보낸 물품을 옹주에게 하사하신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호조에 분부하여 경비에 보태 쓰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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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의 부마 정재륜은 왕가의 사위로서 문장을 잘 지었다. 특히 '공사문견록'이란 중요한 저작물을 남겼는데, 왕실의 비사(秘史)를 살펴 보는데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다.
한거만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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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에 효종의 딸인 숙정공주와 혼인을 하여 동평위에 봉해진 정재륜은 좁은 집에서 선비의 모범으로 살며 글공부에 전념하였다.
아주 더운 여름날 노모가 텃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데, 공주는 여종을 시켜 부채질을 하게하고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화가 난 동평위는 공주에게 욕설을 했다.
공주는 분한 마음에 궁으로 달려가 동평위를 귀양 보내 달라고 울며 청을 했다고 한다. 효종은 공주의 말을 듣고 잡아 들여라하였다. 동평위는 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은 후 집신 두 켤레를 메고 하직인사를 했다.
효종이 짚신 두 켤레는 왼 것이나 묻자 옛말에 '여필종부'라 하였으니 공주와 함께 귀양을 가기 위함이라 하자, 효종은 크게 한숨을 쉬며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공주는 1남 1녀를 낳고 23세에 죽었지만 동평의 정재륜은 왕족의 법에 따라 76세까지 홀아비로 살았다. (부마는 벼슬이나 관직에 나갈 수 없고 공주가 죽어도 후처를 두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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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언간은 효종 임금이 숙명공주에게 보낸 편지글인데, 남편 심익현을 보채고 함께 싸우라는 다소 코믹한 내용이 담겨 있다.
# 숙명신한첩 中, 효종이 숙명공주에게 부부 싸움을 부추기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