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더 많이,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었다. 나는 퉁퉁 부은 라면을 먹으면서도 아이는 유기농 식재료로 정성 들여 이유식을 만들어먹였고, 나는 일어서서 허겁지겁 밥을 삼켜도 아이는 원목 아기 식탁의자에 앉혀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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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면서 갈팡질팡 고민하는 날이 많아졌다. 아이를 위해 사야 할 것과 해야 할 일이 계속 쏟아졌고, 그중 내가 살 것과 할 일을 솎아내는 게 일상이 됐다.
아이에게 더 많이, 더 좋은 걸 해주고 싶었다. 나는 퉁퉁 부은 라면을 먹으면서도 아이는 유기농 식재료로 정성 들여 이유식을 만들어 먹였고, 나는 일어서서 허겁지겁 밥을 삼켜도 아이는 원목 아기 식탁의자에 앉혀 먹였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내가 먹고 싶고 사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육아에 투자하는데도 아이에게 해주지 못하는 것들은 계속 생겼다. 주변 엄마들은 '비싸지만 하나쯤은 갖고 있으면 좋다'며 가격대가 센 교구와 전집 등을 추천했지만 형편상 살 엄두도 못 냈다.
세상엔 풍족한 사람이 많다는 걸 엄마가 되면서 실감했다. 온라인 세계에는 많이 사고 더 좋은 곳에 가는 엄마들이 많았다. '#육아'라는 해시태그를 입력하면 각종 인증사진이 쏟아졌다. 고가의 육아용품, 아이방 인테리어, 국외여행 등….
그들의 아이는 부족함 없이 자라는 듯했다. 다들 집이 40평 이상은 돼 보였고, <킨포크> 잡지에 나올 법한 인테리어로 넓은 거실을 꾸며놓았다. 엄마는 깔끔하게 펌을 한 머리에, 얼룩 없는 단정한 옷을 입고, 남편이 쉴 때는 호텔에서, 휴가일 때는 해외에서 지냈다. 그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만 가난하고 능력 없는 엄마 같았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려 해도 열등감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계속 소비하는데... 어딘가 부족한 삶 아이가 없을 때는 불편하지 않던 것들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계속 소비하는데도 소유하지 못한 것들이 늘어갔고, 나와 우리의 무능력에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자가용이었다.
우리는 면허 없이 결혼했다. 둘이서 살 때는 굳이 차가 필요 없었는데, 임신했을 때부터 차가 없는 게 힘든 일이 됐다. 주변에서는 걱정하는 마음에 '남편이 왜 면허가 없니', '애가 곧 태어나는데 차가 없어도 괜찮겠니'라고 물었다. 부부동반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배가 부른 몸으로 전철을 타고 택시로 갈아타는 길에 죄 없는 남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남편은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면허를 땄지만, 차가 없어 연습을 제대로 못하니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아이와 외출할 때면 택시와 각종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면허가 없는 나는 아이를 아기띠로 업고 휴대용 유모차를 한 손에 들고 외출 가방을 메고 다녔다. 언덕이 가파른 사직동, 서촌, 광화문 등 아이와 갈 수 있는 곳은 다 찾아갔다.
다닐 때만 해도 '나도 아이와 외출했다'는 성취감으로 기뻤는데, 집으로 돌아오면 우울감과 원망만 늘었다. 왜 면허를 땄는데도 운전을 못하냐고, 나와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냐고 따지며 남편의 자존감을 갉았다. 가족을 위해 새벽부터 밥을 차리고, 일을 다녀와서도 아이를 돌보며 청소하고 밀린 빨래를 하는 남편의 자상함은 보지 못했다.
허벅지에 붙은 지방처럼 마음에 콕 달라붙어 있던 괴로움은 다행히 1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부터 서서히 사라져 갔다. 회사 일이 바쁘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가정과 나를 비교하는 횟수가 줄었고, 아이에게 무언가 해주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가라앉았다. 풍족한 소비로 점철된 SNS 계정들도 볼 시간이 없어서 팔로우를 끊었다.
인터넷 쇼핑할 시간조차 없다 보니 아이에게도 정말 안 해주면 안 되는 것들만 겨우 해줬다. 어린이집 낮잠이불, 계절에 맞는 옷, 내가 올 때까지 심심함을 달랠 수 있는 스티커북과 인형 정도. 그 이상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매번 스트레스였던 자가용 문제도 평일엔 아예 탈 수가 없는 상황이 되니 무뎌졌다. 다시 현실의 소소한 행복을 즐기게 됐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왜 나는 다시 자유를 누리게 됐을까. 최근에 나온 <신경끄기의 기술>(마크 맨슨)을 읽으며 복직 전과 후의 차이를 깨달았다. 바로 '신경 끄기'다.
"더 행복하게, 더 풍족하게, 더 빠르게" 우리는 괴롭히는 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