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환 아름다운컨벤션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소중한
- 인터뷰 질문이 국제PJ파 사건과 관련해 홍준표를 만난 것부터 시작해 수사와 재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 질문에 맞춰서 인터뷰하다 보면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홍준표는 내가 국제PJ파를 만들었고, 관련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재판에서는) 나와 관련 없다고 나왔어. 그리고 내가 홍준표를 만났을 때 나는 깡패도 아니었어. 홍준표를 만나기 20년 전에 마음을 잡고 사업을 시작했어. 1977년 1월 8일에 결혼했고, 방위로 군대도 갔다 왔고. 그렇게 해서 마음을 잡고 18년 동안 작든 크든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홍준표가 사건을 깡그리 만든 거야.
그럼 왜 만들어졌느냐가 중요하겠지. 아무 이유도 없이 홍준표가 만들었겠느냐 하는 궁금증이 있을 수도 있겠지."
엇갈린 첫 만남- 홍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였나?"홍준표는 1991년에 광주지검에 발령을 받아서 광주에 왔어. 이 분이 광주지검에 근무하면서 건설회사들을 수사했는데, 그 사건과 관련해 인터뷰 하는 것이 MBC에 나오드라고. 그때 홍준표를 처음 봤제. 그때 '검사가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어. 그때에는 검사가 막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하는 일이 흔치 않았거든. 검사가 개별적으로 인터뷰하는 것이 생소했제.
나는 홍준표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어. 홍준표는 5층에 살고, 나는 15층에 살고. 그때 15층이 제일 높은 층이었어. 그런데 나는 홍준표가 우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어. 그때 나는 홍준표를 잘 몰랐은께. 그때 우리가 산 아파트가 105동이었어. 광주 북구 우산동 현대아파트. 광주에 처음 들어온 대형아파트였지. 그 아파트가 당시에는 광주에선 가장 비싼 아파트였고,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아파트는 55평형이었어. 요즘 기준으로는 100평이 넘는 대형평수여. 평검사가 초대형 평수의 아파트에 산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광주지검에 남충현 강력부장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 분과 나는 상당히 잘 지냈어. 내가 방위로 군생활하고 있을 때 유제인 검사가 군검찰관으로 있었어. 그 분이 나를 굉장히 아끼고 예뻐했는데 남충현 부장이 그 분하고 부산에서 같이 근무를 하다가 광주로 부임했어. 그때가 아마 1981년이었을 거야. 그 분이 1년 6개월 후에 다른 임지로 가게 됐는데 그때도 가깝게 지냈지. 광주에 오기 전에는 남원지청장도 했고. 부부 모임도 하고 있어서 가깝게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연락하는 사이야.
내가 군생활을 할 때 상관으로 알고지내던 보안대(현 기무사) 중위가 있었어. 그 분이 505보안부대로 발령받아서 오셨어. 그래서 내가 그 분을 모시고 골프장에 운동하러 갔어. 거기서 나하고 평소에 잘 아는 백○○을 만났어. 우리가 골프장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응 왔능가?' 하고 이야기하잖아. 그때 골프장이 거기 하나밖에 없었다고. 내가 백○○에게 '누구랑 왔능가?'라고 물었어. '홍준표 검사랑 박○○ 내과 원장이랑 왔다고 하더라고. 근데 걔가 멋쩍었을 거야. 갸는 김태촌 직계 후배야. 말하자면 조폭하고 깊게 연관된 사람이었지. 김태촌 직계 중에서 2인자네 뭐네 하면서 음성적으로 활동할 때야.
근데 그 친구가 나랑 친군데 나를 보고는 좀 어색해했어. 왜 어색했냐? 홍준표가 광주에서 건설폭력사건을 수사하면서 방송사랑 인터뷰했어. 그 사건을 수사하면서 건달들, 조폭과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구속시켰어. 그런데 자기만 홍준표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좀 어색했던 거야. 지도 다 아는 사람들을 잡아넣고 횡포를 부렸던 사람하고 지가 어깨동무를 하고 골프를 치는 것이 어색했겠지. 홍준표랑 같이 왔던 박○○ 내과 원장은 홍준표 아파트의 집주인이라고 들었어."
- 그때 홍준표는 전세를 살고 있었나."그랬을 거야. 그리고 같이 골프 치러 왔던 또 한 사람은 건설사 사장이던 정○○씨다. 백○○이 그렇게 같이 왔다고 해서 나는 '그랬냐'고 하고 우리 자리에 와서 밥먹고 있었어. 근데 백○○이 나한테 와서 '홍 검사하고 인사나 좀 하면 어찐가?'라며 내 의사를 물어. 홍준표도 백○○에게 내가 누구란 얘기를 들었을 거야. 또 나는 내과 원장도 알고, 건설사 사장도 다 알고 있잖아. 그래서 백○○이 홍준표와 인사하라고 청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내가 기무사 등 선배들 다 모시고 두 팀으로 나누어 운동하고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었고, 홍준표가 검사 신분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또래라고 생각했어.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으면 예우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또래거나 더 밑이라고 생각했어. 기관장들도 앞에 있는데 밥 먹다 말고 꾸역꾸역 홍준표에게 가서 인사할 일이 없제. 홍준표가 우리한테 와서 인사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고. 나도 자존심 하나로 사는데."
두번의 미운털- 평검사라고 거절했나? "계급이 높다고 해서 인사하고 낮다고 안하는 게 아니여. 계급이 낮은 사람도 서로 좋은 마음을 갖게 하면 당연히 자세를 낮추겄제. 내가 범죄를 짓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다만 그런 분들이 나이가 지긋이 있으면 지역사회에서 예의로라도 인사하지.
그런데 검사인데다가 나이도 그러고, 그런 사람들 수사해서 막 잡아넣고 우쭐해하고 있는데 내가 찾아가서 '아유, 검사님' 하는 것이 자존심이 허락 안하고 마음이 안내켰어. 게다가 당시 내 기준으로는 광주가 건설업계 입찰비리문제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검사가 건설업계 분들과 골프를 친다는 것도 왠지 비정상으로 보이더라고.
그때 홍준표가 나를 괘씸하게 본 거야. 자기가 광주에서 그런 사건들을 패기넘치게 하니까 자기 지인들한테 우쭐해보일 때인데, 내가 거절하니까 그 지인들에게도 창피했겠지. 암튼 거기서 홍준표의 심기를 거스른 건 틀림없어. 본인도 후일 넌지시 그걸 이야기하더라고.
그것이 첫 번째야. 홍준표가 보기에 자기는 막 수사하는 검사인데 씨알도 안 먹히고, 내가 즈그 부장하고 가깝다고 하니까, '나를 무시하냐?'라고 고깝게 생각했을 거야. 그 사람 성격상 그랬을 거라고. 나는 홍준표 얼굴도 잘 기억 못하고 관심도 없었어. 홍준표 얼굴도 대면한 적이 없었지.
그런데 남충현 부장이 나한테 '홍준표가 너한테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으니 한번 만나라'고 해. 자기가 홍준표한테도 '여운환이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을 믿어라, 그런 사람이었으면 내가 십 몇 년을 만나겠냐?'고 했다면서 나더러 연락 오면 한번 만나보라고 해. 그래서 '알았습니다'라고 했지.
그런 말을 들었던 처지였는데 광주지검에 있던 이○○ 계장이 느닷없이 전화를 해왔어. 지금은 법무사를 하고 계시는 분인데, 전화해서는 대뜸 잘 있냐고 안부를 전하더니 '우리 홍준표 검사님한테 아직 인사 안드렸는가?'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이, 그렇잖아도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나고 말은 많이 들었는데 인사 드릴 기회가 없어서 못 드렸네요'라고 했어. 그러니까 '우리 홍 검사님 바꿀게' 하면서 전화를 바꾸더라고. 그렇게 홍준표하고 첫 통화를 하게 됐어.
그렇게 통화를 했더니 홍준표가 나한테 '여 사장, 우리 한번 만납시다' 그래. 그래서 내가 '언제든 시간 내주십시오, 저도 뵙고 싶습니다'고 하면서 '검사님 어디 자주 가시는 음식점이나 좋아하시는 음식 있으면 제가 예약하겠습니다'고 했어. 그러니까 홍준표가 '그런 것은 중요치 않고 암튼 한 번 만납시다' 그래서 날짜를 정하고 전화통화를 끝냈지.
만나기로 한 날 국제호텔 사우나에서 목욕하고 이발소에서 머리를 말리려고 하는데 우리 여직원에게 메시지가 들어왔어. 그래서 사무실로 바로 전화했더니 우리 비서 말이 '사장님, 검찰청 103호실에서 전화 좀 주시랍니다' 그래. 홍준표 검사라고 하면서.
그래서 내가 바로 전화했지. 그랬더니 홍준표가 '어이 여 사장, 나 홍 검사요, 오늘 우리 만나기로 했죠? 근데 내가 오늘 여 사장 만나는 거 생각 좀 해봐야겠어' 그래. 느닷없이 그래. 내가 무지하게 기분 나빴어. 그 사람 말투가 경상도 말투인데다가 힘을 세게 줘서 한다고. 그 자리에서 내가 '만나기로 해놓고 시간 닥쳐서 이러면 됩니까? 다음에 연락해서 만납시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어.
그것이 홍준표가 나한테 두 번째로 기분 나빠 버린 건이야. '나보다 높은 사람을 알고 지내는 사람이라고 나를 깡그리 무시하는구나' 고깝게 생각한 거야. 나를 알아볼 만큼 알아봤는데도 흠이 될 만한 것이 안나오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자기가 불쾌한 감정만 있었던 거야.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서 추석이 됐어. 1991년 추석 때였을 거야. 명절이 되니까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하지 않나? 그때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친구가 자기 형까지 동원해서 자기가 취급하는 물품을 추석 명절 선물용으로 구매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주방용품 세트를 많이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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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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