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곳 사람들> 책 표지
자음과모음
-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정유라를 봤을 때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고 했던데."제가 독일 가기 전 2016년 여름 이화여대를 취재할 때, 학점 특혜 의혹도 있어서 정유라라는 사람의 실체가 궁금했어요. 그 후 독일로 와서 한참을 찾았고 덴마크로 900km를 운전하는 것도 비현실적이잖아요. 다시 이틀 동안 기다려서 제 눈앞에 나타나니 더 그랬죠. 또 덴마크는 오전 10시에 해가 뜨고 5시 해가 져요. 시간관념이 붕괴된 상태에서 차 안에서 이틀을 꼬박 기다린 다음 정유라가 나오니 그 장면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 기다리는 게 쉬운 건 아니었을 거 같아요. 언제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차에서 기다리는 데 그냥 앉아있기도 쉽지 않더라고요. 주민이 경계하기도 하고. 독일에서 한번 그러기도 했지만 거기서도 쫓겨나서 힘들었죠. 배고프고 화장실 가고 싶고 졸리는 등의 욕구 때문에도 힘들고, 무엇보다 배터리 문제가 있잖아요. 상황이 여의치 않았어요. 오랫동안 기다리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서 힘들었어요."
- 정유라 보도 이후 취재 윤리 위반 논란이 일었잖아요. 아마 예상 못 하셨을 것 같은데 당시 어떤 심정이었어요?"사실 현장에서는 그 부분을 크게 생각하진 못했어요. 저희는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최선의 판단을 했던 결과거든요. 그리고 어떤 취재든 모든 사람을 100% 만족 시키는 취재는 없겠죠. 지금 생각해도 같은 환경이라면 저희는 그 판단을 또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왜냐면 계속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신고하고 보도 안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보도를 안 한다는 것은 더 고민해볼 문제라고 봐요. 어려운 문제긴 한데 그래도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많은 분이 잘했다고 다행히 격려를 많이 해 주셨어요. 그래서 억울한 심정이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다만 지금도 가끔 한 번씩 그 '윤리'라는 것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했는지 여러 시나리오를 가끔 생각해 보기도 해요."
- 세월호 쳅터에서 취재 수첩으로 시작하던데 그렇게 했던 이유가 있을 거 같아요."지금보다 더 어린 연차였던 3년 전 일이에요. 세월호 희생 학생들이 안치된 안산의 한 장례식장에서 '2층부터 갈래. 3층부터 갈래?'라는 학생의 말을 들었는데 '이런 슬픈 말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책을 쓴 것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이 느낌을 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글로 썼어요. 기억해야 할 것은 최소한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에 담았어요,"
- 촛불 집회에서 환영받은 언론사가 몇 개 없는데, 아마도 JTBC는 방송사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환영받은 언론사였던 것 같아요. 자부심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컸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시민의 환영을 받은 방송사는 MBC였어요. 그러나 8년이 지난 촛불 때는 욕을 먹었잖아요. JTBC가 MBC처럼 나중에 시민들에게 욕 안 먹으란 보장이 없잖아요."제 개인의 생각이라 조심스럽긴 한데, 그런 느낌도 있었어요. 왜냐면 시청자나 대중은 굉장히 엄격하잖아요, 예를 들어 주셨듯이 2008년 MBC의 위상은 대단했기 때문에 저희도 잘못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현장에 있을 땐 그런 걱정할 겨를이 없었어요. 다만, YTN, MBC 보고 시민들이 차 빼라고 할 때, 바로 옆에 저희 차도 있었거든요. 저희에게는 박수를 쳐주시고 그분들에게는 다그치시는 게, 경쟁자지만 동료의식으로 봤을 땐 안타깝기도 했죠. 동시에 '실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죠. 평가라는 건 냉혹하게 내려진다는 느낌을 받았죠,"
- JTBC가 그렇게 환영을 받은 건 단지 태블릿PC 보도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현장을 많이 중시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민들이 있는 현장을 최대한 오래 지켰죠. 3년 전 세월호 보도 때도, 그랬고 후배 이상엽 기자가 최근까지 남아 있었던 목포신항도 마찬가지죠. 많이 관심을 두지 않는 사안까지도, 최대한 여력이 되는 대로 챙기려는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촛불집회 취재할 때는 어땠어요?"중계차 지붕 위에 올라가서 광장을 내려다보면 뭔가 큰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보였잖아요, 그 기운이 물리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대단하더라고요.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건 처음 봤거든요. 뭔가 흥분되고 벅차지는 게 있었죠.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어요. 중계하며 티 내면 안 되지만 무언가 업(up) 되는 게 있더라고요."
- '나오면서'에 마산까지 내려가 취재한 이야기를 쓰셨잖아요. 이유는 뭔가요?"그건 성공하지 못한 취재잖아요. 난관에 부딪혔는데 뚫지 못하고 보류를 한 상태인데 혹시 그것에 대해 아시는 분이 계시면 제보를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제가 책 본문에 마치 다 잘한 것처럼 써놓은 것 같아서 혹시 오해하실까 봐요. 저는 원래 '삽질'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거든요. 풀지 못한 게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마무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마지막 장의 이름도 '끝나지 않은 뉴스'였어요. 끝이 없으니 끝을 안 낸 거죠. 뭔가 마무리 멘트가 들어있을 것 같은 책 마지막에 마무리는 없어요. '뭐지?'라는 걸 느낄 텐데 저도 마찬가지예요. 마무리를 할 수 없거든요. 앞에 근사하게 썼던 내용을 마무리할 자신도 없었어요,"
- 역사적인 현장을 취재하며 느끼는 것도 많을 것 같은데."배운 게 많아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왜냐면 자기와 직접 관련이나 이익과 관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시간과 돈과 이런 걸 선뜻 쓰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논리적으로는 선뜻 설명이 안 될 수도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제가 책에 언급한 분 중에서 진도 팽목항, 목포신항 그리고 미수습자 유해 발견 후 서울 장례식장에서 도움을 준 '명봉 아저씨'가 있는 데 그런 분은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거죠. 시간과 돈을 쓰잖아요. 누가 보면 '뭐하러 저렇게 하느냐'라고 할 수도 있죠. 신기했죠. 저에게 제보해주신 분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드릴 것 없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감사했어요. 저를 도와줘서 감사한 게 아니라 나름의 환경에서 무언가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이요."
- 책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뭔가요?"제가 광장에 있을 때나 목포신항에 있을 때 사람들이 현장에 많이 모였죠. 그때 느낌을 보면 뭔가 그 모인 사람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너무 낭만적으로 바라봤을 수 있는데, 같은 뜻이나 감정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들끼리 감정을 공유하고 조금 더 서로 친절하고 서로 보듬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미 우리는 광장을 지나 새로운 국면으로 왔는데, 그런 따뜻한 감정으로 모였었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라는 바람, 또 제 개인적으로는 취재하면서 그렇게 우연과 행운이 겹칠 수 없는 순간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메시지입니다."
- SBS를 시작으로 MBC와 KBS까지 정상화 작업을 하고 있잖아요. 아무래도 이제 JTBC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내부 분위기는 어때요?"회사 관련 문제라 개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합니다. MBC와 KBS 정상화를 당연히 주목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저희는 평소 뉴스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제작을 참신한 방법으로 해보자고 연구나 회의를 계속 해왔어요. 다른 이슈가 있어서가 아니라 늘 계속 혁신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저희가 계속 변해야 살아남잖아요. 그런 연장 선상에서 고민해온 것 같아요. JTBC 선후배 동료들이 '으쌰으쌰' 해서 분위기는 좋죠."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책을 내니 인터뷰도 많고 북 토크 행사도 하는데 과분하게 이런 기회가 많아서 기쁘기는 하지만 제가 내뱉는 말 또는 책에 쓴 글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앞으로도 그런 생각에 반하지 않게 본분대로 충실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그날 그곳 사람들>이라는 책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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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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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정유라 집 발견했을 때 머리가 쭈뼛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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