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롤터바위 산을 오르고 있는 타리크와 병사들(작자 미상)
gibraltar-intro.blogspot.
그렇다면 우리의 강리도에서 '저불리파(這不里法)'는 '자발(알)타리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어딘지 석연치 않습니다. 뒷부분 즉 '파'와 '타리크'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한 근거를 찾아 보는 게 좋겠습니다. 지중해 여행이 달려 있으니까요.
인터넷에서 지브롤터의 지명을 다시 찾아 봅니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Jebal-Tarik, Gibeltarif, Gibil Tarif, Jibel Tarif, Jibel Tarik, Gibel-Tarik, Gibel-Tarif, Jabalu-t Tarik, Gebaltarik, Gibel -al Tarif, Gebal-Tarik, Ghebal-Tarik, Djebel-Tarik, Gebal Taric, Chebel Tarik, Gebel-el-Tarik, Yebel Tarik, Jebel-Tariq, Jebel Tariq, Djebel Tarik, Gebel Tarik, Yabal Tarik , Jebel Tarik, Jebel-Tarik,Yabal Tariq, Jabal Tariq, Jabal-i Tariq" (출처 : The People of Gibraltar)이토록 많은 지명 표기가 있다는 것은 이곳이 복잡 다단한 역사를 겪었다는 뜻일 겁니다. 하긴 이 곳이 지금 영국령이라는 것도 이상하기는 합니다. 2016년 말 이곳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었을 때에도 최종적으로 영국 왕실의 승인을 거쳤더군요.
그건 어떻든 우리는 지명에 집중해야 합니다. 수많은 지명 표기 중에 앞 부분은 모두 산을 뜻하는 표기입니다. 문제는 뒷 부분입니다. 'ㅍ' 발음이 들어 있다면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게 있습니다. Gibil Tarif, Jibel Tarif. 그렇다면 이게 정답일까? 아마 그럴 수 있겠지만 조금 더 만전을 기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파'와 '타리프'는 역시 차이가 있으니까요. 혹시 '파'가 '타리크'가 아닌 다른 어원에서 나왔을까? 발상의 전환을 해 봅니다. 이제 인터넷은 접습니다.
강리도가 만들어졌던 즈음에 쓰여진 여행기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조사해 봅니다. 이븐 바투타(1304년~1368년)는 시기적으로 강리도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겹치고 그의 고향 모로코 탕헤르는 지리적으로 지브롤터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 또한 베르베르족입니다. 그의 여행기 속에 무언가 단서가 있지 않을까?
"<정복의 산>은 이슬람의 보루이며, 우상숭배자들의 목구멍 가시인 동시에 우리의 주공 아부 하싼이 행한 선덕의 산물이며 그의 앞에 불을 지펴준 화로이기도 하다. 또한 성전을 위한 장비의 저장소이고, 영용한 사병들의 주둔지이며, 신념의 승리를 가져 온 해구이다. (중략) 여기에서 대정복이 시작되었다. 그로 하여 Andalus 사람들은 공포와 쓰라림 후에 안녕의 감미로움을 맛보게 되었다. 타리크가 해협을 건너(711년에 원정군을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갔다), 바로 여기에 주둔하였던 것이다. 여기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했는 바, '자발 타리크' 혹은 'Jabalu'l Fath(정복의 산)이라고 했다." - 정수일 역 <이븐 바투타 여행기2> 380쪽
우리는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쳐야 합니다. 바로 이게 아니겠는가. Jabal tariq(자발 타리크)외에 'Jabalu'l Fath(자발루 파스)'라는 별칭이 있다는 것 아닌가. '저불리파'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제 수수께끼가 풀렸습니다.
지브롤터에 처음 발 디딘 한국인은?카자흐스탄의 눌란 박사도 우리의 발견을 확인해 줍니다. 눌란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스페인 일부는 무슬림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아랍 지리학자들에게는 al-Andalus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오늘날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주 이름이 유래한다. 강리도 상의 알 안달루스지역 지명 중에는 어원이 아랍어인 경우도 있고 원래 로마나 고딕어의 원명이 나중에 아랍어로 변형된 것들도 있다. 이베리아 반도 남단에 '저불리파'가 나오는데 지브롤터를 가리킨다. 지브롤터는 아랍어 Jabal al-Tariq에서 파생된 것인데 '타리크 산'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16세기의 해도 제작자이자 학자인 Ali al-Sharafi는 지브롤터를 아랍어로 Jabal al-Fath라 하였다.
한편 Jabal al-Fath에 대하여 이븐 바투타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사브타(Subta)에서 배를 타고 스페인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본 첫 장소는 승리의 산(Jabal al-Fath/Hill of victory)이었다. 이곳은 이슬람의 위대한 보루이며, 우상숭배자들의 숨통을 죄는 곳이기도 하다. 타맄 이븐 지아드가 스페인으로 진격할 때 바로 이곳에 주둔했기에 이슬람의 승리는 이곳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사정으로 이곳은 그의 이름을 따라 Jabal Tarik(Taric)라 불렸으며 또한 Jabal Fath(승리의 산)이라고도 불리었다. 승리의 기점이 바로 여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불리파는 Jabal (al) Fath의 음을 옮긴 것이 거의 확실하다." - <The Silk Road 14>(2016) 114쪽 번역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여러 판본이 있는 관계로 어떤 것을 번역했느냐에 따라 내용과 뉘앙스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수일과 눌란의 번역이 약간 다른 까닭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요지는 같습니다.
다음은 16세기 터키의 해군 제독이자 지도 제작의 달인이었던 피리 레이스(Piri Reis, 1465~1553)가 그린 지브롤터 일대입니다. 오른쪽(북쪽)의 지브롤터와 왼쪽(남쪽)의 모로코 세우타 요새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