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를 단 범퍼카 뒤에는 남부연합기도 보인다. 2014년 10월
박기철
피렌체 대성당을 위시한 피렌체 중심가에는 항상 수많은 관광객이 북적인다. 피렌체시는 관광객들에게 자신들의 유적을 아름답게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욱일기를 매달고 즐거워하는 이들이 있다.
욱일기의 의미를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우리 나라의 놀이 공원에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달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과거 레오나르도 브루니가 그렇게 찬양해 마지 않던 피렌체의 시민정신이 이런 것인가? 건축물과 예술품들을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애쓰다 시민정신도 과거에 머물러 버린 것인가?
물론 내가 겪은 한 가지 일을 일반화하는 것은 비약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스탕달이 피렌체의 예술 작품에서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피렌체에서 만난 욱일기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내가 아름다운 한 쪽 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어떤 한 도시나 사람이 좋은 면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 일은 피렌체를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삐딱하게 바라보자 피렌체에는 위대한 인문학자들과 천재 예술가 그리고 그들을 후원한 부자들만이 아니라, 착취당하고 억압받던 노동자와 여성들도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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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말 네 번째로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피렌체 대성당 돔으로 올라가는 길에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벽과 쿠폴라에 빼곡했던 낙서가 깨끗이 지워진 것이다. 그리고 낙서를 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붙었다. 낙서가 없어지고 깨끗해진 것처럼 이제 피렌체에서 욱일기를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것 만큼 시민정신은 성장했는가? 이 질문은 비단 피렌체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똑같이 해당될 것이다. 나와 우리는 외적인 성장만큼 내적인 성숙도 함께 발맞추고 있는가? 피렌체의 욱일기와 같은 것이 우리에게는 없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