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장이 있던 칼사디야 데 라 케샤(Cazadilla de la Cueza) 알베르게를 떠나며
차노휘
한국인 중년 남자들우려대로 비가 왔다. 비 덕분에 5시 전에 눈을 떴지만 침대에 누워서 자다깨다 했다. 날이 밝은 뒤에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인지 연석과 성주도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도 7시에는 길을 나서야 할 것 같아서 6시 지나서 짐을 꾸리고 밖으로 나갔더니 마틴이 벌써 짐을 다 꾸려놓고는 야외 의자에 앉아서 늦잠 자고 일어나는 순례자들을 둘러보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8시에 비가 그치니 그때 저는 출발합니다!"판초우의를 입고 신발 속으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스패츠(신발 위에 차는 짧은 각반)까지 하고는 7시에 밖으로 나갔다. 거센 빗줄기가 이울어 보슬비로 변했다. 걸을 만했다.
비가 와선지 그동안 태양 아래 날 서게 보였던 풍경들이 누그러졌다. 잿빛 구름이 하늘을 입체적으로 점령했고 시원한 바람이 빗줄기와 동반했다. 연석은 창문 바로 옆에서 자서 감기 기운이 있다며 늦게 출발한다고 했고 성주는 일찍 출발했다(한국 사람이라고 같이 출발하지는 않는다. 목적지가 같아 같은 알베르게에서 만나면 반가울 뿐이다).
어제 저녁 식사를 같이했던 프랑스인 데미안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인생의 재충전을 위해서 이 길을 걷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한국 중년 남자들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한 번 같이 잔 적이 있는데 아주 곯아떨어지더라고(코를 심하게 골았다는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했다. 그 이유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라고 했다.
데미안의 말은 이러했다. 며칠 전에 한국인 중년 남자들과 같은 알베르게에 묵었다. 그들이 와인 세 병을 가지고 알베르게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렸다. 알베르게에 있던 사람들이 와인 한 병을 나눠마시는 동안 그들은 거뜬히 두 병을 비우더라는 것이다.
나는 데미안이 한국 중년 남자들의 에피소드를 말할 때 아주 호쾌하게 웃었다. 전형적인 한국 사람들의 술 문화였기에 정겹기까지 했다. 그와 가볍게 한국 술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한국 사람들은 술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혼자보다는 떠들썩하게 함께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이자 친교의 한 방법이라고 했다. 데미안도 데이비드도 어제 체험을 했다. 한국사람 셋과 저녁 식사를 하느라 평소보다 더 마셨고 더 웃었으니깐. 기분 좋은 저녁 식사였다고 데미안이 말했다. 나는 데미안에게 그들을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데미안은 내가 아침 식사를 하려고 바에 들어갔을 때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만났다. 데미안이 말한 인상착의의 한국 중년 남자 둘이 떡, 하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절로 웃음이 터져버렸다. 서로 인사도 하기 전이었다. 나를 분명 나사 하나 빠진 여자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가 와서 비가 그칠 때까지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는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