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과 <조선>의 습관적 경계론
김정은 '비핵화' 명시 안 해 '쇼'라고?

[황 기자의 한반도 이슈] 북한 당 전원회의에 담긴 대내·대외 메시지

등록 2018.04.21 19:13수정 2018.04.21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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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북한 핵실험장 폐기 관련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북한 핵실험장 폐기 관련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핵무력·경제 병진노선 성공/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북부(함경북도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
핵시험·대륙간탄도로케트(ICBM) 시험발사 중지/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 적극화."

북한은 20일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전원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결정서를 채택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정태옥 대변인은 21일 논평에서 "사실상 핵을 보유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이전까지는 진전된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는 "김정은의 이번 핵 폐기 선언도 살라미 전술에 의한 위장 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도 했다.

<조선일보>도 이날 <[전문가분석] "北 거듭됐던 쇼 경계해야...100미터 달리기서 2미터 온 것">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번 메시지에 '비핵화'라는 단어는 없었다'며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오겠다는 의지를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그동안 거듭돼 왔던 쇼(show)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맹목적 '반북'에 근거한 무조건 반대이거나, 그간 핵 문제 진행 과정과 북한의 내부 상황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주장으로 보인다.

이번 북한 결정서의 주요 내용들은 대내, 대외적 의미를 모두 갖고 있겠지만 세밀하게 보면,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 성공'과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은 주로 내부용 메시지다.

'핵무력·경제 병진 성공-경제건설 총력' 선언, 비핵화 충격 줄이려는 예방접종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0일 평양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하에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2018.4.21
(서울=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20일 평양에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주재하에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를 개최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1일 보도했다. 2018.4.21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은 실질적인 집권 2년차인 2013년 3월 31일에 한 당 중앙위원회 (제6기 23차)전원회의에서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을 '새로운 전략노선'으로 설정했다. '새로 등장한 김정은 시대의 국가발전 전략'이라는 선포였다. 그러면서 핵무력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민족의 보검"이라고 북한 인민들을 설득하면서 핵·미사일 개발에 매진해왔다.

그리고 이제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서 핵문제에 대한 방향 전환을 앞두고, 내부 설득을 위해 "강력한 보검을 갖추기 위하여 허리띠를 조이며 간고 분투해온 우리 인민의 투쟁이 빛나게 결속(매듭짓다)되었다", 즉 5년 동안 매진해온 핵무력·경제병진 노선'은 성공했으니 이제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일종의 '예방접종'인 셈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왜 명시적으로 핵을 포기하겠다고 말하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것은, 북한의 현실 상황에 대한 의도적인 외면에 가깝다. 특히 본 게임인 북미정상회담은 물론 '길잡이'격인 남북정상회담도 하지 않은 단계에서, 모든 패를 다 드러내고 무장해제하라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이야기다.

'ICBM 발사 중지' 문서 약속... 미국의 제1 우려 해소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결정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통신은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1월 보도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시험발사 모습.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결정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통신은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11월 보도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시험발사 모습.연합뉴스

'북부(함경북도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와 '핵시험-대륙간탄도로케트(ICBM) 시험발사 중지'는 대외용, 정확히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이는 우선, 핵문제에 대한 가장 최근의 북미간 합의였던 2012년 '2․29' 합의보다 진전된 것이다. 당시 합의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 실험 및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영변에서의 핵 활동에 대한 유예(모라토리엄)'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핵실험장'을 폐쇄하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훨씬 진전했다.

특히 ICBM 발사 중지는 미국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우선적으로 신경 쓰는 것이 바로 북한의 ICBM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즉 소련이 붕괴한 이후, 미국을 직접 겨냥해 핵을 실은 ICBM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한 것은 북한이 처음이었고, 사거리만 놓고 보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ICBM 능력의 핵심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확증시키지 못했음에도 북한은 지난 해 11월 29일 서둘러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을 했고, 이 '미완성'이라는 틈이 미국과 북한의 협상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미 완성됐고, 핵·미사일 능력을 완비했다면 협상 여지는 사라졌을 것이다.)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정성장 박사는 이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이 ICBM 능력을 완성하지 못했고, ICBM 능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ICBM의 추가 시험발사가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앞으로 ICBM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에게 큰 위협으로 간주되는 북한의 ICBM 능력 완성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 "김 위원장의 이 같은 선언은 미 행정부에 매우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사항들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6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등에게 밝힌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하였음"이라는 내용에서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이라는 단서를 뺀 데다, '구두 선언'이라 아니라 '문서 약속'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는 동시에 지난 3월 말 ~ 4월 초에 평양에 들어간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요구했던 것에 대한 '화답'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북한 발표에 대한 트위터에 글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모두 중단하고 주요 핵실험 부지를 폐쇄하는 데 합의했다"면서 '합의'(agreed)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북한의 '풍계리 핵 실험장' 폐쇄에 대해 '6차례 핵 실험을 통해 지반이 붕괴하는 등 이미 노후화된 곳이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전 국가정보원 1차장 출신 남주홍 경기대 교수,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면서, 이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로 볼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또 이 대목을 결정서의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과 연결시켜 북한이 앞으로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해석하는 주장도 있다. 요약하면 북한의 속임수라는 것이다.

북, '미래 핵 포기-현재 핵 동결 시작' 카드 제시... 트럼프가 답할 차례

 21일 오전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북한 핵실험장 폐기 관련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북한 핵실험장 폐기 관련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대목들은 결정서의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며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하여 주변국들과 국제 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해 나갈 것"이라는 부분과 연결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다.

정성장 박사는 "북한이 경제 건설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국제환경 및 국제사회와의 긴장 완화 및 협력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핵포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의 고강도 경제 제재를 당해온 북한이 이처럼 '주변국들과 국제 사회와의 긴밀한 연계'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기도 하다.

종합해보면, 북한의 핵을 미래 핵(성능 향상을 위한 핵·미사일 실험), 현재 핵(핵 프로그램), 과거 핵(완제품 형태로 보유 중인 핵무기)으로 분류할 때,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핵시험-ICBM 시험발사 중지'로 미래 핵을 포기하며, 북부 핵실험장 폐쇄 선언으로 현재 핵에 대한 '동결(freeze) 작업의 시작'이라는 카드를,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내놓은 셈이다.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답을 내놓아야 할 때다. 그는 일단 "아주 좋은 소식"이라며 "정상회담을 고대하고(look forward to) 있다"고 했다. 여전히 김 위원장이 세계를 속이고 있으며, 이번 북한의 당 전원회의 결정서도 기만술이라는 이들을 일축한 셈이다. 
#김정은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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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18 남북-북미정상회담 : 평화가 온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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