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퇴사 결심. 기왕 결심한 거, 훌훌 털고 그 길에서 행복하라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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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과 병가를 번갈아 내면서 1년 반 정도를 쉬었을까. 이제 나가도 되겠다 싶어서 복직을 신청했는데, 그 이후는 더 혹독했다. 휴직하기 전에 일하던 곳이 아닌 전혀 새로운 부서에 발령받는 바람에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도 일도 낯선 상황에서 친구는 아무리 해도 머리가 예전처럼 안 돌아간다는 푸념을 종종 했다. 결국 속도가 느려지고, 그 느려진 속도를 메우려면 주말 근무까지 감수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선 버거운 상황일 수밖에.
그럼에도 나라를 구하겠다 싶은 수준의 맘 고생 몸 고생을 견디며 버티다가 결국 친구는 다시 육아휴직을 냈고, 곧 복귀를 앞둔 터였다. 또 죽어라 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이제 머리도 체력도 열정도 예전 같지 않은 상태라는 걸, 나도 알고 너도 아는 일. 그래도 혹시나 싶어 질척거리며 떠보았다.
"그래도 아쉽지 않아?"
"당연히 아쉽지. 그래도 20대부터 청춘을 바친 곳인데."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겠어?"내 질문에 친구는 쿨하게 대답한다.
"사실 하고 싶은 거 다 했어. 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고 놀기도 재밌게 놀았고. 이제 그만하면 됐다 싶어."더 이상 미련도 여한도 없다는 친구의 말에 깨끗이 승복했다. 또 다시 덤빌 엄두가 나지 않는 마음이 충분히 공감되서 그냥 "그래그래" 해주었다. 그동안 친구가 어떻게 그 자리까지 왔는지 잘 안다. 친구지만 기꺼이 존경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훌륭하게 자신의 몫을 잘해낸 친구.
그렇게 오랫동안 일군 것들을 접고 퇴장을 결심한 친구를 보자니 오래된 좋은 동료 하나를 잃은 것처럼 서운하고 속상했다. 한편으론, 베개에 머리만 대면 5초 안에 잠드는 친구가 며칠 밤을 샜다는 말에 그간의 고뇌가 헤아려져서, 김치통을 들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봐주었다. 기왕 결심한 거, 훌훌 털고 그 길에서 행복하라고 기도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모든 게 전과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건, 좀 고약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시간에 따른 변화에 순응하며 살고자 하지만, 결혼과 출산, 양육으로 인해 쌓은 커리어를 포기하고 떠나는 여성 동료들을 보는 건 다른 결로 곤혹스럽다.
내 또래의 여성 동료들을 찾기 힘든 것에 익숙해졌는데, 친구와 헤어진 그날은 어쩐지 살아남아도 하나도 기쁘지 않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생존인 듯 생존 아닌 생존 같은 걸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힘껏 응원합니다, 퇴장했거나 견디고 있는 모든 여성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