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리도항아리 모양의 사진
김선흥
우리 선조들이 맨 처음 지도에 유럽을 그린 것이 언제였을까요? 개항 후인 19세기? 아닙니다. 15세기 초 1402년(태종 2)에 유럽을 그렸습니다. 지중해 등대와 섬도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도에 대해 서양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는 걸까요? 이번 호의 주제입니다.
거꾸로 이렇게 가정해 봅니다. 만일 1402년 그 깜깜하던 시절에 우리가 전혀 몰랐던 서양의 어떤 나라 사람이 한반도를 지도에 그려 놓았고 그 사실을 우리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면? 그 지도에 1402년 시절의 한양도 표시되어 있고 압록강이나 낙동강도 그려져 있다면? 강리도가 바로 서양인들에게 그런 경우일까요? 그렇습니다. 강리도에는 다뉴브강도 그려져 있고 지중해와 대서양도 나타나 있습니다. 파리, 로마, 마르세이유, 지브롤타 등의 도시명도 적혀 있습니다.
또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만일 1402년에 남아프리카 사람이 그린 지도에 우리나라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한강도 나타나 있고 땅끝 해남 일대의 해안선이 정확히 그려져 있다면? 강리도가 아프리가 사람들에게 그런 경우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아프리카 국회의장 진왈라 여사가 2001년 11월 강리도를 케이프타운 소재 국회의사당에 전시한 스토리는 예전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강리도가 저 멀리 남아공 케이프 타운에 등장하기 꼭 10년 전인 1991년 10월 12일 위싱턴에 그 모습을 홀연히 나타낸 것입니다.
이듬해 1992년의 1월 12일까지 꼬박 3개월간 강리도는 워싱턴의 국립미술관(NATIONAL ART GALLERY)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일본 교토의 류코쿠(龍谷)대학 오미야(大宮) 도서관 지하의 수장고에 있던 우리의 강리도가 수백 년의 침묵을 깨고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미국이 콜럼버스 항해 5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야말로 세기적인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1492년 즈음 CIRCA 1492'이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15세기를 전후해 각 문화권에서 성취된 걸작품 600여 점을 선별하여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 강리도가 출품된 것입니다.
강리도 실물이 지하에서 나와 해외에 전시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고 아마도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강리도의 미국 행차는 강리도 부활의 역사에서 분수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큽니다.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는 까닭입니다. 과연 그 당시 워싱턴에서 강리도는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요? 뉴욕 타임스 및 잡지 등에서 강리도의 반향을 찾아 볼 수있습니다. 그 요지를 여기 옮깁니다.
지도와 지구의 및 기구들이 전시회에서 가장 특별한 품목에 속한다. 프랑스로부터는 1375년의 카탈란(Catalan) 세계지도가 출품되었다. 이 지도는 유럽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당시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세계였던 동방을 환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독일로부터는 1507년의 마르틴 발트제뮐러 세계지도가 왔다. 이 지도는 신대륙을 유럽인들이 최초로 묘사한 것이다.
일본으로부터는 1402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지도가 왔다. 이 지도는 당시 알려진 세계를 그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동아시아발 세계지도이다. 이 지도에 그려진 유럽은 당시 어떤 유럽인들의 지도에 나타난 아시아보다 월등히 낫다. 하지만 이 지도는 한국의 세계상이다. 한국은 아프리카만큼 크게 그려져 있고 숙적 일본은 남쪽바다 멀리로 추방되었다. - Michael Kimmelman, <뉴욕 타임스> 1991년 10월 20일자
콜럼버스 이전에는 세계의 형상이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국립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Circa 1492"는 사람들의 사고를 영원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1402년에 한국인들이 <강리도>라는 새로운 세계지도를 완성하였다. 이 지도에는 정확한 걸프만이 그려져 있고 어설프지만 식별할 수 있는 아프리카, 지중해, 남유럽이 나타나 있다.- Kay Larson, <New York Magazine> 1991년 11월 11일자
워싱턴 D.C.의 국립 미술관은 초대형 전시회 "1492 즈음: 탐험시대의 예술(Circa 1492: Art in the Age of Exploration)"의 개막으로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을 기념하였다. 콜럼버스 항해 즈음에 탄생한 세계 5대륙의 예술품을 보여주는 이 전시회는 많은 대중과 열정적인 비평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 전시회를 통해 우리는 동아시아가 서양의 르네상스기에 과학적 천재성으로 빛났음을 알게 된다. 이를테면 신흥 조선 왕조에서 세계지도가 만들어졌다. 국립 미술관에 전시된 깜짝 놀랄(startling) <강리도>에는 어느 정도 정확한 아프리카와 유럽이 포함되어 있다. 이 세계도는 이태리의 계몽 지식인들이 지도학과 기하학을 숙지하기 한 세기 전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즉, 왜 조선은 500년 동안 존속하면서도 자신의 봉건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는가? - Richard Ryan(호주 카톨릭 대학 교수), 미국 월간지 <COMMENTARY> 1992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