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임을 요구합니다, '공자를 위한 최종변론'

[책이 나왔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논어 이야기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등록 2018.11.26 08:26수정 2018.11.2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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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 번째 책이 되었네요. 어린이와 부모가 놀이로 대화하고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 놀이 책>(2013), 부모님들이 자신의 유년시절과 다시 만나고 아이와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2017)에 이어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글라이더)를 썼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학생, 고등학생들과 함께 책 읽고 공부하고 토론할 기회가 부쩍 늘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청소년들에게 공자와 논어를 소개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에 공자 전문가가 트럭으로만 백 개는 넘을 텐데 왜 나에게? 대치동에서 논술 강의도 했고 청소년들을 위한 글도 썼으니 기존의 논어 전문가보다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지 않겠냐는 주장에 고개를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비밀의 책장에 손을 대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선배의 손을 잡고 한학자 선생님을 만나 <대학>, <중용>, <맹자>를 읽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논어>만큼은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사기열전>, <삼국사기> 등을 윤독하면서 <논어>는 틈틈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20대이고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때만 해도 <맹자>가 저에게 맞았습니다.

하지만 30대를 지나면서 제 마음은 <논어>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줄 한 줄이 시처럼 가슴에 박혔습니다. 헌책방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논어' 관련된 책만 만나면 사들이는 습관은 그때 생겼습니다. 그렇게 18년 동안 <논어>를 읽어 왔던 사실이 발각됐습니다.

저는 <논어> 전문가도 아니고 어떠한 권위도 없습니다. 그저 <논어>에 담긴 '사랑 이야기'가 참 좋았을 뿐입니다. 가끔은 마치 공자 학당 한구석에 앉아 있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처럼 어떤 날은 뼛조각 하나를, 어떤 날은 살점 하나를 붙이며 공자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습니다. 제 가슴 속에서 공자를 되살려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냐고? 하지만 막상 책으로 내려고 하니 지금까지 읽었던 모든 것들을 압축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저는 공자가 오랜 세월 동안 신(神)의 위치로 떠밀렸고, 그것은 공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스레 공자가 창시한 유학은 '신앙'처럼 배타성을 띠고 교조주의로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참 가슴 아팠습니다.


중학교에서 제게 글쓰기 수업을 받던 친구들에게 공자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자 한 친구가 원망의 말을 꺼냈습니다. 그 학생은 공자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감정은 아니었죠. 그의 말이 참 가슴 아팠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친구를 사귀지 말라고요? 공자는 참 이상한 사람 아닌가요?"


갓 중학교에 올라간 그 학생에게 저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밉기도 했습니다.

'청소년에게 공자라는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자. <논어>가 어떤 책인지 보여 주자.'

이것이 집필동기라면 동기입니다. 진지한 마음으로 공자와 <논어>를 알고 싶어 하는 한 명의 청소년을 위해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이 총동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좀 어려운 책이 되고 말았어요. 그건 순전히 제 무능력의 소치입니다.

<논어> 최종본은 반란자의 손에서 나왔다
 
 18년 이상 읽은 동양고전은 공자와 사마천인데요. 다음 책은 사마천이 될 것 같습니다.
18년 이상 읽은 동양고전은 공자와 사마천인데요. 다음 책은 사마천이 될 것 같습니다. 글라이더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에는 제가 그동안 알게 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뜻밖의 내용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논어>가 누구의 손으로 정리되었는지 처음 알았을 때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황제의 스승으로 벼슬이 '안창후'에까지 올랐던 전한(前漢)의 장우(張禹)라는 인물은 정치적 지위와 학문적 권위를 갖췄기 때문에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어>를 배우려면 장우의 <논어>를 읽어라"는 입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장우는 어떤 사람일까요?
 
장우는 당시 왕권을 탈취해 신(新)나라를 세우고 가혹한 형벌과 노역으로 백성들의 원망을 샀던 정치인 왕망(王莽)에게 빌붙어 부귀를 보존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한나라 역사서에서도 장우가 논어를 편찬한 일에 대해서 "자기의 뜻에 부합하는 것만 골랐다"고 기록될 정도였죠. -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일부

반란자가 엮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논어>에 대해 가지고 있던 권위가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꺼지는 느낌이었고,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우라는 사람을 통해서 '경전(經傳)'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탈자조차도 바꿀 수 없다'는 경전의 오래된 불문율도 어차피 관습이거나 신화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경전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면 저 역시 '나만의 <논어>'를 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장우가 고맙게 느껴지더라고요.

'반란자의 논어' 이야기만큼은 아니지만 고정관념을 깨뜨릴 만한 내용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 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누구나 이 말이 '공부의 즐거움'으로 알고 있겠지만, 사실은 반대로 '공부의 괴로움'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공자의 학당에 찾아온 학생들 대부분은 오늘날의 학생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취준생(취업준비생)'이 많았죠. 특히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공자도 그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장(子張)이라는 학생은 아예 대놓고 '공무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질문하기도 했고, 공자도 '3년 공부하면서 월급 걱정하지 않는 학생은 별로 없구나' 하면서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공자가 말하는 공부란 세상을 바꾸는 공부이며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공부였습니다. 이론적인 것도 아니고 한 세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필요한 실용적인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었고, 도덕적 용기를 가진 정치 지도자가 되는 공부였습니다. 관직이나 녹봉은 자연스럽게 얻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가르치진 않았습니다.

공자의 가르침은 꽤 많은 인내를 발휘해야 배울 수 있고, 어렵사리 배웠다고 해도 세상에서 인정받기는 어려웠습니다. 공자 스스로 평생 동안 조롱과 멸시, 따돌림에 시달려야 했으니 그의 공부가 마냥 즐거울 리 있겠습니까?

<논어> 첫머리에서 공자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자신과 함께 할 공부의 성격을 설명하고, 관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명한 학이편 첫머리와 속뜻을 나란히 소개합니다.
 
"성인의 도를 배우고 때에 맞추어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않은가? 제자들이 먼 지방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 윗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억울해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답지 않은가?" - <논어>, '학이' 편 첫머리(해석은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을 따랐음)

"공부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괴로움과 실망감, 무력감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공부의 결과가 아니라 공부하며 깨우치는 기쁨 자체에서 위안을 찾아야지. 공부 자체에 기쁨을 찾는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해줘야 해. 어차피 이 공부는 세상에서 쓰이지 못하고 버림받고, 공격받기 일쑤니 우울증에 걸릴지도 몰라. 앞서 말했던 두 가지 방법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밖에 없어." - <논어> '학이' 편 첫머리 속뜻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를 읽으면 첫판부터 <논어>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믿음이 산산조각 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논어>에 나오는 말들을 종합하면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점은 한 가지입니다. 청소년들에게 공자와 <논어>에 대해서 재신임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고 공자와 <논어>가 자신의 삶과 현실에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무가치하다는 판결을 받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공자와 <논어>를 더 이상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이 책이 '최종변론'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처럼 민준이(오른쪽)와 민서에게 기념 사진 포즈를 해달라고 했더니 아예 가면으로 쓰더군요. 덕분에 책표지가 집중은 잘 됩니다.
작년처럼 민준이(오른쪽)와 민서에게 기념 사진 포즈를 해달라고 했더니 아예 가면으로 쓰더군요. 덕분에 책표지가 집중은 잘 됩니다. 오승주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오승주 지음,
글라이더, 2018


#공자 #논어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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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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