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생활 초기에 모인 동전. 아직도 처리를 못하고 있다.
김경년
신용카드 거부하는 일본 가게들
도쿄, 아니 일본에 오는 한국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불평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것이다. 즉, 현금만 받는다는 것이다.
전에 며칠간 놀러왔을 땐 잘 몰랐는데, 살다보니 웬만한 가게는 다 현금만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편의점과 아주 큰 할인점, 백화점 정도나 카드를 받지, 슈퍼·음식점·목욕탕이나 대학의 학생식당 등 웬만한 곳은 카드가 아닌 현금을 내야 한다.
그러다보면 주머니엔 늘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이 철썩철썩 거린다. 오죽하면 다 큰 어른들이 동전지갑을 따로 들고 다닐까.
아침에 집을 나설 땐 전날 생긴 동전을 전부 소진하고 오겠다는 각오로 미리 살 물건값을 잘 계산해서 필요한 만큼 동전을 가지고 나간다. 하지만, 꼭 1엔짜리 혹은 10엔짜리 몇 개가 모자라 하는 수 없이 큰돈을 꺼내는 바람에 집을 나올 때보다 더 많은 동전을 만들어 들어가기 일쑤다. 책상 위에 쌓아놓은 동전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궁하면 통한다던가. 시간이 지나니 동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거스름돈을 받을 때 자투리돈을 얹어주고 큰돈으로 받는 식으로 해서 동전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가령 물건값이 '631엔'이라고 할 때 1000엔짜리 지폐를 내면, 거스름돈은 369원이다. 이걸 그대로 받으면 100엔짜리 3개, 10엔짜리 6개, 5엔짜리 1개, 1엔짜리 4개 도합 동전 14개가 생긴다. 이때 1000엔짜리와 함께 가지고 있던 동전 31엔을 함께 내서 369엔이 아닌 400엔(100엔짜리 4개)을 받는 것이다.
대답하기 난처해하는 일본인들
서울에 살 때를 뒤돌아보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나 붕어빵을 사먹을 때를 제외하면 현금을 쓸 일이 거의 없었다. 하다 못해 슈퍼에서 몇백 원짜리 아이스크림 사먹을 때도 카드로 결제하니 거스름돈이 생길 리가 없고 주머니에 동전이 있을 이유가 없다.
일본에 20년도 넘게 산 한 지인은 필자의 불평을 듣더니 "나는 이미 익숙해져서 그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라고 한다. 그는 한술 더 떠 "동전이 많아야 자판기 커피 빼먹고, 그 덕에 경제활성화가 되는 거 아닐까"라는 농담으로 속을 긁어놓는다.
앞선 글에서 소개했던 '교류회'(일본 사는 한국인과 한국에 관심있는 일본인들의 모임)에서 한번은 '상대의 나라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불편한 점'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일본인들은 한국에 갔을 때 가장 불편한 점으로 '화장실과 욕실이 같이 있는 점'을 꼽았다. 화장실과 욕실이 분리돼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은 하나로 돼 있어 화장실에 갔다가 샤워물이 튄 젖은 슬리퍼를 신고 난감해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가장 불결한 이미지의 화장실과 가장 깨끗해야 할 욕실이 붙어있으니. 한국 목욕탕에 갔다가 샤워기 옆에 소변기가 있어 기겁을 했다는 남자도 봤다.
반대로 한국인들은 일본에서 가장 불편한 점으로 바로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것을 들었다. 일본인들은 그런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린 원래부터 그래서 전혀 불편하지 않다"라는 점을 계속 강조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 어딘지 불편함이 묻어 있었다.
화장실과 욕실 얘기는 문화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지만, 신용카드 사용은 전세계적인 추세라서 일본이 그만큼 뒤처졌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우리식대로' 살아가는 일본,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