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시부모님과의 연락'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결혼생활의 질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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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에는 시부모님을 만나 뵐 일은 거의 없었다. 당연히 연락처조차 몰랐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 시어머니에게 종종 '카톡'(카카오톡 메시지의 줄임말)이 왔다. 별다른 용건이 아니어도 스마트폰에 '시어머니'라는 이름이 뜨면 괜한 긴장감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이웃집 이모도 아니고, 직장 상사도 아니고, 아예 모르는 사람도 아닌 어른. 서로 만난 지 채 두어 달도 되지 않았는데 나에 대한 기대치를 한가득 안고 계신 어른. 아직 잘 모르지만 앞으로 쭉 알고 지내야 하는 어른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결혼하고 처음 한두 해 동안 나는 좀처럼 시부모님과 가족이 되지 못했다. 가족은커녕, 동네 단골 가게 사장님보다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글로 먹고사는 일을 하지만 시어머니에게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의 범위는 너무 적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과는 2년 동안 서로를 탐색하고 사랑하다 결혼했으나 그의 부모님과 나는 여태까지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새로운 부모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내게 시어머니의 친밀한 카톡과 잦은 연락은 내 마음을 더욱 부담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어쨌든 사회화가 돼 있으니 어른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겠으나, 며느리에게 기대되는 덕목은 그보다 더 친밀한 지점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몇 번의 전화 통화 끝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머니, 저는 주기적으로 연락드리거나 오랫동안 통화하는 게 좀 부담스러워요."
가끔 한 번씩 안부도 전하고 소소하게 수다를 떨고 싶을 뿐인 시어머니의 소박한 바람을 거절하는 것은 미안하고 어려웠다. 한편으로는 아들이 하면 쉬운 일을 왜 며느리가 해야 하는지도 답답했다. 결국 그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쨌든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 아닌 어른과의 주기적 연락'이라는 미션을 남은 평생 안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며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시부모님과의 연락'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결혼생활의 질을 바꾸어 놓았다.
단톡방은 왜 감옥이 됐을까
결혼한 친구들은 대부분 '시가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 특히 아이가 있는 경우엔 일일이 아이 사진을 전송하기 번거로워 아예 단톡방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 그 단톡방은 '오지랖의 장'이 되기 일쑤다. 아이 옷을 너무 춥게 입혔다, 분유는 안 좋다더라, 아이가 혼자라 심심해 보이는데 둘째는 언제 낳니 등. 혹은 아침마다 전송되는 '예쁜 풍경'과 '좋은 말씀'에 일일이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라는 친구들도 있었다.
단톡방에 초대된다는 것은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많은 시부모님은 새로 가족이 된 며느리가 반갑고 예뻐서 딸을 대하듯이 자꾸만 말을 걸고 싶어 하시는 것이리라. 자식들과 일상을 나누고 때로는 정보도 나누고 싶은 그 마음을 며느리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궁금한 건 왜 정작 직계 자식들은 그에 열심히 호응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대체 '아들'은 시부모님 카톡에 왜 이리 대답을 안 하는지! 최대한 늦게 확인하다가 결국 꼼지락거리며 무슨 대답이라도 남기는 것은 며느리의 몫이다.
하지만 사실 많은 며느리들은 시부모님의 끊임없는 연락에 대꾸할 말이 별로 없다. 친정 엄마 대하듯 말대꾸를 할 수도 없고, 매번 화려한 리액션을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만큼 친하거나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식을 치르고 나니 그 부담스러운 일을 감당할 만큼 갑자기 남편의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모락모락 차오를 리도 없다.
단톡방에 알림이 뜰 때마다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가족 단톡방의 역할 중 하나가 '집안 행사에 소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부모님이 단톡방을 통해 아들과 며느리에게 직접적으로 행사 참여를 통보하면 며느리 입장에선 직접적으로 거절하기 어렵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며느리가 마땅히 그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는 데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시부모님을 상대로 이모티콘 없는 거절 멘트를 날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걸 알기에, 일부러 아들 대신 며느리에게 가족 행사 참여를 통보하시는 시부모님도 있다.
천천히, 차근차근 하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