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겪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알리려고, 바꿔보려고 글을 쓰는 시민기자들. 글로 세상을 바꾸는 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손그림 금경희, 채색 이다은.
금경희
아... 그때 깨달았다. 많은 시민기자들이 그렇다는 걸. 그래 왔다는 걸. 시민기자들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프로불편러'였다. 정부의 실책이나 무능에 화가 나서 '이건 아니'라고 기사를 쓴다. 자신이 경험한 일이 합리적이지 않을 때도 주장성 글을 쓴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당할 피해를 막기 위해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물론 내 불만을, 내가 입은 피해를 구구절절 나열해서는 기사가 될 수 없다. 독자들이 사건과 그 맥락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그래서 기자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일목요연하게 써야 기사가 될 수 있다. 푸념이나 하소연이 대부분인 글, 상대방을 모함하거나 비방하는 글,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글은 기사가 될 수 없다.
'맞벌이 부부 아이, 어린이집서 '배고픔 참는' 경우 생깁니다' 이 기사도 그렇게 나왔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같이 일하는 후배의 남편이다. 후배 기자는 최근 걱정이 생겼다. 네 살 아이의 하원을 책임지는 조부모님에게 일이 생겨 아이 하원에 문제가 생긴 것. 만약 그 일로 부모님이 아이 하원을 못 하게 되면 후배 부부가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그게 아무리 빨라도 오후 6시 반인 거다.
문제는 기사에 나온 대로 '오전 9시 등원~오후 4시 하원 기준으로 어린이집에서는 오전·오후 간식, 점심을 제공'하지만, '아이가 오후 7시 반까지 종일반에 남을 경우는 오후 3시께 간식을 먹고 하원할 때까지는 어떤 음식도 제공받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후배는 아이가 배고픈 걸 참으면서 부모를 기다려야 할 판이라며 속상해 했다. 이게 다 돈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여기서 반전. 후배는 속상해 하고만 있지 않았다. 이 일이 자신만이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이런 문제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속앓이를 하고 있는 누군가를 떠올렸을 거다.
후배는 남편에게 아이를 등원시키고 난 뒤 어린이집에서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후배 남편은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어떻게 하면 아이가 배고픈 채로 부모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지 따져 물었다. 이 기사는 그 결과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기사를 쓰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알리려고, 바꿔보려고 글을 쓰는 시민기자들. 내가 '프로불편러' 시민기자가 반갑다고 한 이유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니까. 글로 세상을 바꾸는 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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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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