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참여소득의 '조건'은 보통 각종의 복지제도가 따지는 '소득 혹은 자산 조건', 그러니까 '벌이가 얼마 이하' 같은 조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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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참여소득이 요구하는 것은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행위 조건' 같은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복지제도 가운데에도 이런 행위조건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업급여를 받을 때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내건다거나, 취업 성공패키지 사업에서 개인별 취업활동계획을 수립하거나, 직업훈련에 참여할 때 단계별로 참여수당을 지원하는 것 등이 사례입니다. 따지고 보면 공공근로 같은 것도 일종의 행위조건이 붙는 복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들이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이런 제도에 붙는 '행위 조건'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제도에 전제되는 '상황 조건'이나 '소득 조건' 같은 것들 때문입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시행되는 제도라는 점이 우선적인 문제라는 것이죠.
반면 녹색참여소득에 붙은 행위조건은 기존 복지제도의 각종 조건과도 다를 뿐만 아니라, 여타의 행위조건과도 다릅니다.
첫째, 녹색참여소득은 가난을 조건이라며 따지지 않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그저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됩니다.
둘째, 지위나 상황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기여한 기간을 따지지도 않습니다. 누구든 그저 생태적 이동을 하면 됩니다.
셋째, 녹색참여소득이 요구하는 행위는 일상생활 속에서 인간이 늘 수행하는 행위입니다. '구직활동'이나 '취업활동 계획 수립' '직업 훈련'은 인간이 언제나 항상적으로 하는 행위는 아닙니다. 그러니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과제'를 이행해야 합니다.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행위조건입니다.
그러나 '걷기를 포함한 이동'은 인간 삶의 기본 요건이며, 인간과 분리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하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 하지 않으면 이상한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기존 복지에서 요구하는 '비일상적 행위 조건'과 다릅니다.
정반대 낙인효과
녹색참여소득을 받기 위해 '가난을 입증'할 필요가 없으니, 낙인찍힐 일도 없습니다. 낙인효과와 관련해서는 녹색참여소득이 오히려 상황을 정반대로 역전시킬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요, 녹색참여소득의 행위조건은 오히려 녹색참여소득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에게 낙인을 찍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기후변화에 대해 관심 없나봐." "아직도 저렇게 큰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네."
기존 제도는 복지의 수혜자들을 낙인찍었다면, 녹색참여소득은 복지를 거부하고 기존의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사람을 낙인찍을 것입니다. 주로 부자들이거나 최소한 기존 복지제도 아래에서는 복지의 수혜자가 될 일이 그러니까 낙인찍힐 일이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녹색참여소득을 위해 생태적 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소득 증대 이외에도 본인의 건강, 도시의 구조 측면에서 개혁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적극적 변화 행동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반면 녹색참여소득을 안 받고 계속해서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은 미세먼지 유발자이고, 도시 숲 파괴자이며, 기후변화 촉진자로 인식될 것입니다. 이런 낙인찍기는 오히려 사회를 바꿉니다.
사각지대
녹색참여소득과 관련해서 고민해야 할 것은 새로운 유형의 사각지대에 대한 것일 수는 있습니다. 측정이 가능한가, 걷기 힘든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입니다.
걷기, 자전거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를 측정하는 수단은 이미 많이 나와 있고, 이에 따라 은행, 보험회사, 지방자치 단체에서 이미 유사한 정책들이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녹색참여소득이 도입될 경우, 보다 공적으로 승인된 애플리케이션 등이 준비돼야 하겠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려움은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다리를 다쳤어요. 5주 동안 걷기 힘들 것 같은데요."
이런 상황을 적절히 반영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각지대를 없애는 노력은 마땅히 있어야 합니다.
다만, 이런 사소한 사각지대 때문에 녹색참여소득은 기본소득에 미달한다고 말할 일은 아닙니다.
녹색참여소득은 기본소득의 단점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앞선 연재에서 꾸준히 말씀드렸듯이 기본소득에는 없는 여러 가지 분명한 효과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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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전 대변인,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2 진행자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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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 걱정 안 해도 되는 복지제도를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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