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출범식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된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15.4.8
연합뉴스
사실, 이영훈이 중점적으로 비판하는 신용하의 논문을 읽어보면 느낌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0% 이상 수탈'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나도 이상할 게 없고 하나도 과할 게 없다는 판단도 들지 모른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1992년 발행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6집에 신용하 논문 '일본제국주의 옹호론과 그 비판'이 수록돼 있다. 논문에서 신용하는 일제의 토지수탈 규모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아래 글 속의 1정보는 9917㎡다. 아래의 괄호 부분은 빼고 읽는 게 낫다. 문법에 맞지 않아 독해에 지장을 주는 부분이라 따로 표시했다.
"일제는 이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① 농경지 등(대지 포함) 27만 2076정보 ② 임야 955만 7856정보 ③ 기타 국유지 137만 7211정보 ④ 합계 1120만 6873정보를 일제 조선총독부 소유지화 하여 약탈하였다. 이것은 당시 한국 국토 총면적의 50.4%에 달하는 천문학적 숫자의 방대한 규모의 토지 약탈이었다. (일제가 약탈한 이 토지에는) 종래의 관유지·공유지뿐만 아니라 한국 농민들의 사유 농지 9만 6700정보와 사유 임야 337만 5662정보가 일제의 무력에 의해 무상으로 약탈당해서 조선총독부 소유지로 편입되었다."
이영훈은 "역사학자들이 아무렇게나 지어낸 수치"라며 '40% 이상 수탈'을 가당치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신용하가 아무렇게나 지어내는 학자가 아니라는 점은 역사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역사학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역사학회가 1983년 발행한 <역사학보> 제99권·제100권에 실린 조동걸 당시 국민대 교수의 서평 '신용하 저 <조선토지조사사업 연구>'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조동걸 교수는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1918년 <조선토지조사사업보고서> 및 <추록>, 1920년 <조선토지지세제도 조사보고서>, 1938년 <조선임야조사사업보고서>를 거론한 뒤 신용하의 저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식민적 보고서나 제국주의적 논리의 저술을 반론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의 진실을 규명한 것이 신용하 교수의 <조선토지조사사업 연구>이다. 신 교수는 일본 정부 또는 총독부의 관계 자료를 찾아 다시 분석하고, 또 그동안 국내외 학자의 논저를 검토하여 1966년부터 주변 문제까지 연구한 9편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었는데, 그중에서 토지조사에 관한 직접적인 것만 3편을 모아 1979년 위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위와 같이 말한 뒤 조동걸은 "신용하의 학문적 정력과 성실성에 경의를 표한다"는 말로 서평을 끝맺었다. 이영훈의 주장처럼 신용하가 상상의 결과로 수탈 규모를 조작했다면, 권위 있는 학술지인 <역사학보>에 조동걸의 칭송이 쉽게 실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에 실린 위 논문에서 신용하는 총독부가 수탈한 토지를 농경지 등 27만 2076정보, 임야 955만 7856정보, 기타 국유지 137만 7211정보, 합계 1120만 6873정보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종래의 관유지·공유지뿐만 아니라 한국 농민들의 사유 농지 9만 6700정보와 사유 임야 337만 5662정보가 일제의 무력에 의해 조선총독부 소유지로 편입되었다"고 정리했다. 그래서 나온 게 '한국 토지 50.4% 수탈'이라는 결론이다.
주의 깊게 읽어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이영훈은 아무리 일본이라도 어떻게 그런 규모의 약탈을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한다. 하지만, 신용하의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신용하는 토지조사사업 뒤에 총독부가 보유하게 된 토지가 국토의 50.4%인 1120만 6873정보(A)라고 했다. 그는 총독부가 그 토지 전부를 강탈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중에서 사유 농지 9만 6700정보 및 사유 임야 337만 5662정보, 도합 347만 2362정보(B)가 무력적으로 약탈됐다고 말했다. A의 30.1%인 B가 무력적 방법으로 약탈됐다고 말한 것이다.
신용하는 총독부 보유지가 전체 국토의 50.4%이고 이 50.4% 중에서 30.1%가 강탈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전체 국토의 15% 정도가 강탈됐다고 말한 것이다.
A에서 30.1%를 제외한 나머지 토지는 무력을 동원해 강탈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한제국 국유지였기 때문이다. 이 국유지는 총독부 국유지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신용하는 그렇게 넘어간 국유지까지 포함해서 총 수탈 규모를 50.4%로 계산했던 것이다. 농민들로부터 빼앗은 것이든 대한제국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든 일제가 수탈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신용하의 인식이었던 것이다.
지난 7월 2일 서형수 의원(민주당, 경남 양산을)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전체 국토 9만 5483㎡ 중에서 30%인 2만 8566㎡가 국유지에 속해 있다. 참고로, 싱가포르의 국공유지 비율은 81%, 대만은 69%, 미국은 50%, 스웨덴은 40%이다
대한민국 국토의 30%가 국유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총독부가 전 국토의 50.4%를 차지했다는 신용하의 연구결과는 결코 놀랄 만한 게 아니다. 대한제국이 갖고 있던 토지에 더해 농민들로부터 새로 약탈한 토지를 더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40% 이상 수탈'이라는 연구결과가 사실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영훈 교수는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느냐며 수탈설을 황당무계한 이론으로 치부한다. 이는 그가 수탈설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반적인 국가재정이나 국유지 실태 등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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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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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교수가 또... '토지 40% 수탈설' 부정하며 헛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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