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더 와이프>에서의 조안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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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안이 하녀가 되기로 했다. 조안은 남편과 아이들을 살뜰이 챙기는 아내이자 엄마의 삶을 살기로 한다. <더 와이프>를 원작으로 한 할리우드 영화 <더 와이프>에선 조안이 조를 뒤치닥거리하는 모습이 더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조의 수염에 빵부스러기가 묻었는지, 코털이 삐져나왔는지까지 조안의 관심 안에 있다. 장소에 맞게 안경을 바꿔주고, 시간에 맞춰 약을 챙겨주고, 뒤에 서 있다가 코트를 받아주고, 조가 사람들 앞에서 쿠키를 먹으며 말을 할 땐 입술에 뭐가 묻었는지까지 먼 곳에서 알려준다.
아내의 역할에 충실한 동시에 그녀는 그의 이름으로 글도 쓴다. 첫 소설을 함께 쓴 이후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공모를 이어간다. 조가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조안이 그 아이디어를 소설화하기. 그녀의 탁월할 재능은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다. 그는 크고 작은 상을 섭렵해 나가며 수많은 독자를 거느린 유명한 작가가 된다. 그의 태도, 말투, 행동은 이제 영락없는 소설가다. 그는 유명한 소설가답게 끊임없이 바람을 피워 조안을 속을 뒤집어 놓으면서도 당당하다. 그는 명예라는 옷을 입고 지적인 소설가라는 신발을 신고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조안은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이젠 이 모든 걸 끝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다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 조안은 늘 불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남자들이 세상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아내들과 쇼핑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봤다.
퓰리처상을 포함해 유수의 상을 수상한 소설가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헬싱키상까지 수상하게 된 소설가가(소설에 나오는 헬싱키상은 존재하지 않는 상이다. 영화에선 헬싱키상이 아닌 노벨문학상으로 나온다), 끝내 '아내처럼만' 행동해야 했을 때 그녀가 느꼈을 박탈감은 얼마나 컸을까.
세상에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녀가 이번 소설에선 어떤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는지를. 그녀가 궁극적으로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을까. 나라는 존재가 여기 있음을.
그녀는 여자라서 자신의 가능성을 축소시켰고, 여자라서 재능을 지웠으며, 여자라서 세상에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아내라서 남편을 떠받들며 살았고, 바람을 피워도 눈 감아줬으며, 허세를 부려도 인정해줬다. 그가 기분이라도 상할까 봐 그녀가 글을 썼음에도 마치 그가 쓴 것마냥 그를 대우해줬다. 그녀는 이런 삶이 수모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것이 여자의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느낀다. 여자라고 해서 이렇게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더러 시상식에서 자신을 언급하지 말라던 이유, 내조하느라 고생한 아내가 되고 싶지 않다던 이유는 이제 진실을 직시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녀는 내조하느라 고생한 아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소설을 쓰느라 고생한 소설가였다.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지닌 탁월한 재능을 오롯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라고 하면 단연 이 대사일 것이다. 조안이 조에게 외치는 말.
"난 뛰어난 작가야, 조, 엄청나게 대단하다고. 그거 알아? 난 헬싱키상도 탔어!"
조안이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작가로 인정한 순간이었다.
더 와이프
메그 월리처 (지은이), 심혜경 (옮긴이),
뮤진트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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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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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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