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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린 여자의 속내

[여자의 소설] 제시 버튼 지음 '뮤즈'

등록 2019.10.19 11:48수정 2019.10.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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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가 통찰력 있게 그려낸 여성 서사를 통해 여성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여성에게 의미 있는,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여성 서사가 우리 삶에 스며들길 기대합니다. - 기자말
 
 게릴라걸즈 2012년 광고.
게릴라걸즈 2012년 광고. 게릴라걸즈
 
1989년 뉴욕 시내버스 외벽에 눈길을 끄는 광고가 붙었다.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앵그르의 작품인 <오달리스크>를 정면에 내세운 광고. <오달리스크>속 여성의 얼굴엔 고릴라 가면이 씌워져 있었고, 그 오른쪽엔 굵직한 글씨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자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 하나?' 이런 물음이 설득력을 지니려면 통계가 필요한 법. 물음 아래에는 통계를 바탕으로 한 설명도 적혀 있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중 여성의 작품은 5퍼센트 미만인 반면, 누드의 85퍼센트는 여성의 누드다.' 이 광고는 익명의 여성 예술가 그룹인 '게릴라걸스' 작품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접한 이 광고의 화끈함에 반한 나는 게릴라걸스의 공식 사이트를 찾아가 그녀들의 최근 활동을 접한 뒤, 문득 궁금해져 오달리스크가 무언지 검색해봤다. 오달리스크란 '터키 궁전 밀실에서 왕의 관능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기하는 궁녀'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다.


같은 페이지엔 앵그르가 그렸다는 <오달리스크> 그림도 있었는데, 시내버스 외벽 광고에서 이미 봤듯, 그림 속 오달리스크는 벌거벗고 있었다. 내겐 별 감흥을 일으키지 않는 그림이었다. 허리가 저렇게 길 수 있나? 옆으로 누워 있는데 가슴 모양이 어떻게 저렇지? 하고 상식 수준 의문을 품었을 뿐. 

사실 여성 누드화를 보고 여자인 내가 감동하기는 쉽지 않다. 애초에 여성 누드화는 내가 보라고 그려진 그림이 아니니까. 예전엔 이런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다. 왜 남성 화가들은 여성 누드화를 그렇게나 열심히 많이 그렸을까.

혹시 가수 지망생이 거미나 김범수 노래를 잘 따라 부르면 가창 실력을 인정받듯, 화가들도 누드화를 잘 그리면 그림 실력을 인정받는, 나는 모르는 그 세계만의 레벨 인증 테스트 같은 것이 있는 걸까. 이 궁금증은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으며 시원하게 풀 수 있었다.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화가가 벌거벗은 여성을 그린 이유는 벌거벗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렇단다. 

남성 화가들이 여성의 나체를 바라보고 그리는 것을 즐겼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벌거벗은 채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벌거벗지 않은 여성은? 옷을 단단히 입은 채 한 손에는 팔레트를, 한 손에는 붓을 든 여성은? 게릴라걸스가 언급한 통계에서 알 수 있듯 극소수의 여성 화가만이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걸 수 있었다.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한 것뿐만 아니다. 미술사에 언급된 여성 화가 또한 극소수다.

미술사가 브리짓 퀸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라>에서 H.W. 젠슨의 <서양 미술사>를 처음 읽던 때를 떠올린다. 500쪽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여성 화가의 이름을 발견했다는 것, 800쪽이 넘는 책에 여성 화가는 단 16명뿐이었던 것(브리짓 퀸이 이 사실을 교수에게 알리자 교수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새 판본을 갖고 있군요! 우리 판본에는 옷을 입은 여성이라곤 단 한 명도 없었는데").


그렇기에 나는 게릴라걸스가 언급한 통계에서 '5퍼센트 미만'에 해당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삶이 마음 아릿하게 상상된다. 남성 중심 문화의 견고한 벽을 뚫고 나 보란 듯이 이름과 작품을 알린 여성 화가들.

여성의 손엔 쉽게 붓이 쥐어지지 않던 시절에 끝까지 붓을 놓지 않고 버티고 견디던 여성 화가들. 남성 화가들에 비해 더 좁고 더 지난한 길을 걸어왔을 게 분명한 그녀들의 삶은 그 자체로 세상의 지독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그림 그리는 것이 제일 좋았던 여성의 이야기
 
 책표지
책표지비채

제시 버튼의 소설 <뮤즈>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한 문장으로 말하고 싶다. 여성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미술관에 건 이야기. 그리고 몇 문장 더 덧붙여도 된다면 이렇게 이어갈 것이다. 그림 그리는 것이 제일 좋았던 여자의 이야기. 그림으로만 평가받기 위해 자신의 이름도, 성(性)도 과감히 지운 여자의 이야기.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예술가로 살길 원한 여자의 이야기. 

1930년대에 미술상인 아버지를 따라 에스파냐 남부 시골로 온 영국 소녀 올리브. 올리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이젤 앞에 앉는 순간이지만, 아무도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지 모른다. 딸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아버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올리브의 아버지는 여자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했다. 하지만 여자가 예술가가 되는 문제에 관해서라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의 세계에서 "화가는 당연히 남자여야 한다." 바로 이것이 올리브가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꽁꽁 숨긴 이유였다. 그녀는 단지 시간이 나면 그림을 그리는 정도에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여성이 예술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올리브는 다락방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몰래 그림을 그린다. 그 그림을 친구이자 가정부 테레사가 본다. 딱 봐도 엄청난 그림. 테레사는 이토록 뛰어난 그림이 다락방 구석에 숨겨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못마땅하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올리브 몰래 올리브의 부모에게 공개한다. 미술상인 아버지는 한눈에 그림의 가치를 알아본다. 이로써 은밀한 비밀 작전이 시작된다. 테레사의 오빠 이삭의 작품으로 둔갑한 올리브의 그림. 올리브의 그림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여성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이름을 남성적으로 바꾸거나 또는 남편의 이름으로 작품을 남긴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녀들의 이러한 행위 뒷면에선 체념의 정서가 읽힌다. 하지만 올리브는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기자는 쪽이었다.

그녀는 상황에 체념하지 않고 상황을 이용하고자 한다. 이름 따윈 알려지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알려지지 않는 게 낫다. 괜히 이름만 날리면 그림 그리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건 자유니까. 무엇보다 올리브는 자신의 그림이 여성의 작품이라고 알려지면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리라는 것쯤은 잘 알았다.   

먼저, 아버지. 만약 그 그림이 올리브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버지는 지금처럼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산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 역시 마찬가지일 거였다. 그녀 자신 역시 여자이지만, 아마 그녀 또한 여성이 그린 그림에 지금처럼 큰 가치를 매겨주지 않았을 것이다.

테레사와 이삭은 올리브더러 이제 그만 올리브의 이름으로 작품을 판매하라고 말하지만, 그럴 때마다 올리브는 답답하다. 내 이름으로 작품을 판매하라고? 그럼, 내 그림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삭에게 올리브는 짜증 섞어 말한다.
 
"오, 젠장. 목을 졸라버리고 싶군요. 당신은 정말 순진해요. 그렇게는 절대 성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페기 구겐하임이 알랑거리며 편지를 쓰는 일도, 그림 한 점으로 새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게다가 그 상황을 바꾸는 데 내 기력을 다 써버려서, 그림을 그릴 기력은 남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게 바로 가장 중요한 거라고요. 남자가... 뭐랄까,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쓰는 기력을, 당신은 내게 상황을 바꾸는 데 쓰라고 하잖아요. 당신은 몰라요. 당신은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살았으니까요, 이삭. 그런데도 당신이 한 사람으로서 하는 모든 일은 보편적이죠. 그러니 영광을 누려요. 돈을 가져요. "

올리브가 페기 구겐하임에게 판 모든 그림은 이삭의 이름으로 미술관에 걸린다. 그리고 30년 후, 한 남자가 이삭의 그림으로 보이는 그림을 들고 스켈턴 미술관에 찾아온다. 관장은 그 그림이 에스파냐 출신 화가 이삭의 그림이라는 것, 이삭이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며 불꽃처럼 산화한 비극의 화가였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본다. 이삭의 그림은 수많은 관람객을 불러들이며 스켈턴 미술관에 걸린다. 그 그림을 소설가를 꿈꾸는 그녀, 오델 역시 바라보고 있다.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마음과는 달리 글 앞에서 자꾸 주저하게 되던 오델. 오델은 서서히 그 그림 뒤에 숨겨진 비밀에 다가간다.

뮤즈가 아닌 예술가가 되길 원한 여자 

저자 제시 버튼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을 뮤즈로 이용하고, 많은 경우에 그 뮤즈를 파괴하는 남성 예술가에 대해서 다루어보고 싶었습니다. 남성들이 붓과 물감, 돈과 지위를 손에 넣는 동안, 여성의 몸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종종 누드로 대상화되었고, 이것이 미술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남성은 원하는 것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들의 목소리로 여성의 이야기를 전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무엇보다, 연애와 욕망을 그들 자신을 창조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은 두 여성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시 버튼의 의지대로 올리브는 결코 누군가의 뮤즈가 될 마음이 없었다. 올리브는 이젤 앞에 서는 것이 좋지, 이젤 뒤에서 자세를 잡는 것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올리브보다 실력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형편없는 화가는 아니었던 이삭이 올리브를 그릴 때, 그녀는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관찰 당하는 것이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알게 된다. 올리브는 세상을 직접 관찰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관찰한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리길 바랐다.

올리브는 뮤즈가 되는 대신 뮤즈를 찾아낸다. 바로, 이삭이다. 이삭은 그녀가 지금껏 본 모든 남자 중에 가장 아름다운 남자다. 매력적인 얼굴, 탄력 있는 몸. 그녀는 첫눈에 그에게 빠졌다. 그만 생각하면 절로 영감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주 그에게 달려갔고, 그를 만나고 돌아온 날엔 다락방에서 새벽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완성한 그림은 그녀가 보기에도 정말이지 대단했다.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그녀의 비전은 나날이 성숙해졌고, 기교 또한 물이 올랐으며, 무엇보다 그녀의 그림은 그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창의적이었다. 

제시 버튼은 올리브를 "가차 없이 이기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그녀는 분명 이기적이고, 확실히 목표 지향적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이삭이 그렇게나 싫다는데도 그의 이름을 계속 사용한다. 그녀는 마치 여성에게 불리한 상황을 여성인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리기 위해선, 이 정도쯤은 이기적으로 굴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녀는 상황의 피해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 피해자가 될 바엔 차라리 조금 못되게 구는 게 낫다.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결말을 꼭 맺고 싶으니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은 대개 그렇듯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다소 무심하기도 하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이삭의 감정에까지. 이삭은 올리브가 원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그림이고, 그녀가 사랑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페기 구겐하임 저택의 벽이라고 느낀다.

그녀가 그의 이름을 이용할수록 그는 점점 자신이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삭이 올리브에게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 역사 속 뮤즈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예술가는 뮤즈가 없어도 예술을 할 수 있다. 잠시 뮤즈를 이용하는 것뿐. 그리고 뮤즈 역시 그것을 안다. 이삭은 말한다. "당신은 항상 당신에게 맞는 나를 찾죠. 가상의 나를 만들어내는 걸 멈추지 않았어요." 

올리브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서 올리브는 사랑에 빠진 소녀였고, 대가의 그림을 그려낸 예술가였다. 그녀는 이기적으로 굴었기에 그녀의 그림을 그림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무심했기에 영감의 원천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녀는 세상을 비웃듯 그녀의 그림을 미술관에 걸었다. 여자는 예술가가 되지 못한다고 단언하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사람들은 그 그림이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을 살아간 여성이 그린 그림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감탄하고, 감동하고, 때론 그 생소한 힘에 혼란스러워했다. 

올리브의 그림은 삼십 년이 지난 후에도 이삭의 이름으로 미술관에 걸렸다. 남성 비평가들은 그 그림에서 전해지는 힘과 이삭의 삶을 그럴듯하게 조합해 매끄러운 칼럼을 여기저기 실었고, 그 칼럼을 읽은 사람들은 미술관으로 몰려와 진지하고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삭의(올리브의) 그림을 감상했다.

살아 있는 사람 중 오델만이 그 그림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됐지만 오델은 비밀을 세상에 알릴 생각이 없다. 오델은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그림이 여성의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이 세상이 그 그림에서 어떤 식으로, 어떤 핑계로 고개를 돌리게 될지. 

올리브의 그림은 1960년대를 살아가는 오델의 눈 앞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다. 나는 예술가로서 내 눈으로 본 세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화폭에 담았는데,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글쓰기,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글쓰기에 지쳐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고 있던 오델이었다.

오델은 자신의 글에 자신감이 부족했다. 하지만 오델은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델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는 것. 올리브처럼 오델에게도,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이것이었다. 내가 관찰한 세상을 내 손으로 그려내 보이는 것. 아마 앞으로 오델 또한 올리브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관찰 당하지 않고 관찰하는 삶. 뮤즈가 아닌 예술가의 삶.
#제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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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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