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2018년 11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희훈
"남자라면 정시지!"
일찌감치 수시를 포기한 아이들이 친구들 앞에서 떠벌리고 다니는, 이른바 '정신 승리법'이다. 1, 2학년 때 내신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3학년 1학기 즈음이면 고3 교실마다 흔히 듣는 이야기다. 요즘 들어서는 아예 2학년 1학기만 돼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데, 정시는 그들을 위한 마지막 동아줄인 셈이다. 그들은 오늘도 '수능 대박'만을 되뇌며 등교를 한다.
윤서는 '정시파'의 학교생활은 등교와 출석이 사실상 전부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 어떤 교육활동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어차피 정시는 수능을 100% 반영하는 전형이니, 내신 성적과 학교생활기록부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탓이다. 심지어 정규수업 시간에 따로 인터넷 강의를 볼 수 있게 해달라며 황당한 요구를 늘어놓는 아이들도 있다.
모둠학습이나 프로젝트 수업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일쑤다. '정시파' 아이들로 인해 학급별로 모둠 편성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시를 준비하는 아이들끼리 모둠을 꾸리자는 주장부터, 그럴 거면 아예 학년 초 반을 편성할 때부터 수시반과 정시반을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자는 이야기까지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그들에겐 수행평가는 말할 것도 없고, 동아리활동도, 봉사활동도 관심 밖이다. 그 시간에 수능 대비를 위해 기출 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보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시로 진학하는 비율이 낮다고 해도, 교과전형이나 학종에 견줘 이것저것 눈치 볼 일도, 신경 쓸 일도 없으니 차라리 공부하기 편하다고 말한다.
수시 교과전형: "단 한 순간도 소홀할 수 없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진우도 교과전형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수능은 '한 방'인데 반해 교과전형은 '여러 방'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모든 교과가 상대평가인 탓에 내신 등급에 대한 스트레스를 3년 내내 안고 가야 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험 전 날엔 잠도 제대로 못 잔다며 하소연했다.
수능 응시 과목뿐만 아니라 3년 동안 교육과정 내 모든 교과를 단 한 순간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내심 '정시파'가 부러울 때가 많단다. 대개 학기 말 한꺼번에 부과되는 교과별 수행평가를 해내느라 허덕일 때면, 당장 정시로 갈아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했다. 참고로, 교과전형은 오로지 3년 동안의 교과 내신 성적만을 기준으로 하는 입시 전형이다.
무엇보다도 교과전형의 가장 큰 폐해는 '짝꿍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점이다. 상대평가에서는 자신의 내신 등급을 올리려면, 어떻든 친구의 등급이 내려가야 하는 법이다. 동점자가 많아도 안 된다. 동점자가 여럿이면 규정상 아래 등급으로 매겨진다. 예컨대, 1등급은 4% 이내인데, 동점자 수가 4%를 넘으면 모두 2등급으로 처리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작 자신의 성적보다 친구의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서는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건, 결국 3년 동안 교실이 1, 2점에 희비가 엇갈리는 살벌한 전쟁터라는 걸 의미한다. 교과전형에서는 100점보다는 1등이 중요하고, 내신 1등급만 될 수 있다면 점수가 몇 점이든 상관이 없다. 진우는 '수능에선 적이 멀리 떨어져 있는데, 교과전형에선 적이 바로 가까이에 있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학종: "성적은 기본... 분업화된 입시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