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김구(1946, 창덕궁).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상당하지만, 그는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우리역사넷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영훈이 소개한 이승만의 1904년 저서 <독립정신>은 외국과의 통상, 서양학문 공부, 외교 중시, 국가주권 중시, 도덕성 제고, 자유주의 함양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기독교를 중심으로 이 과제들을 해결할 것을 촉구하는 책이다. 이른바 '기독교 입국론'을 통해 국가 개조를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국 탄핵'을 주장하는 광화문 집회에서 전광훈 목사가 이승만을 칭송할 때마다 기독교 입국론을 거론하는 것은 바로 <독립정신>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이승만은 아래와 같이 기독교 입국론을 개진했다. 인용문 속의 '이 교'는 기독교다.
"지금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일어나려 하며 썩은 데서 싹이 나고자 할진대, 이 교(敎)로써 근본을 삼지 않고는 세계와 상통하여도 참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오. (중략) 우리는 마땅히 이 교로써 만사의 근원을 삼아 각각 나의 몸을 잊어버리고 남을 위하여 일하는 자 되어 나라를 일심으로 받들어 영·미 각국과 동등하게 되게 하며, 이후 천국에 가서 다 같이 만납세다."
<독립정신>은 한국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는 데는 도움이 돼도, 위기에 처한 당시의 대한제국을 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기독교 교인들의 정치 장악력이 높지 않은 당시 상황에서, 기독교를 중심으로 나라를 재건하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영훈은 이승만과 이 책을 민족을 살릴 만한 물건으로 고평가한다. 특히 이승만의 자유주의론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반일 종족주의>에서 그는 '개인 소유물을 국가가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독립정신의 한 대목을 높이 칭송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와 통하는 이승만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그런 뒤 그는 "<독립정신>에서 저는 서양에서 근대 문명을 개척한 마르틴 루터,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애덤 스미스, 이마누엘 칸트, 벤저민 프랭클린의 얼굴을 문득문득 발견하였습니다"라고 술회했다. 이런 위대한 사상가들의 면모를 이승만한테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독립정신>을 읽지 않은 사람들의 지적 능력을 의문시했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가나 역사학자 가운데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10명 중에 1명도 안 될 겁니다"라며 "이승만의 자유론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지력 밖이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승만 박사'니 '이 박사'니 했지만, 사실 이승만은 학자나 사상가가 아니었다. 자유당 정권이 이승만 우상화 작업을 벌인 일이 벌써 70년이 다 되는데도, 아직까지 '이승만 사상'이라 할 만한 게 정립되지 못했다. 이는 그가 학자나 사상가보다는 정치가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말한 자유론은 애덤 스미스 등에 의해 이미 충분히 정립된 사상이다. 게다가 <독립정신>을 집필할 당시 그는 29세였다. 이 나이에도 위대한 사상을 이룰 수는 있지만, 그가 그럴 만한 인물이었다면 일찌감치 그 길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영훈이 이승만의 사상을 높이 띄우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박근혜 석방을 촉구하는 친박 집회에서 이승만·박정희·박근혜 3위에 대한 경례 혹은 묵념이 거행되는 것만큼이나 어색한 일이다.
이승만을 통해 일제 지배 합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