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김종성
<나의 투쟁> '전시 선전' 편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대중의 수용(인식) 능력은 매우 한정돼 있고, 이해력은 적으나 그 대신 망각력은 크다"고 한 뒤,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냉정한 숙고보다는 차라리 감정적인 느낌으로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결정한다"고 썼다.
이런 관점으로 대중을 상대했던 히틀러처럼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도 극우 성향의 친일청산 반대론자들을 겨냥해 이 책을 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권 붕괴 이후 불만으로 가득 찬 극우세력의 불만과 분노에 부응하기 위한 책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히틀러는 경제 위기로 인한 독일인들의 불만을 유대인에 대한 광기의 표출로 전환시키려 했다. 그런 식으로 <반일 종족주의> 역시 극우세력의 불만을 특정 대상으로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 특정 대상은 바로 위안부 피해자들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그중 제3부가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다. 본문 383쪽 분량인 이 책에서 122쪽 분량이 이에 관한 내용이다. 위안부 문제가 이 책에서 3분의 1의 비중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제3부를 집필한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는 제3부 제25장 '한일관계 파탄 나도록' 편에서 "우리는 가장 극단적인 반일 종족주의를 이 위안부 문제의 전개에서 봅니다"라고 말했다. 반일 종족주의의 문제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게 바로 위안부 문제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한일관계의 최대 장애물이 바로 이 위안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로 같은 생각을 가진 독자를 겨냥한 책이다 보니 주익종이 담당한 제25장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감을 품도록 유도하는 표현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제25장에서 주익종은 일본 정부가 일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한 적이 있다는 점과 한국 정부가 동일한 명목의 돈을 지급한 적이 있다는 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서민들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극우세력은 세월호 사건 때 그랬던 것처럼 '돈을 준다는데', '돈까지 받았으면서'라는 말로써 사회적 약자들의 사과 및 진상규명 요구를 깔아뭉개려 한다.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이 전달됐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주익종의 의도는 극우세력이 이 문제에 대해 그런 태도를 갖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당국자가 할 만한 말을 대신해
또 그는 "위안부는 성노예라기보다는 성노동자가 맞습니다"라고 말한다. "일본군 위안부제를 성노예제라 한다면, 식민지 조선의 공창제도 성노예제라 해야 할 것입니다"라면서 "아울러 해방 후의 한국군 위안부와 미국군 위안부, 민간 위안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군 위안부만 뽑아내서 성노예제라 비판할 근거가 없습니다"라고 주장한다. 극우세력을 겨냥한 글이기에 이런 막말을 마구 내뱉을 수 있는 것이다.
극우세력을 겨냥한 그같은 표현들은 제25장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일례로, 일본 공권력에 의해 위안부가 강제동원된 것을 두고 그는 '일본 관헌이 여행의 편의를 제공한 것일 뿐'이라고 표현한다. 강제로 데리고 간 게 아니라 여행의 편의를 제공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이렇다.
"일본군이 위안소 업자를 선정했으며 그로부터 위임을 받은 모집업자가 조선 부녀자들을 데리고 일본군 주둔지로 여행하는 데 일본 관헌이 편의를 제공한 것이지, 일본 공권력이 강제로 부녀자를 위안부로 끌어간 것은 아닙니다."
또 그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공식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고 일본 역사 교과서에 관련 사실을 실을 것을 요구하는 것과 관련해 "일본이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요구입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일본 당국자가 할 만한 말을 그가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이 세월과 함께 조금씩 바뀌는 점도 문제 삼는다. 충격적 피해를 경험한 사람의 기억은 어느 정도는 왜곡되고 과장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치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피해자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극우세력의 비판을 유도할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그런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주익종이 쓴 제25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조장할 만한 글들로 채워져 있다. 극우세력의 공감 능력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