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한국인의 밥상> 화면 갈무리
KBS
이런저런 기분 좋은 상상을 하다 보니 녹화 날이 성큼 다가왔다. 전날까지도 푸른 바다를 머금은 낙관주의자였던 나는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우울을 다 짊어진 회의론자로 변했다. 긴장한 탓인지 각양각색의 나쁜 상상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생각들은 기발해지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오전에만 4번의 '장트러블'을 겪고 난 후에야 녹화 현장에 도착했다.
을지로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냉동 삼겹살집은 월요일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가득했다. 나를 비롯해 팟캐스트를 같이 하는 지인들은 2층의 예약된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에서 을지로 일대를 촬영 중인 방송국 팀을 기다리기로 했다.
첫 방송 출연을 앞둔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방송에 대한 조언을 했고, 맥락 없는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각자를 격려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그분이 식당 2층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국민 아버지' 최불암 선생님이었다. 그분의 뒤에서 카메라가 이 모든 순간을 촬영하고 있었다.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는 소리, 소주를 추가 주문하는 목소리, 지인에게 식당 위치를 설명해 주는 사람들의 고성이 식당에 넘쳐흘렀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김재완씨 어디 계신가?"
나는 '봉숭아학당'의 맹구보다 더 힘차게 손을 들며 그를 불렀다. 그리고 정말 맹구처럼 그를 애타게 불렀다.
"선… 선생님, 여깁니다."
방송에 괜히 나가기로 한 것 아닌가 싶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피디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진 후, 촬영이 시작됐다. 선생님께서 내 글과 아버지의 추억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하셨고, 나는 능수능란하게 대답했다, 라고 생각했다.
"형! 평소 형답지 않아요. 긴장한 티가 너무나."
촬영이 잠시 중단됐을 때 옆자리에 지인이 귀띔했다. 잠시 변명을 하고 싶다. 눈앞에 국민 아버지 최불암씨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방송국 로고가 선명한 카메라가 날 향하고 있었다. 여기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던지는 삼겹살집의 손님들까지.
아무튼 그렇게 시간의 개념이 사라진 것 같은 60분이 지나갔다.
"바쁘신데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희가 사는 겁니다. 마음껏 드세요. 그리고 방송은 12월 26일입니다."
아버지가 주신 특별한 연말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