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새로운 노동정책에 반발해 시위에 나선 동독주민
강구섭
문화사회학자 폴락 또한 동독 주민이 직면한 새로운 체제에 대한 이해의 결여, 차별에 대한 불안감을 동독 주민 스스로 자신의 삶을 평가 절하하게 된 원인으로 파악하였다. 그렇지만 동독 주민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역시 통일 후 동독에 존재하는 '경제적 불평등 인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즉, 통일의 결과 혹은 정책의 실패를 넘어, 서독체제의 동독 이식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지면서 생긴 구조적 문제의 파생 결과로, 자신들이 독일의 열악한 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서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동독 지역의 실업률과 낮은 소득 수준은 이들로 하여금 '나는 열악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라고 느끼게 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독 경제를 망가뜨린 서독이 이를 재건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동독 주민들 가운데 팽배했다. 평가절하의 측면을 넘어서는 이러한 경제적 차별 감정이 2등 국민 정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독 주민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를 경제 상황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시도는 그들이 경제에 대해 품었던 기대와 직접 관련된 것이다. 1990년 통일 후 붕괴된 동독 경제가 곧 일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실제로 동독 주민들에게 있었다. 이에 1990년대 초반까지는 경제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크게 표면화되지 않았고, 2등 국민 인식도 다소 줄어들었다. 그러나 상황이 희망했던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으면서 새 체제에 대한 기대가 깨졌고, 결과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2등 국민 정서가 다시 강하게 나타났다.
2등 국민 정서와 경제적 상황의 연관성은 2등 국민 정서가 모든 동독 주민들 사이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았고, 그룹별로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을 통해서도 설명된다. 즉, 통일 후 재건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일부 지역의 주민이나 개인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고학력 계층, 64세 이상의 연금생활자 사이에서는 2등 국민 정서가 동독 주민의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다. 반면에 통일 후 자신의 상황이 추락했다고 생각하는 계층에서는 2등 국민 정서가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다. 경제적 상황이 2등 국민 정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일국민? 동독인?
동독 주민의 2등 국민 인식은 그들이 단순히 그것을 느끼는 것을 넘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서독의 경우 자신을 독일 국민으로 인식하기보다 서독인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25% 정도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 동독 주민은 절반 이상에서 그러한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동독 주민이 여전히 통일된 독일에 통합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 문제를 넘어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동독 주민 사이에서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확신이 서독지역에 비해 계속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또 정치체제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져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에서 동서독 간에 적지 않은 차이를 나타낸다.
더 나아가 2등 국민 정서는 과거의 동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독은 법치국가였는가?'라는 주장에 대해 1990년에는 동독 주민의 45%가 긍정적으로 답을 한 반면, 20년이 지난 후에는 61%가 그런 의견을 보였다. '동독의 독재정권이 개인을 억압했고 자유가 없었다'는 의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도 54%가량으로 늘어났다. 현재에 대한 태도가 과거에 대한 해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현 상황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맞물려 계속 사회적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회의적인 것은 경제라는 구조적 요인이 2등 국민 정서의 주된 원인으로 인식되면서, 동독 주민들 사이에 이는 개인의 노력을 통해 개선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통일 30년, 같은 신분증 가졌지만 다른 생각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독일 경제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동독 주민들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19년 조사 결과, 동독 주민의 1/3은 자신을 2등 국민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일부 조사에서는 심지어 절반 이상이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독 주민이 2등 국민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서독 주민들은 18.2%가량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반면에 동독 주민의 경우 자신의 상황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통일 30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도 적지 않은 동독 주민들은 자신이 통일된 사회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으며, 마치 낯선 '무슬림'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통일 후 동독 주민은 서독인과 동일한 독일신분증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한 국민이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게 하는 차이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동독 주민이 느끼는 2등 국민 정서를 단순한 인식의 문제로 여기고 간과해서는 안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이 주류로부터 배제되었다는 정서는 단순히 생각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독일 사회, 그 가운데에서 동독 지역에서 극우 성향의 정당이 크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쉽지 않지만 경제적 차이의 문제와 그에 기반을 둔 정서적, 심리적 갈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동서독의 상황을 자세히 숙고할수록 우리의 상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동서독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장기간이 소요될 미래의 한반도 변화 상황에서 독일과 유사한,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미래를 생각할 필요 없이 현재의 상황을 봐도 그렇다. 각 지역에 순위를 정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황족부터, 중인, 평민, 가축 등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단어로 재단한 부동산 계급표가 부동산 마케팅 용도로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을 잠시만 검색해도 2등 국민이라는 단어가 활용되지는 않지만 그 이상의 말로 지방을 비하하고 희화하는 사진과 글들은 차고 넘친다. 그런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면, '억울하면 서울에 살아라, 서울에 있는 대학 다녀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현재 상황이 이런데 '통일 후 남과 북이 직면할 상황을 논하는 것 자체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통일된 사회에서 어쩌면 피할 수 없을 2등 국민 정서를 우리는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을까? 그것을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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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후 퍼진 '2등 국민' 정서, 남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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