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는 작게라도 한 발 떼고 싶다.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좀 다른 사는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최은경
사는이야기의 다음 버전을 말하기엔 아직 너무 부족하다. 그래도 2020년에는 작게라도 한 발 떼고 싶다.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전과 '좀 다른 사는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이전의 사는이야기가 보통 시민들의 사는이야기에 국한되는 측면이 있었다면, 올해는 '전문가의 사는이야기'를 좀 더 많이 끌어내려고 한다.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사는이야기로, 뉴스가 있는 사는이야기로! 그야말로 '입체적인 사는이야기'로 업그레이드 하고자 한다.
지난해 라플(라이프플러스의 줄임말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전담 팀)의 목표가 '시민기자의 프로듀서'였다면 올해는 '좀 다른 사는이야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아버지의 노동 이야기를 연재해 지난해 많은 주목을 받은 아나운서 임희정 시민기자는 '가족의 일을 기사로 쓸 때 필요한 것'이란 주제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 내가 쓴 글은 문장 속에 눈물과 악이 많았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노동이 슬펐고, 아팠고,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쓸수록 한계가 왔다.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글과 한쪽으로 치우친 일방적인 생각들은 글을 계속 쓸 수 없게 만들었다. 나조차도 내 글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자식이라는 위치를 버리고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노동의 결과보다 과정을 들여다보았고, 나는 '왜' 그것이 슬펐고 부끄러웠는지 생각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는 내 아버지만이 막노동을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모두의 노동자는 누군가의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스로 자주 묻고, 고민의 방향을 바꾸고, 생각의 범위를 넓혔다. 아버지로 시작한 글은 노동자로 번져갔고, 그러자 분노는 고민과 이해로 수그러졌다. 나는 비로소 쓰며 부모와 노동자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와 가족의 아픔일수록 객관화 시켜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관계를 빼고 감정적인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른 이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글을 써야 한다. 분노와 아픔의 글은 멀찌감치 떨어져 퇴고할수록 공감의 가능성이 커진다.
개인이 겪은 일이지만 범위를 늘려 한 사람이 상징하는 사회 속 역할과 위치는 무엇인지, 개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국가나 사회의 무관심과 부족한 제도 때문은 아닌지, 무엇보다 나만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함께 쓸 수 있다면 그 글은 내가 썼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빠가 아닌 노동자의 이야기가 될 때 좋은 글이 된다'는 말이었다. 다소 길지만 인용한 것은, 그가 언급한 'OO이 아닌 OOO의 이야기'가 수없이 많은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로 변주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아들딸이 아닌 누군가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로, '주부가 아닌 가사노동자의 이야기'로, '영세자영업자가 아닌 노동자의 이야기'로, '공장 부품으로서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얼마든지 치환되어 이야기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질책하면서도 오마이뉴스에 바랐다.
"사람들에게 '사는이야기가 변별력 있는 콘텐츠'라는 걸 각인시켜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오마이뉴스에 사는이야기를 쓴다는 자부심을 갖는 시민기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나도 바란다. 어깨에 힘 빡 하고 들어간 시민기자들이 좀 더 많아지길. 2020년에는 '나, 오마이뉴스에 사는이야기 쓰는 시민기자야!'라는 자부심 가득한 말을 좀 더 많이 듣기를. 그리고 그도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와서 '사는이야기가 변별력 있는 콘텐츠'라는 목소리를 내는 데 함께 했으면 좋겠다. 올해 꼭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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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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