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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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과 구미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구미 금오산(金烏山) 사람으로 동향인이다. 하지만 같은 고향사람으로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박정희 대통령는 구미 사람이고, 김재규는 이웃 선산 사람이다.
'선산(善山)'은 신라 진흥왕 때부터 일선주(一善州)라는 큰 고을이었다. 고려 때는 도호부(都護府)로, 조선조에는 현(縣)으로, 내륙의 이름난 고장이기도 했다.
이에 견줘 '구미(龜尾)'는 신라시대부터 2000여 년 동안 선산 관할에 속한 조그마한 고을에 지나지 않았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이후 경부선 철도가 구미를 지나게 됐다. 그러자 개화문명과 행정·교통 편의에 따라 선산은 점차 구미에 밀리게 됐다. 그러다가 5.16 쿠데타 이후 구미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선산은 구미의 그늘에 가려지게 됐다.
지금의 행정상 명칭은 구미시 선산읍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은 경북 선산군 구미면이었다. 5.16 쿠데타 이태 후는 선산군 구미읍으로, 1978년에는 구미가 시로 승격해 선산군에서 분리 독립됐다. 1995년 구미시가 선산읍을 흡수 통합하자, 그때부터 구미는 자기를 키워준 선산을 거느린 셈이 됐다.
선대부터 선산에 뿌리를 둔 이들은 유서 깊은 선산이 신흥 구미에 흡수 통합된 꼴에 무척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선산읍 이문동 출신인 김재규에게도 그런 마음이 바탕으로 깔려 있었을 것이다.
내가 구미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시절, 선산군 군내 체육대회가 열렸을 때다. 대부분 종목의 결승전은 선산과 구미가 맞붙어 자웅을 겨루던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두 지역 간 경쟁의식이 매우 치열했다. 마치 신구간 대결인양.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어 선산은 구미에 추월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와 김재규, 두 사람은 같은 일군 출신으로 해방 후 같은 열차를 타고 군에 입대한 동기생(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이다. 그 이후에도 박정희는 김재규를 특별히 신임해 3군단장, 유정회 의원, 중앙정보부차장,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요직을 맡겼다. 그렇다면 왜 김재규는 박정희 가슴에 총을 겨눴을까.
궁정동 최후의 만찬, 그 진실의 실체는 많은 세월이 더 흐른 후에 더 확실히 드러날 것이다. 아니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김재규 마음속의 밑바닥에는 도덕성과 충절을 중히 여기는 이 고장의 충절 정신과 가문의 전통도 작용했으리라고 나름대로 추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