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 대부분인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콜센터에서 관리직 성비는 비슷하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진에 유리하고, 이러한 상황은 성별임금격차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셔터스톡
나는 콜센터 7년차 관리자이다. 일반 상담사로 일하다 관리직까지 올라왔다. 별다를 것 없이 들릴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의 이야기 같지만, '콜센터'에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다수의 센터가 일반 상담원들은 아웃소싱으로, 특수 민원 부서 및 관리자 이상의 직급은 직접고용 한다. 직접고용이 되며 나는 비로소 콜센터가 '우리 회사'라고 생각했다. 내가 출근하는 곳은 00통신사였지만, 내 근로계약서에는 다른 회사의 이름이 있던, 일반상담사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한 소속감이었다.
임금 변화도 컸다. 아웃소싱인 상담사와 직접고용 관리자 간에는 기본급에서부터 10만 원 정도의 차이가 있다. 여기에 관리자는 적게는 10만 원 많게는 90만 원 정도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일반상담사 시절 인센티브는 많아야 40만 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뿌듯함도 아주 잠깐. 나는 그간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성이 97%인 우리 센터의 관리직 남녀 비율은 4:6이다. 다른 회사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했다. 10년 전만 해도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여성은 가뭄에 콩 나듯 했다는 말도 들었다. 곰곰이 살펴보니, 콜센터는 남성이 승진하기 쉬운 구조였다. 남성이 드물다 보니 그들은 동일한 실적을 내도 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사는 '고객이 남자 목소리에 권위를 느낀다'며 그들의 쾌속승진을 정당화했다. 남성에게 유리한 승진구조는 자연스레 남녀간 임금차이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다.
코로나19 이후의 콜센터
콜센터 내부의 성차별적인 구조에 한창 열을 올리던 중,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콜센터 상담원 간에도 걱정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환기도 안 하고 빼곡히 앉아 일하는 환경이기에 상황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연일 특집뉴스가 이어졌고, 다수의 전문가들이 군대 나 학교 내 집단감염 가능성 등을 심각하게 다루었으나, 그 누구도 우리 콜센터상담원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름쯤 뒤, 구로콜센터 집단감염 사태가 터졌다. '올 것이 왔구나' 콜센터상담원이라면 다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었다. 코로나19 초기부터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야 했지만, 구로콜센터 집단감염 발생 이전까지 회사 차원의 어떠한 선제적인 조처도 없었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갑갑하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회사는 상담사들의 자리를 한 칸씩 띄어 앉으라 지시했고 즉각 휴게실을 폐쇄했다. 매일 관리자와 상담사는 직접 자기 헤드셋을 소독하라는 지침과 함께 주기적으로 마스크를 지급하겠다고 전달해왔다. 우리 센터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마스크 구입을 상담사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센터도 적지 않았다. 어떤 센터는 인원을 나누어 근무하게 하려고 급히 임시센터를 마련해 출근지가 달라지기도 했다. 우리 회사 역시 확진자 발생으로 사무실이 폐쇄될 경우를 대비해 임시센터를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센터로 이직한 상담사는 오랜만에 하는 전화 통화에서 우왕좌왕하는 센터 방침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상담사 간 간격을 둬야 한다며 책상배치를 이리저리 옮기느라 진땀을 빼기도 하고, 출근 후 랜덤으로 자리를 지정해주기도 했단다. 상담사들은 자기 자리에 두고 사용하던 개인 사무용품, 헤드셋, 방석, 컵 등을 들고 이리저리 메뚜기 뛰듯 자리를 옮겨 다녀야 해서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고 했다. 주기적으로 공무원이 방문해 상담사를 불러서 설문조사를 진행 중인데, 방문일이면 회사가 미리 질문답안을 메신저로 배포하고 있다며, 서로 번거롭기만 하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투덜댔다.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 시간에 콜을 하나 더 받지"
회사는 노동자의 건강보다 생산성 저하를 먼저 걱정했다
'조치'라고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콜센터상담사의 건강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감염자 발생으로 센터가 폐쇄되어 생기는 생산성 저하를 우려해 이루어진 것이 훤히 보여 더 화가 났다. 그닥 편치 않은 의자에 앉아 헤드셋을 낀 채 온종일 고객과 이야기하고,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상담사에게 휴게실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환기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이 정말 걱정되었다면 휴게실을 폐쇄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방역하고 공간을 더 확보해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어야 맞다. 하지만 센터나 본사에서 가장 두려워한 것은 감염의 온상이라는 이미지일 뿐, 상담사들의 건강과 불안감은 그 다음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