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후 서베를린을 방문하는 동독인을 환영하고 있는 서독주민, TV로 방송되던 화면을 캡쳐한 것.
TV화면 갈무리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된 것은 '언어'의 차이였다. 서로 대화는 됐지만 적지 않은 단어가 동독과 서독에서 다른 뜻과 뉘앙스로 사용됐다. 상이한 체제가 만든 다른 언어는 문화적 장벽으로 작용했고, 소통에서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서독에서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를 비교하는 자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차이는 소통의 형식에서도 발견됐다. 동서독 주민 간에 해야 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에서, 또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서독에서는 직장의 공적 관계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을 구분하는 것이 당연했다. 반면에 동독에서는 공적 관계에서도 사적인 것을 공유하며 친근감을 느꼈고 이는 상대에 대한 신뢰 형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서독 주민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이한 소통 방식은 통일 후 양측이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가져왔다.
동독식 문화적 코드가 작용하는 동독지역에서 일하지만,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서독인의 태도는 동독 사람들이 신뢰를 느끼기 어렵게 했다. 서독에서 근무하는 동독 출신 직원의 서독인 상급자 또한 동독 출신 직원과의 관계에서 늘 신경을 써야 했다. 서독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이는 당신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닌 당신의 업무에 대한 것이다"라는 것을 매번 강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통의 '질'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동독인은 대화시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서독인은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서로 대화를 할 때 동독인은 상대방이 실제보다 더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판단했고, 서독인은 상대가 자신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은 쉽게 상대방에 대한 오해를 가져왔고, 소통하는 데 있어서 장애로 작용했다.
겸손이 중요한 동독 주민, 자신감이 중요한 서독 주민
동서독의 소통 방식을 연구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클라인 박사는 개인적 특성을 넘어서는 문화적 특성으로 동서독 주민 간에 언어 측면뿐 아니라, 말의 빠르기, 대화의 길이, 신체적 간격 등 여러 비언어적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겸손한 태도를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동독 주민과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강점을 잘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서독 주민의 태도는 일상에서 다름으로 인식되기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고, 기존 동서독의 차이를 그 이상으로 더 크게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언어·태도 등 여러 측면에서 발견되는 동서독 간 차이는 두말할 필요 없이 상이한 사회 체제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단 후 1949년 동서독이 각자 다른 체제를 지향하면서 각각 상이한 외부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고 그것은 개인의 삶의 방식에도 차이를 만들었다. 상이한 사회화 과정을 거친 양측이 만나면서 크고 작은 차이가 드러나고 그 속에서 오해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편하기는 해도 그것이 양측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동서독 주민의 관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양측 간 상대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서독에서 분단 시절부터 형성된 동독 주민에 대한 선입견은 통일 후 동독 주민에 대한 실제 경험과 결합하면서 갈등 요인으로 작용했다. 서독 주민에게 동독 주민들은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것을 개발하려는 의지도 부족한 사람들로 각인돼 있었다. 이에 서독 주민들은 동독 주민을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기보다 신민 근성을 가지고 있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쉽게 재단했다.
결과적으로 서독 주민들은 동독 주민들이 통일 후 새로운 상황에서 느끼는 심리적 갈등, 박탈감에 기인한 위축된 태도를 동독 주민의 고유한 태도로 간주하고 동독 주민들을 변화 의지가 없는 퇴행적인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동독 사람들은 다른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을 가장 우수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보인다'라고 비난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서독 언론에 의해 '동독 주민의 행동은 동독 체제가 동독 주민에게 전체주의적 행동 방식을 강압한 결과'라고 치부되면서 동독에 대한 선입견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통일 후 지속적으로 이뤄졌던 동독 지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서독인을 겨냥한 일부 서독 언론의 이러한 선정적 접근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결과적으로, '동독 주민은 수동적이고 창의성이 없고 느린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더욱 고착됐다.
서독인은 냉혈 인간? 동독인은 수동적?... 편견과 선입견이 낳은 결과
동독에 대한 강한 선입견이 있는 상태에서 동서독 간에 관계가 원만히 형성되기를 기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신을 게으른 불평꾼으로 대하는 서독에 대해 동독 또한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동독 주민이 분단 시절에 가지고 있던 서독에 대한 선입견과 통일 후 형성된 서독 주민에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동독인은 서독인을 '인간관계를 경쟁과 적대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즉, 동독인의 눈에 서독인은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