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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선입견 갖는 동독·서독 사람들, 왜 그럴까

[동독인의 독일 통일 이야기 ⑩] 수십년간 떨어져 살던 일란성 쌍둥이, 함께 살아야 한다면

등록 2020.08.22 13:34수정 2020.08.2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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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과정에서 동독 가정이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굿바이 레닌
통일 과정에서 동독 가정이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굿바이 레닌포스터 캡쳐
 
2003년 개봉해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던, 한 동독 가정의 통일 전후 이야기를 다룬 <굿바이레닌>이라는 픽션 형식 독일 영화가 있다. 통일 전 동독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아들이 잡혀가는 것을 목격한 충격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엄마가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자녀들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엄마가 알지 못하도록 숨기는 과정이 주 내용인 영화다. 통일 전후 동독 사회의 모습을 다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굿바이레닌>은 유럽과 독일의 여러 영화상을 수상했다.

개봉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의 한 극장에서 그 영화를 봤다. 영화가 한참 흥행에 성공하던 시기에 관객으로 가득 찬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 반응은 다소 특이했다. 통일 10여 뒤 영화를 통해 재현된 동독의 생활 모습에서 동독 출신 주민들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웃었지만, 서독 주민은 동독 주민의 일상 자체를 생경하게 느끼며 웃었다. 웃는 지점과 의미가 달랐던 영화관의 모습은 분단 후 이질화된 동서독 주민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통일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동서독 주민이 어느 날부터 한 동네에서 살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 동독의 생활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서 웃고 즐기는 장면과 생각이 달랐던 동독과 서독의 주민이 통일 후 시작한 실제 공존의 삶은 어땠을까? 분단 뒤 수십 년간 떨어져 살며 생겨난 차이는 그저 영화 속 이야기였을까?

같은 뿌리였지만... 헤어져 살던 일란성 쌍둥이가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면

같은 역사적·문화적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40년 이상 분단이 지속되면서 동서독의 이질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회학자 글래스너 교수는 동서독 통일을 '서로에 대해 거의 모르는 두 개의 이질적인 사회의 만남'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동서독 주민이 통일 후 하나의 사회에서 일상을 공유하면서 삶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무시할 수 없는 큰 차이였다는 것에 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서베를린을 방문하는 동독인을 환영하고 있는 서독주민, TV로 방송되던 화면을 캡쳐한 것.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서베를린을 방문하는 동독인을 환영하고 있는 서독주민, TV로 방송되던 화면을 캡쳐한 것. TV화면 갈무리
 
통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된 것은 '언어'의 차이였다. 서로 대화는 됐지만 적지 않은 단어가 동독과 서독에서 다른 뜻과 뉘앙스로 사용됐다. 상이한 체제가 만든 다른 언어는 문화적 장벽으로 작용했고, 소통에서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서독에서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를 비교하는 자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차이는 소통의 형식에서도 발견됐다. 동서독 주민 간에 해야 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에서, 또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서독에서는 직장의 공적 관계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을 구분하는 것이 당연했다. 반면에 동독에서는 공적 관계에서도 사적인 것을 공유하며 친근감을 느꼈고 이는 상대에 대한 신뢰 형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서독 주민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이한 소통 방식은 통일 후 양측이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가져왔다.

동독식 문화적 코드가 작용하는 동독지역에서 일하지만,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서독인의 태도는 동독 사람들이 신뢰를 느끼기 어렵게 했다. 서독에서 근무하는 동독 출신 직원의 서독인 상급자 또한 동독 출신 직원과의 관계에서 늘 신경을 써야 했다. 서독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이는 당신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닌 당신의 업무에 대한 것이다"라는 것을 매번 강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통의 '질'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동독인은 대화시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서독인은 자신의 능력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서로 대화를 할 때 동독인은 상대방이 실제보다 더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판단했고, 서독인은 상대가 자신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은 쉽게 상대방에 대한 오해를 가져왔고, 소통하는 데 있어서 장애로 작용했다.

겸손이 중요한 동독 주민, 자신감이 중요한 서독 주민


동서독의 소통 방식을 연구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클라인 박사는 개인적 특성을 넘어서는 문화적 특성으로 동서독 주민 간에 언어 측면뿐 아니라, 말의 빠르기, 대화의 길이, 신체적 간격 등 여러 비언어적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겸손한 태도를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동독 주민과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강점을 잘 팔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서독 주민의 태도는 일상에서 다름으로 인식되기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고, 기존 동서독의 차이를 그 이상으로 더 크게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언어·태도 등 여러 측면에서 발견되는 동서독 간 차이는 두말할 필요 없이 상이한 사회 체제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단 후 1949년 동서독이 각자 다른 체제를 지향하면서 각각 상이한 외부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고 그것은 개인의 삶의 방식에도 차이를 만들었다. 상이한 사회화 과정을 거친 양측이 만나면서 크고 작은 차이가 드러나고 그 속에서 오해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편하기는 해도 그것이 양측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동서독 주민의 관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양측 간 상대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서독에서 분단 시절부터 형성된 동독 주민에 대한 선입견은 통일 후 동독 주민에 대한 실제 경험과 결합하면서 갈등 요인으로 작용했다. 서독 주민에게 동독 주민들은 역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것을 개발하려는 의지도 부족한 사람들로 각인돼 있었다. 이에 서독 주민들은 동독 주민을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기보다 신민 근성을 가지고 있는,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쉽게 재단했다.

결과적으로 서독 주민들은 동독 주민들이 통일 후 새로운 상황에서 느끼는 심리적 갈등, 박탈감에 기인한 위축된 태도를 동독 주민의 고유한 태도로 간주하고 동독 주민들을 변화 의지가 없는 퇴행적인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동독 사람들은 다른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을 가장 우수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보인다'라고 비난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서독 언론에 의해 '동독 주민의 행동은 동독 체제가 동독 주민에게 전체주의적 행동 방식을 강압한 결과'라고 치부되면서 동독에 대한 선입견이 강화됐다는 점이다. 통일 후 지속적으로 이뤄졌던 동독 지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서독인을 겨냥한 일부 서독 언론의 이러한 선정적 접근으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결과적으로, '동독 주민은 수동적이고 창의성이 없고 느린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더욱 고착됐다.

서독인은 냉혈 인간? 동독인은 수동적?... 편견과 선입견이 낳은 결과

동독에 대한 강한 선입견이 있는 상태에서 동서독 간에 관계가 원만히 형성되기를 기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자신을 게으른 불평꾼으로 대하는 서독에 대해 동독 또한 강한 반감을 나타냈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동독 주민이 분단 시절에 가지고 있던 서독에 대한 선입견과 통일 후 형성된 서독 주민에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동독인은 서독인을 '인간관계를 경쟁과 적대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즉, 동독인의 눈에 서독인은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쳤다.
 
 동서독 주민의 소통 방식의 차이를 다룬 클라인의 저서 '너희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어' 표지.
동서독 주민의 소통 방식의 차이를 다룬 클라인의 저서 '너희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어' 표지.도서 사진 캡쳐
 
동독인이 서독인에 대해 나타내는 이러한 반응은 동독 주민들이 통일 전 살아왔던 생활 특성과 관련이 있다. 통일 전후 동독인의 특성을 다룬 사회학자 엥글러는 "동독에서는 만성적인 부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연대 의식이 강조됐고, 이것이 인간적인 것으로 간주됐다"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인식이 내재해 있는 동독 주민에게 서독 주민이 보인 개인주의적이고 경쟁 지향적인 모습은 아주 비인간적인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서독인이 오히려 자신들을 '받기만 하려고 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인다'라고 판단하는 태도는 동독 주민들에게 큰 상처로 다가왔다.
  
독일의 작가 마론은 동서독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에 비유했다. 40년 이상 다르게 살아온 쌍둥이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 동독이 서독에 대해서 몰랐던 만큼 서독 또한 동독에 대해 몰랐고, 이를 해결하려면 양측 간 충분한 소통이 필요했다.

그러나 통일 초반을 제외하고는 상호 간 소통을 위한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 그렇게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양측이 한 사회에서 공존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면서 상대에 대한 비아냥, 비하가 생겨났다. 즉, 직접적으로 상대방을 경험하기보다 간접적인 경험에서 빚어진 편견이 양측 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다르게 자란 일란성 쌍둥이가 동거를 위해 걸린 시간

특히 통일 직후 동독에서 생활했던 일부 서독 출신 주민이, 동독에서 접했던 경험을 책이나 미디어에서 선정적으로 다루면서 동독에 대한 이미지는 더 부정적으로 형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동독 지역에서 발생하는 외국인 혐오 관련 사건은 억압적인 동독 체제가 개인과 가정에 미친 영향 때문이다'라는 서독 학자의 주장은 동서독 주민간 관계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양쪽이 서로를 알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상대에 대한 단편적 정보, 인식, 선입견 등이 언론 등을 통해 증폭돼 전달되면서 양측 간 소통에 어려움으로 작용한 것이다.

동서독 통일 후 30년이 돼가면서 상대에 대한 양측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00년에는 서독 주민의 30%가 동독 주민을 낯설게 느낀다고 대답한 반면, 2012년에는 20%가량이 그렇게 느낀다고 답해 동독 주민에 대한 시선이 다소 호의적으로 변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양측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히 적지 않다. 2015년 조사 결과 동독 주민 30%가량은 '서독 주민은 거만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서독 주민 또한 동독에 대해 여전히 '요구만 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서독 주민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던 베를린 인구발전연구소 클링홀즈 소장은 '동서독 주민 간에 마음속 장벽이 충분히 해소되려면 여전히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서독 주민의 통합 측면에서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상대방과 정기적 만남과 같은 빈번한 접촉이 있던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즉, 양측의 소통이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일 초기 의욕적으로 진행됐던 동서독 주민간 교류가 다시 활발하게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동독 주민의 30%가 서독 주민과 정기적인 만남·교류가 있다고 대답한 반면, 서독 주민의 경우에는 11%만 동독 주민과 교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양측 간의 소통을 위한 기회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차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 백두산 부근 삼지연초대소에서 오찬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차 남북정상회담 마지막날 백두산 부근 삼지연초대소에서 오찬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동서독 갈등을 보며 남북한 갈등을 떠올리다
 
"북측이나 남측이나 서로 상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만나고 있다는 거예요. 책이나 유인물로 교육받고 터득한 지식, 즉 아주 단편적인 지식만 갖고 만나게 된다는 거죠. 우리는 서로 너무 모르고 만납니다."

선입견과 소통의 부재가 가져온 동서독 주민의 갈등 상황을 생각하며 떠올린, 남북한 주민이 함께 일하며 일상을 함께 했던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한 남측 근로자의 이야기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지와 선입견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한국의 현 상황이 동서독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남한은 남한대로, 북한은 북한대로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상대 및 상대방과의 관계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 경험과 맞물려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으로 오늘날까지 남북한 사회에 자리 잡고 있다. 몇 해 전 남북 정상이 만났을 때 느꼈던 감격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남북 관계의 현실은 여전히 험난하다.

그럼에도 새 시대로 나가기 위해, 소통 외에 양측의 관계를 개선하고 적대감을 해소할 다른 길은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한 세대 이상 시간이 걸리리라 전망하는 동서독 상황을 생각하면 남북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내 안에 있는 선입견과 적대감을 깨뜨리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먼 미래뿐 아니라, 당장 지금을 위해서도 말이다.
#독일통일 #동독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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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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