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후 새로운 체제의 세금제도에 대해 배우고 있는 동독 주민들
자료화면 캡처
4050세대에게 실업이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일률적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직결된 것은 아니었다. 조기 은퇴자에게 제공되었던 연금을 비롯한 실업자에 대한 각종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침에 일어나 갈 수 있는 일터가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삶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왔다.
다른 동독 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들 세대에게 있어서 직장은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차적으로 직장은 각 개인이 사회적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동독 생산 인구의 98%가량이 기업이나 산업체에서 소속되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안정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기업에 속해 있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선출해 파견한 대표를 통해 당을 비롯한 각종 조직에서 이뤄지는 주요한 의사 결정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통해 사회 운영에 참여했다.
다른 한편, 직장을 통해서 형성되는 관계는 이들이 가족을 부양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여러 가지 생활의 필요를 충족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만성적 물자 부족이 일상화됐던 사회에서 직장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관계는 부족한 물자를 서로 충족해 주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또 확인받을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직장은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정 밖의 공동체 역할을 하던 중요한 곳이었다. 직장을 통해 형성되는 이러한 공동체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사회적 안정감을 줬다.
직장 내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누군가의 결혼이나 생일 같은 일이 있으면 항상 모두가 참석했고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필요한 것이 없는지 집으로 찾아가 들여다보고는 했다. 누군가 부부간의 갈등, 자녀와의 갈등 같은 개인사를 터놓으면 깊게 대화하고 어떻게든 힘이 돼주려고 애썼다.
직장 내에서 각종 교육, 여가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던 기업아카데미라는 부설 기관을 통해 직장 동료들과 함께 배우고, 영화를 보고 즐기며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한마디로 직업은 단순한 직장 생활을 넘어 개인의 삶이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직업을 잃게 되면서 일자리뿐 아니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여가와 문화생활을 누렸던 문화공간도 동시에 없어졌다.
4050세대는 하루아침에 갈 곳을 잃어버렸다. 감원을 피해 직장에 남은 경우에도 상황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변혁 이후 직장 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서로 함께하고 공유하던 분위기는 더 이상 찾기 힘들었고, 모두가 일자리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감원은 용케 피했지만 앞으로는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이 직장 내에 생기면서 더 이상 과거의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상황에서 4050세대들은 자신도 모르게 수십 년간 다녔던 기업 쪽으로 향하는 자신의 발걸음에 절망감을 느꼈다. 이처럼 조기 은퇴 등으로 사회적 공간을 잃어버린 4050세대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하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며 과거를 회상했다.
통일에 대한 애증
통일과 함께 많은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4050세대가 통일에 대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동독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자신은 통일을 통해 얻은 자(Winner)'가 되었다고 응답한 비율 43%를 차지했고, 18% 만이 잃은자(Loser)라고 응답한 반면, 50대 이후의 세대는 잃은 자라고 응답한 비율이 젊은 세대에 비해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태도는 선거에서의 정치적 의사 표현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즉, 2000년대 초반부터 실업 상태의 동독 주민의 경우, 구동독의 독재정당인 사통당(SED)을 전신으로 동독지역에 거점을 두고 있는 정당인 PDS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였다. 또한 일부는 통일 전 동독이 가지고 있던 문제를 미화하고 동독에 대한 향수가 형성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동독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이후 세대에게 "동독에는 실업자가 없었다" "통일 후 동독은 패배자가 되었다"라는 인식을 유포하는 등 동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형성되는 상황을 유발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는 동서독의 통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후회 없는 선택, 그렇지만
어느덧 한 세대의 시간이 흘러 통일 후 함께 실업을 경험했고, 함께 좌절했던 4050세대는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동독 주민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던 통일도 이제는 오래된 역사가 됐고, 독일 통일의 날인 10월 3일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세대가 등장한 시대가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변혁이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뤄졌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기적이었다. 어떤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지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당시와 같은 상황을 오늘날 다시 경험한다면 여전히 나는 그 행렬에 참여할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동독 지역에서 있었던 시위에 참여했던, 동독 주민 슐제(가명)씨가 통일 당시를 회고하며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지난 30년을 회상하는 모습에는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의 감격과 이후 경험했던 실망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통일 이후 희망했던 것이 충족되지 않으면서 과거에 대한 재평가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4050세대의 통일에 대한 의견은 명확하다. 통일 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다시 동독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견이 높은 수준을 차지한 적은 없다. 또한 동독의 65세 이상 노년 세대의 75%가 통일 이후 독일 통일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떤 측면에서도 통일은 통일 전의 삶과 비교할 수 없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 통일 후 30년의 긴 터널을 지나는 과정에서 그들이 겪었던 경험들은 여전히 갈등과 좌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통일이 많은 긍정적인 것을 가져왔지만 그것이 지난 시간의 상실감을 해결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시작되는 여정
통일 후 한 세대가 경과하는 과정에서 동독의 4050세대가 겪었던, 실업과 풍요가 공존하는 부자연스러운 경험은 물적 안정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만능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이전 삶에서 소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던 것, 특히, 힘들었던 시간들 속에서 삶에 안정을 주었던 사람들과의 관계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공동체의 상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3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이는 동독의 4050세대가 새로운 체제에 원만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는 삶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통일 이전의 동독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북한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떤 변화든 그것은 동독의 동년배보다 북한의 4050세대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미 남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그들 세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통해서도 가늠할 수 있듯, 그것은 그들에게 불가피한 것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을 대하는 남한사회에게 필요한 태도는 그들을 존중하고 삶의 경험을 이해하는 것이다. 추구하는 가치와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난 시간의 삶과 경험은 그들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이미 통일 준비의 여정에 들어서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던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지금부터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그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이해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통일 한 세대를 지나온 동독의 4050세대를 생각하며 대뜸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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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의 주역에서 통일 후 주변인... 독일 4050세대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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