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박옥순
문세경
"노동운동이 한창이던 전노협 시절, 월간 <노사>라는 잡지사에서 일하다가 노동문제에 눈을 뜨게 됐어요. 그러다 장애인 운동으로 노선을 바꿨죠(웃음)."
본격적인 추위가 닥친 지난해 12월 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사무총장 박옥순(58)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12월은 한 해를 마감하는 때라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다. 가장 바쁜 때 인터뷰를 요청해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박옥순은 해맑은 모습으로 필자를 반겼다.
"노동잡지사에서 일하다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장애인 신문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장애인 신문사에 오니까 노동운동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이 너무 팍팍해 보였어요. 그래서 딱 2년만 일하고 장애인운동의 현장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당시에 장애인운동청년연합(전장연의 전신)이 저의 출입처였거든요. 편집장은 왜 자꾸 거기만 가서 취재를 하냐고 했어요. 나는 장애해방, 인간해방이라고 하는 가치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장애인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고, 기사를 썼어요.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잖아요. 올림픽공원 같은 큰 행사장을 빌려서 기념식을 해요. 언론사에서는 매년 썼던 기사를 토씨 하나 안 빼고 똑같이 써요. 행사장에는 시설이나 집에 있던 장애인을 초청해서 앉혀놓고 장애극복상 주고. 도시락 나눠 주고, 오후에는 가수들이 나와서 공연하고. 이런 순서로 행사를 진행하니 다음 해에도 똑같은 기사를 쓰는 거죠. 뭔가 다르게 할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장애인 복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기사를 쓰다가 만난 '장애인 운동'
박옥순은 장애인이 아니다. 장애인 신문사에서 기사를 쓰다가 '장애를 가진 사람이 편안하고 안전해야만 모든 사람이 편하고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장애인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곧 '나의 운동'이라는 다짐을 할수록 활동이 재미있었다. 특수교육진흥법을 만들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운동을 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 만드는 일을 함께했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면서 이렇게 열심히 활동을 한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지만 장애 감수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당사자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확인하고요. 내가 장애 감수성을 충만하게 가지고 있어도 내 몸은 장애가 없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물어보는 자세'를 가지고 살았어요. 장애인운동에서 장애인 당사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인권에 집중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갖는 문제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거죠.
청각장애인 당사자와 만났을 때는 반드시 눈을 보고 말하고,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는 휠체어를 밀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제가 안내해도 되냐고 물어보고요. 당사자에게 확실한 답변을 들은 뒤에 도와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내가 장애가 없더라도 장애인 당사자로부터 배척 당하는 일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장애가 있는 활동가들은 비장애인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요. 왜냐하면 업무를 빠르게 할 수 있으니까요. 장애가 있는 사람이 빨리 못하는 일을 비장애인이 하면 되니까요. 비장애인은 아무래도 힘쓰는 일을 잘할 수 있고, 격렬한 싸움을 할 때 장애 당사자의 바람막이가 돼줄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협력하고 연대하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어요.
활동하면서 장애인 당사자와 부딪힌 적은 별로 없어요. 누군가 나한테 오해의 말을 하면 나는 비난하는 말로 답하지 않아요. '혹시, 궁금한 게 있어?'라고 묻거나, '나의 생각은 이런데 너는 어때?'라고 질문을 하죠. 누군가 나를 비난해도 엉엉 울지는 않아요. 그냥 바로 그 사람과 직면해서 얘기를 하는 편이에요.
장애인 당사자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교육을 받지 못하니까 직업을 갖기도 힘들고요. 결국 국가와 사회에 의존하는 몸으로 변신한다고 말해요. 사실은 변신이 아니죠. 장애를 갖고 싶어서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사회는 장애인을 무능력한 사람으로 여기고 돌팔매를 던지기도 해요. 이럴 때 장애인 당사자는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존중받아야 할 사람인지를 알아야 해요. 그리고 말해야 해요. '나는 차별당하고 있다,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고요. 어느 누구도 장애인의 인권을 함부로 짓밟지 못하도록."
필자가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장애인운동으로 뛰어든 90년대 중반만 해도 거리를 활보하는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없었다. 한국의 도시는 기본적으로 장애인이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휠체어가 다닐 수 없는 턱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이 많지 않아 자유로운 이동은 언감생심이었다. 물리적인 이유는 이와 같지만 더 큰 이유는 장애인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어쩌다 휠체어를 타고 거리에 나온 장애인을 보곤, '몸도 불편한데 집에 있지 뭐하러 나올까' 하는 따가운 눈초리를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얼마나 변했을까. 눈에 띄게 변한 것이 있다면,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토록 한 것,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가 도입된 것, 중증장애인을 위한 활동보조인(현, 장애인활동지원사) 사업이 생긴 것,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이다.
장애해방이 곧 인간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