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큰사진보기 ▲기념공원 안 전통 가옥 사랑채에 봉안된 허균 영정나무위키 그의 글쓰기 수준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명나라 사신으로 1606년 조선에 왔을 때 허균을 만났던 주지번(朱之蕃)이 "허균의 문장은 활달하고 여유가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밝아 명나라 왕세정(王世貞)의 만년의 작품과 같고, 그의 시는 끝까지 꿰뚫었으면서도 어휘가 풍부하고 화려하여 명나라 변공(邊貢)의 청치(淸致)가 있다."고 평한 대로이다. 「한정록(閑情錄)」의 머릿말은 선비로서 현실적인 관직과 이상적인 처사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유려한 필치로 담고 있다. 그는 아쉽게도 이상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참형을 당하고 만다. 아아! 선비가 이 세상에 태어나 어찌 벼슬을 더럽다 여겨 버리고 세상을 피해 살고자 하겠는가? 다만 자신의 도(道)가 세상과 맞지 않고 자신의 운명이 시대와 어긋나기에 고결한 지조를 지키고자 세상을 피한 자라면 그 뜻을 슬퍼할 만하다. 요순시대에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군주로 삼아 임금과 신하가 한마음으로 정사를 의논하니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그런데 도 소부와 허유 같은 이들은 귀를 씻거나 표주박마저 내던지며 마치 제 몸이 더럽혀진 것처럼 세상을 버리고 떠났으니, 이들은 또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금 내 나이 벌써 마흔둘이 되어 머리숱은 줄어들었건만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이룬 일은 아무것도 없다. 큰사진보기 ▲'국조시산', 허균이 엮은 시선집. 1706년에 간행된 목판본한정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자신이 애처롭다. 나는 최상의 경지라는 사마승정이나 방덕공처럼 산과 계곡에서 마음껏 뜻을 펼치고 살지 못했다. 그 다음 경지라는 상징이나 도홍경처럼 자녀를 다 혼인시킨 뒤 먼 곳으로 떠나거나 벼슬을 그만두고 속세를 떠나지도 못했다. 그 아래 경지라는 사령운이나 백거이처럼 벼슬길에 머물면서 고결하고 드넓은 마음을 자연에 깃들이지도 못했다. 벼슬살이에 급급해서 한 해 내내 편안한 날 없이 작은 이해관계에도 마음이 위축되었고, 칭찬하거나 헐뜯는 시끄러운 소리에 마음이 동요되었다. 그리하여 발걸음을 머뭇거리고 숨죽이고 살며 함정에 빠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기러기가 날듯이, 봉황새가 날듯이,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혼탁한 세상을 떠난 옛 현인들과 비교해 볼 때 저들의 지혜로움과 내 어리석음이 어찌 하늘과 땅의 차이뿐이겠는가! 성성옹(허균)은 작은 재주로 아직 도(道)를 듣지 못했지만 태평성대에 태어나 당상관 벼슬에 오르고 국왕의 교서를 작성하는 직책을 맡고 있다. 그러니 어찌 감히 소부와 허유의 뒤를 따라 요순 같은 임금을 차마 저버리고 스스로 고상하다 여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시대와 운명이 어긋나 옛사람이 탄식하던 것과 비슷한 점이 있으니, 만약 건강한 시절에 벼슬에서 물러나 천수(天壽)를 다 누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훗날 내가 숲속에 살 때 세상을 버리고 속세의 인연을 끊어 버린 선비를 만나 이 책을 꺼내 놓고 함께 품평하고 토론한다면 내 타고난 본성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주석 10) 주석 10> 정길수, 앞의 책, 209~212쪽, 발췌.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허균 # 허균평전 #자유인_허균 추천3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삼웅 (solwar) 내방 구독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독립노농당 기본정책 16개항 구독하기 연재 [김삼웅의 인물열전] 호방한 자유인 허균 평전 다음글38화이생에게 답하는 편지 현재글37화'한정록' 서문에 남긴 한가의 꿈 이전글36화'통곡의 집'에 보인 역설 추천 연재 김은아의 낭만도시 민박집에서 이런 이불을 덮게 될 줄이야 와글와글 공동육아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문제적 여자들 조롱거리 된 '하니'의 진심, 'SNL 코리아'가 빚은 촌극 박병춘의 산골 통신 다리 위에서 결혼식을? 어느 신혼부부의 특별한 이벤트 SNS 인기콘텐츠 "윤 대통령, 매정함 넘어 잔인" 대자보 나붙기 시작한 부산 대학가 [단독] 쌍방울 법인카드, 수원지검 앞 연어 식당 결제 확인 "김영선 좀 해줘라"...윤 대통령 공천 개입 정황 육성 확인 망가진 한국을 구하는 글...나는 왜 가디언에 그렇게 말했나 '신원식·김용현', 왜 위험한가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악취 뻘밭으로 변한 국가 명승지, 공주시가 망쳐놨다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이충재 칼럼] '주술'에 빠진 대통령 부부 AD AD AD 인기기사 1 이러다 12월에 김장하겠네... 저희 집만 그런가요? 2 "무인도 잡아라", 야밤에 가건물 세운 외지인 수백명 3 [단독] 쌍방울 법인카드, 수원지검 앞 연어 식당 결제 확인 4 "윤 대통령, 매정함 넘어 잔인" 대자보 나붙기 시작한 부산 대학가 5 악취 뻘밭으로 변한 국가 명승지, 공주시가 망쳐놨다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한정록' 서문에 남긴 한가의 꿈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39화경륜 담긴 논설 수용했으면 38화이생에게 답하는 편지 37화'한정록' 서문에 남긴 한가의 꿈 36화'통곡의 집'에 보인 역설 35화전통적인 호족에서 출현한 호민사상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