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 생모가 베이비박스 목사님께 따로 남긴 편지. 지수를 고생이라 부른 안타까운 이유가 적혀 있다. 지수 생모가 지수를 위해 남긴 흔적은 두개의 편지가 유일하다.
장재순
시설에서 자라면서 아이들은
그런 지수를 저는 유난히 좋아했고 지수도 그런 제 마음을 알았는지 유난히 따랐습니다. 24시간 함께 지내다 교대 시간이 되어 보육원을 나서야 할 때면 떨어지지 않으려 울고 보채는 지수 때문에 매번 마음이 무너지곤 했지요.
그렇게 17개월을 키웠습니다. 계절이 여섯 번 지나가는 동안이지만 지수에겐 평생이었지요. 저는 지수 바로 옆방으로 옮겨 다른 아이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언제든 볼 수는 있었지만 제 손안에서 자란 아이를 놓아야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때 공무원으로 취업한 딸에게 지수 후원을 부탁했습니다.
한 달에 하루 지수를 데리고 외출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건 딸의 후원 덕이었지요. 그날만큼은 지수를 온전히 예뻐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데리고 나와서 저녁에 다시 데려다주어야 했지만 남편도 아들도 딸도 모두 지수를 좋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들과 지수는 요즘 말로 케미가 잘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특히 더 서로를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지요. 아들에게는 딸 같은 동생이었고 지수에게는 아빠 같은 오빠가 되었지요.
하지만 태어나 한 달 조금 넘어서부터 지수를 키워 온 저에게는 지수를 향한 남다른 애틋함이 있었습니다. 그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바뀌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지요. 사실 정기적으로 외출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입양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겐 다 큰 아이들이 둘이나 있었고 남편은 곧 퇴직을 앞둔 나이였고요. 저는 저대로 갱년기를 지나는 초로의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은퇴할 나이에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에겐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었죠.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18년이 되었고 지수가 4살이던 때였습니다. 저는 변함없이 지수가 있는 보육원으로 출근했고 지수는 그 안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시설 환경이 좋아지고 성품 좋은 선생님들만 있어도 단체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엄마·아빠 없는 설움은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열이 40도가 올라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태연하게 참아내면서 노는 8살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있었습니다. 왜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지 짐작이 되니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집단생활을 하다 보니 규격에 맞는 요구가 아니면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개인의 특성에 맞는 보육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시설이 가진 한계입니다.
이 한계가 자기 개성을 앗아가고 아이는 매번 자기만의 고유의 욕망이 현실에서 거절당하는 습관이 생기는 거지요. 그러니 아프면 말해서 고쳐야 한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요구까지도 참아내게 되는 거였습니다. 오로지 자기만 바라보는 가족이 있고 자기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 자기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는 가정이 필요한 건 어쩌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의 권리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유치원에 갔다 온 아이를 샤워시키는데 저한테 와서 이 아이가 묻습니다. '이모, 혼자 사는 게 좋아요, 같이 사는 게 좋아요? 나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는데 누구한테 가서 엄마를 빌리고 아빠를 빌려야 돼요?' 축 처진 어깨로 질문을 하는 아이를 차마 쳐다볼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제가 지수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가지는 아픔을 이해하게 되면서 가진 저만의 욕망이었는지 모릅니다. 모든 아이를 다 구할 수는 없지만, 유난히 마음이 갔던 지수에 대한 안타까움 말입니다.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