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이 결정된 서연이는 입양부모와의 결연 전까지 입양기관 위탁가정에서 보호된다. 가정보호와 시설보호로 운명을 달리하는 순간 각자 가야 할 곳도 달라진다. 가정보호는 위탁가정으로 시설보호는 일시보호소를 거쳐 아동보육시설로 간다.
김지영
다른 생모는 오랜 얘기 끝에 출생신고를 결심했다. 이 아이 이름은 서연이다. 사실 출생신고도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아이를 위한 최선을 그녀는 외면하지 않았다. 이처럼 출생신고가 두려워 베이비박스를 찾았다가 상담을 통해 출생신고를 하고 아이를 입양 보낸 생모가 2016년부터 매년 20명을 꾸준히 넘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와서 일주일 동안 함께 있었던 두 아이는 그날 오전 10분 간격으로 서로 다른 길로 가야 했다. 출생신고가 된 서연이는 입양기관에서 데려가고, 출생신고가 안 된 은하수는 유기아동으로 분류되어 관악구청에서 데려갔다. 이후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거친 후 보육원으로 불리는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했다.
똑같이 생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두 아이의 운명을 입양과 시설로 가른 유일한 서류가 출생신고서였다. 단 한 장의 서류가 가정으로 갈 수 있는 아이를 시설로 밀어 넣었다. 그렇다고 은하수가 18세가 될 때까지 시설에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은 아니다. 은하수가 다시 새로운 가정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 속에서 자랄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입양특례법 제 11조 1항은 입양 대상 아동의 자격 조건을 이렇게 적시한다.
'양자가 될 아동의 출생신고 증빙 서류.'
국가의 외면
처음에 아이들이 시설로 가야 했던 이유가 생모가 포기했던 출생신고서라면 이 아이들이 다시 가정으로 갈 수 있는 서류도 '출생신고 증빙 서류'다. 출생신고서가 포기된 유기아동의 출생신고는 법적 후견인이 절차를 밟아 완료한다.
출생신고가 완료된 아동은 곧 입양대상이다. 그 후 아이는 우리나라 아동복지 보호체계의 원칙에 따라 가정보호를 위한 입양이나 위탁 절차를 밟아 가정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이 일은 국가의 책임하에 공적구조 안에서 해결하게 되어 있다. 문명국가의 당연한 도리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차가운 현실은 이 당연한 도리를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도 그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기아동의 가정보호 조치를 위한 적극적인 시도에 찬물을 끼얹는다.
2019년 11월 발표된 감사원 보고서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 962명 중 929명(96.6%)이 임시 보호되다가 아동양육시설 등 시설로 보호조치 되었고, 가정보호로 조치된 아동은 33명(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아동이 발생한 초기 단계에서 이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보호에 대한 적극적 조치 대신, 적극적으로 모른 체 했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진다.
'더욱이 이와 같이 아동복지시설로 최초 보호조치된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929명) 중 차후에 가정보호로 변경된 아동은 입양 111명, 가정위탁 17명으로 총 128명(13.8%)에 불과하였고 대부분(748명, 80.5%)의 아동은 현재까지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말하자면 2014년부터 2018년 동안 발생한 베이비박스 유기아동의 80.5%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외면 속에서 아동복지 시설에서 자란다. 이 아이들에게 가정보호 최우선 원칙인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복지국가는 그저 아름다운 구호에 불과하다.
관련 법령조차 지키지 않는 현실
유기아동 발생 초기에 대응을 하지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적극적 보호조치에 임해야 한다. 이는 상식에 속하는 공적 책무다. 가정보호 최우선 원칙을 시설보호 최우선 원칙으로 바꾸지 않는 한은 그렇다.
시설에 사는 748명의 아이들은 애초에 유기아동이었다. 부모로부터 완전히 양육이 포기된 이 아이들도 분명히 새로운 부모를 만나 가정 안에서 자랄 권리가 있고, 그 권리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떤 공적 기관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회피하고 있다. 앞서 말한 구청에서 데려간 은하수를 따라가 보면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관악구청 사회복지 담당 직원이 아이를 데려간 곳은 보라매 병원이다. 여기서 검진을 받은 몇 시간 뒤 아이를 안고 이동한 곳은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일시보호소다. 이곳에서 아이가 시설 내 규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이고, 한 차례 연장할 경우 최대 6개월까지다.
이 기간 법적으로 해야 할 국가적 책무, 즉 유기아동에 관한 관계법령에 따른 지침을 담은, 보건복지부 발행 아동보호서비스 매뉴얼(아동분야 사업안내1) 절차를 순서대로 하면 다음과 같다.